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센 왕국의 대외 전쟁·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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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 ||
1864년 2월 1일 ~ 10월 30일 | ||
지역 | ||
슐레스비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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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
병력 61,000명 | 병력 38,000명 | |
피해 | ||
1,275명 전사 | 2,933명 전사 | |
결과 | ||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의 승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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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로이센 왕국과 오스트리아 제국이 슐레스비히 공국, 홀슈타인 공국의 영유권을 두고 덴마크와 치른 전쟁. 훗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의 원인이 되며, 독일 통일을 위한 프롤로그였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여담으로 본 전쟁의 승전으로 계획, 건설한 것이 베를린 전승기념탑이다.
2. 배경
슐레스비히는 독일과 덴마크 두 나라의 골칫거리로, 오래전부터 독일계 주민과 덴마크계 주민 간 대립이 계속되고 있었다. 민족적 대립 뿐만 아니라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7세[1]가 1848년 자유주의에 입각한 헌법을 공표하자 이 지역의 독일계 귀족들이 거세게 반발했다. 독일계 귀족들은 슐레스비히 공국, 홀슈타인 공국의 독자적인 헌법 제정과 슐레스비히 공국의 독일 연방 가입[2]을 덴마크에 요구하면서 봉기를 일으켰다.이에 독일 민족주의자들이 지지를 보내고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돕자는 운동이 일어났다. 결국 프로이센이 덴마크와 전쟁을 벌였으나[3] 정작 같은 독일계 국가인 오스트리아 제국의 외면 속에 열강들의 압력을 받게 되었고 프로이센이 이에 굴복하여 군대를 철수하고 덴마크와 평화조약을 맺게 된다. 이때 덴마크는 슐레스비히의 덴마크로의 합병을 요구하고, 프로이센은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두 공국의 독립을 요구했지만 둘 다 받아들여지지 않은 채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공국은 덴마크와의 기존 동군연합체제가 유지되었다.
하지만 상속법이 개정되지 못한 채 1863년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7세가 사망하면서 이 두 공국들의 처우를 두고 덴마크와 독일(연방) 간 갈등이 다시 대두되었다. 슐레스비히와 홀슈타인을 프로이센 왕국에 귀속시킬 절호의 기회라 판단한 프로이센 왕국 수상 오토 폰 비스마르크는 오스트리아 제국과 연합하여 덴마크를 공격했는데 이 전쟁이 바로 제2차 슐레스비히 전쟁이다.
3. 전개
1864년 2월, 프로이센 왕국, 오스트리아 제국 연합군이 덴마크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프로이센은 철혈정책에 입각하여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데다 오스트리아까지 연합하자 덴마크는 이 두 강대국 앞에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전쟁은 순식간에 마무리되어 버렸다.1864년 10월, 비엔나 평화협정으로 덴마크는 슐레스비히 공국, 홀슈타인 공국, 그리고 여기에 더해 라우엔부르크 공국 모두를 포기하고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이 공동 관리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그러나 프로이센은 이 지역을 자국 영토로 병합하기로 원한 반면, 오스트리아는 이 지역을 독일 연방에 귀속시키고자 했다. 결국 이 지역의 처리 방식을 둘러싼 두 나라의 노선 차이는 해결되지 못하고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으로 이어진다.
4. 대중매체
1864(드라마)가 이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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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토 폰 비스마르크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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