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러시아 작곡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가 제2차 세계 대전 중 작곡한 피아노 소나타 6, 7, 8번을 가리킨다. 작곡자가 직접 '전쟁 소나타'로 불렀다거나, 7번에 '스탈린그라드'란 부제를 붙였다거나 한 적은 없으나,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 전쟁의 음울하면서 격렬한 성격을 표상하는 듯하여 곧잘 이렇게 불리고 있다. 스탈린 정부로부터의 압박에 시달리던 시절, 그의 예술관과 세계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나름 정부의 입맛도 맞추려 애쓴 그의 노력을 볼 수 있다. 전쟁 속의 인간을 묘사한 작품들이며,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며 또한 음울한 분위기를 띠고 있다. 1939년 동시에 작곡이 시작된 소나타 6, 7, 8번은 각각 1940, 1942, 1944년에 완성되었다.2. 구성
2.1. 6번 (Op.82)
피아노 소나타 6번은 1939-1940년 독일-소련 불가침 조약이 체결되던 해에 작곡되었으며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에 의해 초연되었다.
2년도 채 지나지 않아 파기된 독소 불가침 조약은 후 3000만 명의 희생자를 만든 독-소 전쟁의 시간을 벌기 위한 수단이였다. 따라서 이 6번 소나타에는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감 그리고 전쟁 자체의 잔인함, 폭력성, 공포가 담겨 있다. 3곡의 전쟁 소나타 중 가장 공격적인 성향을 띠는 곡이다. 곡은 4악장 구조의 소나타로 이뤄져 있다. 1악장은 소나타 형식, 2, 3악장에서는 3부 형식, 4악장은 론도 형식을 사용하였다. 1악장의 주제가 마지막 악장에 다시 등장하는 순환기법을 사용함으로써 곡 전체에 통일감이 느껴진다. 불협화음과 전조, 반음계적인 어법이 주로 사용되지만 무조음악은 아니다.
2.1.1. 구성
2.1.1.1. 1악장 : Allegro moderato (빠르게, 중간 정도로)
처음부터 왼손의 불협화음과 같이 등장하는 오른손의 단3도와 장3도가 합쳐진 하강 스케일은 이 곡을 에워싸는 가장 큰 동기이자 주제이다. 마치 전쟁의 프로파간다적인 이면을 보는 듯한 힘찬 모습과 동기에 의해 A단조와 A장조가 엮이며 생기는 화성적 불안정함은 이 곡의 주제가 힘차기는 하지만 어딘가 모를 불안과 파괴를 불러옴을 암시한다. 2주제는 반음계적인 멜로디. 처음 주어진 주제에 비하면 매우 어수선하고 불협화음이 매우 포진해 있다. 이 주제가 끝나면 조금 조용한 3주제의 등장. 이 주제는 등장하자마자 점차 빨라지는 것이 특징이겠다.전개부는 더더욱 혼란스럽다. 대위법적이고 토카타스러운 증4도 간격의 선율로서 시작되는데, 3주제는 완전히 이성과 내면적 평화를 잃어버린 듯한 모습을 보여주며, 1주제의 파편이 조각조각 붙어있는 등 매우 산만하지만 그 아름다움과 주제를 잃지 않는 파트. 자세히 들어보면 1, 2, 3주제가 매우 고루 변형되고 분리되어 나타난다. 제시부에서 전개부로 넘어가는 부분과 동일하게, E음을 기점으로 다시 재현부로 넘어간다.
한 옥타브 아래에서부터 시작하는 1주제. 갑자기 변형된 2주제가 1주제의 중간을 가로채고 다시 재현부를 진행한다. 급격하게 고조되는 텐션, 그리고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종소리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극적, 그리고 혼란적을 넘어서서 파괴적, 그리고 참상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이 참상 속에서 1주제가 마지막으로 그 동기를 보여주고 매우 웅장하게 끝.[1]
2.1.1.2. 2악장: Allegretto (조금 더 빠르게)
스케르초 악장. 다른 3개의 악장보다 가장 밝고 가장 경쾌한 악장이다. 스케르초와 같이 A-B-A 형태를 띄고 있다. 안정적인 E장조의 화음들을 기본 뼈대로 하여 신랄한 화성들이 펼쳐진다.A파트는 3개의 주제를 준다. 이 3개의 주제가 반복하면서 다채롭게 변형과 변형을 거듭한다.
B파트는 3주제에서 변형과 분리를 거듭한 새로운 주제가 파트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는 아르페지오가 특징.
