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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29:32

정재원(기업인)

<colbgcolor=#028752><colcolor=#fff> 정재원
鄭在遠
파일:/image/015/2013/10/21/2013102192891_AA.7959175.1_59_20131022034404.jpg
출생 1917년 1월 4일
황해도 은율군 은율면 남천리
사망 2017년 10월 9일 (향년 100세)
서울특별시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혜춘(惠春)
학력 수도의과대학 (병리학 / 박사수료)
일본 쇼와의과대학 (의학 / 박사)
런던 대학교 Institute of Child Health (수료)
경력 의사검정시험 합격
명동성모병원
인천 해성병원 원장
황해도 안당의원 원장
서울 정소아과 원장
정건강관리연구소 대표이사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교수
혜춘장학회 이사장
(주)정식품 회장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한국 기업인, 소아과 의사. 두유 브랜드 베지밀을 만드는 정식품의 창립자.

2. 생애

1917년 1월 4일 황해도 은율군 은율면 남천리에서 2남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나 2살 때 부친을 여의었다. 7살 때 안악군으로 이사해 보통학교를 마치고 평양사범학교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15세에 평양 기성의학강습소(箕城醫學講習所)[1]에서 교재를 등사하는 사환[2] 일을 하면서 17세 때 조선총독부가 주관하는 의사시험에 응시했다. 응시자는 대부분 의학강습소 학생이었고 16과목을 4년 이내에 합격해야 하는 시험이었다. 첫 도전에서 몇 개 과목에 합격하자 강습소장은 무료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배려해 주었고 결국 1937년 6월, 19세의 나이에 의사시험 전과목에 합격했다. 당시기사(동아일보 1937. 6. 6.).

명동성모병원 견습생 시절[3] 생후 백일도 안 된 사내아기가 우유 모유를 소화하지 못해 온몸이 축 늘어진 채 묽은 녹색 변만 줄줄 나오다 사망하는 것을 경험했는데, 당시에는 병의 원인을 알 수 없어 그저 안타까운 마음만 가졌었다고 한다.

이후 1960년 영국 런던 대학원으로 유학을 떠났는데, 장기 설사병의 원인을 찾지는 못하다가 소아 알레르기 질환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UC 메디컬센터에서 유당불내증 연구 논문을 발견하게 되고, 유당불내증이 그 아기의 사망 원인임을 알게 된다. 이에 유당이 함유되지 않은 대용유액을 궁리하던 끝에 우유 못지않게 단백질이 풍부한 대체 식품으로 을 연구하기 시작하여[4] 마침내 1967년 국내 최초로 콩으로 만든 우유격인 두유 음료수 베지밀을 내놓는다.[5]

베지밀 소식을 들은 환자들이 전국에서 몰려드는 바람에 수공업을 접고 대량 생산을 위해 1973년에는 정식품을 설립하게 된다. 또 정재원은 '경쟁기업들도 소비자들에게 제대로 만든 두유를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라며 OEM 전문회사 '자연과 사람들'을 설립을 하였고. 자회사는 화장품 전문회사 '주식회사 오쎄'을 설립을 하였다.

1984년 '혜춘장학회'를 설립, 33년간 약 2,350여명에게 총 21억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베지밀 개발로 제1회 발명의 날 대법원장상을 수상했고, 평생 콩 연구에 매진한 공로로 1999년 국제대두학회에서 공로상을 수상했다.

2017년 10월 9일에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100세.

3. 여담

부인은 김금엽(2004년 사망)이며, 그가 22세일때 가톨릭재단 혜성병원장으로 있을 때 처음 만났다고 한다. 수녀원에서 실습 나온 17세의 풋풋한 견습생이었다고. 1942년 결혼식을 올리고 6남매를 낳아 기르며 60여년 동안 해로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명예회장이 된 이후에도 연구를 계속 했을 정도로 이 분야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2013년 인터뷰.

정재원은 생전에 장수 비결을 묻자 채소 위주의 식단, 그리고 자신이 발명한 베지밀 덕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베지밀 창시자’ 정식품 정재원 향년 100세로 사망, 직접 밝힌 장수 비결은?

참고로 그가 살린 수많은 아이중에 안 좋은 의미로 유명한 사람이 홍상선이다. #


[1] 기성(箕城)은 평양의 옛 이름이다. [2] 쉽게 말하자면 인쇄공과 같은 일을 한 것. 당시 청년 정재원은 의사 시험 시험지를 거의 매일 반복적으로 등사하면서 문제를 암기하다시피 하게 되었다고 한다. 정재원은 어느날 '내가 만약 이 시험에 응시하면 합격하지 않을까"란 상상을 하게 되었고 실제 실행에 옮긴 것 이라고 후에 강연회에서 밝힌 바 있다. [3] 현재 일반의를 취득하고 인턴생활을 하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다. 당시에는 국내에 체계화된 의학과정이 없었기 때문에 면허 비슷한 것을 받았지만 사실상 단독진료를 하기보다는 의사들 옆에서 보조하면서 배우는 것으로 현대 의대 본과생들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4] 브레드 이발소의 코너 윌크의 디저트 이야기에서는 아내가 준 콩국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나온다. 후술하겠지만 아내의 이름은 김금엽. # 참고로 작화는 체리툰 제작자들이 담당한다. [5] 참고로 여기서 오해하면 안되는 게, 정재원이 두유 제품을 개발한 의도 및 노력 자체는 사실이지만, '정재원이 두유라는 식품을 최초로 개발했다'라는 건 사실이 아니다. 두유 자체는 언제 어디서 개발되었는지도 불분명할 정도로 오래된 식품이다. 그가 개발한 것은 '콩으로 만든 대용유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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