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 1300년 전 신라 양탄자의 '화려한 외출'
1. 개요
8세기경 통일신라에서 일본으로 수출한 신라모전(신라산 양탄자) 45장. 현재 일본 정창원에 소장되어 있다.2. 내용
서기 700년대에 신라에서 만들어져 일본으로 건너간 모전(毛氈, 신라산 양탄자)들로, 현재 정창원에 45장이 소장되어 있다. 단색 모전인 색전(色氈)이 14점, 꽃무늬( 보상화무늬)가 그려진 화전(花氈)이 31점이다. 당시 해외 각국에서 먹히던 뛰어난 신라의 직물공예술을 상징하는 작품들이다.
각 양탄자에는 제조업자와 브랜드 명 등 다양한 인적사항이 적혀있는데, 이를 연구한 결과 당시 국제 무역품을 조달한 신라인 업자들이 대부분 여성들이라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백제나 고구려와는 달리 신라는 여성들의 활동이 매우 많았는데, 중국측 기록인 『 신당서(新唐書)』의 신라전(新羅傳)에서도 '신라의 재래시장에서는 부녀자들이 모든 장사를 한다' 라고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여성들의 사회 활동이 활발하였다.
대표적으로 정창원 신라 양탄자에는 자초랑댁(紫草娘宅)이란 제조업체명이 나오는데, 신라에서 여성의 이름을 언급할 때 도화랑(桃花娘), 고타소랑(古陀炤娘) 등 '娘’(아가씨 랑)자를 붙였던 점을 상기해본다면, 이 양탄자를 제조, 판매한 인물 또한 자초랑이란 신라 여성이었음을 알 수 있다. 신라 역사를 대표하는 대장군인 김유신 집안의 경우도 부인인 재매부인의 이름을 따서 택호를 재매정 혹은 재매정댁이라고 불렀던 것처럼 당시 신라인들은 여성을 가문의 대표자로 내세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데즈카 오사무의 일본 애니메이션 불새 봉황편에서 묘사된 신라 양탄자. 사진 출처
일본인과 교역하는 신라 여성을 그린 만화. 사진 출처
황룡사 활석 남근석, 황남대총 남분 도기줄무늬 유병, 경주 황남동 1호분 금귀걸이, 쪽샘 44호 고분 비단벌레 금동 장식품( 쪽샘 44호 고분 출토 비단벌레 말다래) 등의 다양한 유물들과 함께 신라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와 생활상을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서기 700년 경 한국인의 여성에 대한 인식, 그리고 신라의 직조기술, 양털 가공 기술, 염색 기술, 문양 기술 등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3. 외부 링크
- 역사스페셜 : 신라산 양탄자는 일본 최고의 인기상품이었다
- 까마구둥지 : 752년 신라 양탄자 수준과 기록들 (일본소재)
- 자초랑댁모전을 신라여성의 상업활동과 엮어서 보기
- 8~9세기 신라와 일본의 직물 교역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