다시 돌아오는 A파트에서는 아까의 3개의 주제가 반복되나, 3주제 도중에 2주제나 1주제가 갑자기 끼어드는 등 변칙적인 모습이 많다. 다시 한번 2주제가 희석된 1주제가 상승되면서 끝을 마무리짓는다. 종잡을 수 없던 조성 속에서 다시 E장조의 경쾌한 코드 속 끝을 짓는다.
2.1.1.3. 3악장: Tempo di valser lentissimo. (왈츠풍의 템포로, 매우 매우 느리게)
왈츠 악장. 느린, 서정적인 풍의 3부 형식의 악장. 1, 4악장과는 다르게 평화롭고 몽상적이며, 마치 꿈을 걷는 듯한 인상이 매우 특징적이다. 전쟁 속 사람들의 회상, 내지 기억을 연상케 하는 달콤한 코드[2]의 연속, 그리고 아름다운 선율은 끔찍한 전쟁의 불안과 고통 속에서 상상하는 인간의 아름다운 내면을 선보인다. 중간에 잠시 이러한 꿈에서 깨어나는 듯한 묘사가 있으나, 다시 꿈에 빠지며 조용하게 마무리된다.2.1.1.4. 4악장: Vivace. (매우 빠르게)
론도 악장. 전 3개의 악장과는 다르게 심하게 어두운 면모를 보여준다. 프로코피예프스러운 선율의 등장, 그리고 그에 대비되는 매우 밝고 경쾌한 2주제의 대비로 곡이 진행된다. 총소리와도 같은 1주제는 끝없이 변형을 거치게 된다. 이곳에서 1악장의 동기가 부분적으로 느리게 등장하는데, 순환적인 면모, 다시 1악장으로 돌아갈 분위기를 조성하며, 이를 암시하는 장치가 된다.무한적으로 전조와 반음계적 패시지, 무조성적 불규칙 스케일을 거치고 나면 2주제가 아까의 경쾌함보다는 한창 지친 모습으로서 재등장한다. 한창 다운된 분위기를 다시 1주제가 천천히 위로 끌어올린다. 잠시 느려진 분위기와 속도는 다시 처음 이상으로 끌어올려지고, 이 분위기를 이어 드디어..
전쟁 소나타 3부작 중 가장 파괴적이고 혼란스러운, 코다 부분[3]으로 돌입하게 된다.
주제는 온데간데 없고, 광기라고밖에는 표현할 방법이 없는 코다는 파괴적인, 무선율의 패시지 안에서 들리는 잇단음표로 표현한 총소리, 아수라장이 된 전쟁 그 자체의 파괴성을 여과없이 보여주고 있다. 상당히 난해한 곡 패시지, 폴리리듬, 펼침 옥타브 이상, 재빠르게 삽입되는 스케일 패시지 등. 모든 이들의 역량을 시험하는 부분이다.
이러한 파괴적인 패시지 끝에서 아까의 1악장의 첫 동기가 다시 등장한다. 매우 빠른 속도로 하강하며, 강하게 끝을 낸다. 그러나 끝났다는 느낌보다는 무언가 다른 것과 이어질 것이란 느낌, 1악장과의 순환성이 더욱 더 돋보인다.
2.2. 7번 (Op.83)
스뱌토슬라프 리흐테르에 의해 초연[4]된 피아노 소나타 7번은 '스탈린그라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하며, 1939-1942년 약 4년에 걸쳐 작곡되었다. 전쟁 소나타 중 가장 유명하고 높은 빈도로 연주되는 곡인데, 그 이유는 7번이 일단 6번이나 8번에 비해 약 18분의 연주 소요시간으로 짧지만 화려하고 현란한 타악기적인 효과가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테크닉적 난이도는 전쟁소나타 중에서 그나마 가장 무난하며 관객 호응도 좋은 곡이니 연주빈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5] 실제로 높으신 분들의 입맛에도 맞아떨어진 모양인지 그 해 스탈린 상까지 수상했다.
6번이 전쟁 자체의 잔인함과 공격성을 표현한다면 7번은 그 배경 속 제도에 대한 공포심, 전쟁 속 인간의 심리적 고통과 분노, 두려움을 해학적으로 풀어낸 곡으로 볼 수 있다. 3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쟁 속의 인간을 묘사한 브루탈적인 1악장, 낭만적인 요소를 포함한 현실 도피적인 2악장, 다시 돌아온 현실에서의 참혹함과 광기가 담긴 짤막한 3악장으로 구성되었다. 1악장은 거의 무조에 가깝게 쓰여졌고 2악장은 슈만의 가곡집 '리더크라이스(Liederkreis)' Op.39의 9번째 곡 '비애(Wehmut)'의 첫 부분이 차용되었으며 3악장은 짧고 기술적인 화려함이 출중해 앙코르 곡으로도 많이 연주된다. 또한 3악장은 그란 투리스모 5의 오프닝 곡으로도 쓰였다.
