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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4 08:59:18

정순만

독립운동사의 삼만
우남 이승만 검은 정순만 우성 박용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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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순만1.jpg
출생 1873년 3월 3일
충청도 청주목 서강외이하면 덕촌리
(현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덕촌리)[1]
사망 1911년 6월 21일 (향년 37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
부모 정석종, 밀양 박씨
검은(儉隱)
이명 왕창동(王昌東, 또는 王昌道), 왕일초(王一初), 왕한(王韓)
본관 하동 정씨[2]
서훈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1986년)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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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유공자

2. 생애

충청북도에서 정석종과 밀양 박씨 사이 외아들로 태어났다. 1896년 의병 참여를 하였고 자신의 고향에서 덕신학교를 세웠으며 상동청년회를 조직하기도 하였다.

이후 북간도로 망명한 후 1907년 헤이그 특사를 도왔으며 1908년에는 블라디보스토크로 건너가 안중근의 의거를 도왔다.

1910년 독립운동을 하던 중 정순만이 양성춘을 총으로 쏘아 죽이는 일이 발생하였다. 물론 정순만이 고의로 쏜것은 아니었지만 이 사건 때문에 정순만은 옥고를 치렀고 1911년 2월 석방되었지만 1911년 6월 21일 가족을 죽인것에 복수심을 품고 있던 양성춘의 형인 양덕춘과 양성춘의 아내 전소사에게 도끼로 살해당하였다.

사후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 하동 정씨 집성촌 [2] 24세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