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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9 10:54:21

조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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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1. 개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활동했던 교육자, 박물학자, 생물학자.

2. 상세

1905년 12월 3일 평안남도 평양의 경창리에서 태어났다.

상수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평양고등보통학교에서 4년 수학 후 같은 고보의 사범과로 진학하여 졸업, 황해도 해주의 보통학교 훈도(교원)으로 근무하였다. 일본 전문학교로의 관비 유학을 염두에 두었으나 모종의 사정으로 유학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평양고보시절 박물학 담당 교사였던 일본인 생물학자 도이 히로노부로부터 본격적인 박물학을 수학, 보통학교 훈도로 근무할 때까지도 채집을 계속하였다. 보통학교 훈도 근무 당시, 경성제국대학 교수이자 담수어류학자인 모리 다메조의 황해도 특강을 환영하기 위해 조복성의 표본이 전시되었고, 표본의 뛰어남을 알아본 모리 다메조와의 인연을 계기로 공동채집 여행을 시작했다. 이후 백두산, 울릉도 등지에서 표본을 채집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1929년에는 한국인 최초의 곤충학 논문을 발표하였다. 1930년부터는 경성제대 예과 조수로 근무하였으며 해방직전 몇년은 난징, 베이징 등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였다. 해방 직후-6.25 전쟁 전까지 국립 과학관의 초대 관장을 지냈다.

해방 직후인 1948년에 출판한 저서 곤충기가 유명하다. 파브르 곤충기와 같이 상세한 관찰기는 아니고 신문이나 잡지에 연재되는 칼럼 정도 분량의 글을 모아 놓았으나 한국사 최초의 현대과학 박물지로서 의의가 있다.

이후에도 곤충 동물에 대한 연구자료를 바탕으로 목록집을 서술하였으며, 석주명 선생, 이승모 선생과 함께 근현대 한국의 곤충학을 주도한 학자이다.

고려대학교 교수, 성균관대학교 전임교수를 지냈으며, 한국동물학회 회장, 대한민국 학술원 회원, 한국생물과학협회 부회장, 고려대학교 한국곤충연구소 소장을 역임하였다.

1971년 3월 19일 서울에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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