2.2.1. I. Allegro inquieto (I. 불안하고 빠르게)
전쟁 소나타 3곡 중에서도 가장 무조적인 악장.무조 패시지로 시작하는 이 소나타는 빠르기말 그대로, 상당히 텐션이 고조된 상태로 시작하는데, 이는 소나타 전체의 끝까지 가서도 풀리지 않은 채 남아 있는다. 여기서도 프로코피예프는 그의 타악기적 소리를 여과없이 집어넣었는데, 이는 6번보다도 더욱 발전한 면모가 엿보인다. 여기서도 그의 주특기인 tone-cluster가 상당히 많이 보이는데, 이 덕에 타악기적인 에너지가 넘쳐난다. 캐넌 형태의 전환부가 끝나면 급작스럽게 그 에너지가 폭발하고, 급작스럽게 조용해지며 다음 주제로 넘어갈 준비를 한다.
그 다음 주어지는 2주제는 한충 더 릴랙스된 상태이며, 다양한 음정과 조성, 반음계적 모듈레이션과 여기까지 와서도 더욱 불안정한 주제는 소름끼칠 만큼 내면적인 악을 내포하고 있다. 이 주제는 전개되면 전개될수록 더욱 산산조각나고 분해되며, 결국 단9도의 발전부를 시작으로 1주제로 넘어가게 된다. 6번의 1악장과도 비슷한 혼란스러운 발전부를 넘기고 나면 다시 등장하는 2주제. 그러나 이번에는 다시 조각나고 파편화되어 상당히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온다.
짤막한 전개부가 끝나면 1주제를 이용한 코다가 등장, 그렇게 1주제의 마지막 부분을 하강시키고, 끝에 가서야 V-I 종결로 억지로 조성을 묶어 마무리.
음악적으로는 상당히 대범한 소나타이다. 사실상 무조음악인 데다가, 극도로 짧은 재현부, 그리고 끝까지 텐션과 해소 없이 오직 텐션만을 가하며, 조롱의 의미로서 조성을 막바지에 부여했기 때문.
2.2.2. II. Andante caloroso (II. 따듯하게, 걷는 빠르기로)
6번의 3악장이 "전쟁 속에서의 인간의 꿈"이라면, 7번의 2악장은 그것과는 다른, 역으로 "현실도피"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은 악장이다. 첫 시작은 앞서 설명했듯, 슈만의 가곡 중 "비애"의 첫 도입부의 인용인데, 가사의 내용을 고려해 보면 왜 현실도피적인 지 알 수 있다. [6]아름다운 노래는 무너져내리고, 프로코피예프 특유의 종소리와 반음계적인 소리를 같이 한 채, 그러나 원 조성인 E장조를 놓지 않는 모습은 현실에서 도망쳐나가는 인간의 처절함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안티클라이마틱한 종소리를 뒤로 한 채, 이 곡은 태연하게 다시 첫 주제를 종소리와 함께 들려주며 끝난다.
2.2.3. III. Precipitato (III. 긴박하게)
7/8 박자의, 급격한 토카타 악장. Precipitato는 클래식 작곡가 중 프로코피예프 외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7] 지시어로, 작곡자가 종종 자신의 아이덴티티마냥 활용하였다.1악장에서 암시한 Bb장조의 조성이 여기서 다시 복선으로서 작용, 따라서 Bb장조로 시작한다.
7/8 박자인 만큼 2-3-2, 2-2-3, 3-2-2 등, 강박의 슬러 처리를 위하여 마디별로 다른 그룹을 세야 하며, 이로 인해 오묘한 박자감을 형성한다. 빠른 템포에, 여기까지도 등장하는 톤 클러스터는 덤.
첫 시작을 낮고, 리듬감 있게 끊는 Bb장조의 A파트는 1악장과는 다르게 조성적으로 안정감을 지니고 있다. 빠른, 토카타스러운 화음의 연타와 박자에 의한 슬러 처리로 이루어지는 선율이 돋보인다.
분위기의 저조 없이, 이번에는 복조의 B파트가 등장. 복조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다시피 한, 그러나 여전히 타악기적인 에너지를 지는 파트이다. 이 파트 이후 여기서 등장하는 C파트는 Bb-E-Bb의 전체에 대한 복선이자, 구조적인 안정성을 위해 등장하게 된다.
다시 A파트로 돌아와, 에너지를 모으기 시작하며, 그것이 최고조에 달하자 무수한 코드를 연타한 후, 그 에너지에 물씬 취해 짤막한 코다에 도달, 앞서의 2개의 악장과는 다르게 상당히 강인하게 끝낸다.
이렇게 승리적인 선율로 끝났음에도, 우리는 이 곡에 대해 어딘가 찝찝함을 느낀다. 6번의 순환성이 대두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8번처럼 소름끼치지도 않지만, 7번의 공통주제가 전쟁의 참상 속의 인간들의 브루탈리티와 광기의 표현인 것을 생각하면, 이 악장은 승리가 아닌, 인간이 전쟁 속에서 광기에 물들어감을 해학적으로 표현한 악장임을 은유적으로 암시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특히, 전쟁 소나타를 입문하기에는
2.3. 8번 (Op.84)
소나타 8번은 1939년부터 1944년 약 6년에 걸쳐 작곡되었으며 에밀 길렐스에 의해 초연되었다.
3곡의 전쟁 소나타 중 가장 걸작으로 평가되며, 그의 9곡의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다. 피아니스트에게 요구되는 음악적 해석 능력 또한 가장 높으며 6, 7번과 달리 대위법적이고 교향곡적인 구성으로 인한 음악적 난이도에 젊은 피아니스트들은 주로 6, 7번을 메인 레퍼토리로 내세운다.[8]
소나타 8번은 전쟁, 그리고 전쟁 속의 인간을 넘어 극심한 황폐함을 그리며, 부드럽고 서정적으로 노래하는 소름끼치는 선율과, 마지막 악장에서는 어딘가 찝찝하기도 한 승리를 표현한 곡으로 무조음악은 아니며 내림 나장조로 구성되었는데, 특히 1악장에서 프로코피예프는 이 내림 나장조의 서늘하고 음울한 면을 완벽하게 끄집어내 표현했다.
2악장은 '꿈꾸듯이' 라는 표기같이 그 모든 것에서 잠시 해방되어 꿈을 꾸듯 아름다운 선율이 노래한다. 그러나 이 낭만적인 화성들이 점점 해체되어 가는 과정을 잘 그려낸것이 인상적인 악장이다.
3악장은 경쾌함과 공격성을 동시에 표현한 악장으로 전쟁 소나타 6, 7, 8번의 모든 악장 중 기교적으로 가장 어렵다고 평가된다. 특히 3악장 피날레의 어려움은 정말로 살인적인 것으로, 여기서 시원하게 몰아치는 모험을 택하는 피아니스트들은 내로라하는 거장들조차도 힘이 빠지고 무수한 미스터치를 내는 것이 흔하다.[9] 3개의 전쟁 소나타의 마지막 피날레답게 힘차고 화려하게 끝맺는다.
[1]
마지막의 음은 그저 A음의 옥타브가 아니다. 프로코피예프는 마지막까지도 Bb음을 사용하며 불협화음을 보여준다.
[2]
물론 불협화음이 자주 나온다. 그러나 프로코피예프는 이를 따뜻한 음색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3]
위의 영상의 27:03.
[4]
여담으로 리흐테르는 이 곡을 나흘간 머릿속으로 연습하고 초연했다고 한다.
[5]
8번 같은 경우 음악적으로 가장 난해해서 대중이 이해하기 어려운 면도 있고, 또 막상 쳐보면 기술적으로도 7번보다 어렵지만 이상하게 과소평가받는 부분이 있다.
[6]
자신의 노래, 그리고 지하감옥의 나이팅게일의 행복한 노랫소리 속의 이면을 노래하는 가곡이다. 한 사람의 드러내지 못한 비애를 부르는 것.
[7]
리스트 곡 중에서
단테 소나타,
초절기교 연습곡 10번 등 간간이 보인다.
[8]
사실 6, 7번도 피아노 레퍼토리에서 굉장히 어려운 편에 속한다.
[9]
심지어 폭주하는 연주로 유명한
유자 왕조차도 피날레는
또박또박 쳤고, 상단에 첨부되어 있는 키신이 가장 깔끔한 속주 피날레를 연주했지만, 그조차도 마지막 고비에서 뭉개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