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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05 18:07:23

전 창녕 금관

파일:전 창녕 금관.jpg

1. 개요2. 내용

1. 개요

오구라 컬렉션의 일환으로 일본에 유출되어 있는 6세기 경 비화가야 금관. 현재 도쿄국립박물관 동양관 5층 조선유물실에 소장되어 있으며,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2. 내용

파일:전 창녕 금관2.png

세간에 오구라 컬렉션이라 불리는 유물 중 하나로, 일제강점기에 남선합동전기회사의 사장을 역임한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국내에서 유물 1,100여점을 도굴 일본으로 반출하였고, 이후 재단법인 오구라컬렉션 보존회에서 관리하다가 그 아들 오구라 야스유키가 1980년대 초반에 도쿄국립박물관에 기증한 것이다.

형태 및 구성의 경우 띠 모양의 관테 중앙에 원형과 물방울 모양의 달개로 장식된 연꽃 봉오리모양 세움장식을 배치하고, 양쪽으로 길게 뻗은 풀잎모양의 세움장식이 두 개씩 배치되어 있다. 신라 금관에 비하면 단순한 구성이지만, 나름 화려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금관을 둘러싼 최대의 궁금증은 출토지다. 이 유물을 유출한 오구라 다케노스케가 그 출토지를 명확하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학계에서는 오구라가 경상남도 창녕군에서 도굴된 유물을 주로 수집했기에 이 금관 또한 창녕 주변에서 도굴한 것으로 추정하여 ‘전(傳) 창녕 금관’으로 부르고 있다. 혹 창녕 지역이 아니더라도 일단 영남 지역 일대에서 도굴된 것임은 확실하다.

현재 이 금관의 안내문에는 ‘창녕 비화가야의 왕관’이란 글이 일본어로 적혀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같이 도굴된 비화가야 왕의 금 신발, 손잡이가 금으로 치장된 가야 대왕의 보검이 함께 전시되어 있는데, 이 금관과 대왕의 보검, 금 신발을 통해 6세기 경 창녕 일대의 수준 높은 금 공예술 및 국가체제를 파악할 수 있다.

이 유물이 제작된 서기 500년대는 가야가 완전히 신라에게 흡수되던 시기로, 창녕에 위치한 비화가야 역시 신라 진흥왕 16년인 555년에 신라에 완전히 병합되었다. 따라서 이 금관은 신라 특유의 금관문화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거나 또는 멸망 후 신라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고국인 한국에서는 금관총 금관, 금령총 금관, 서봉총 금관, 천마총 금관, 황남대총 북분 금관 등의 화려한 순황금 금관들이 이미 다수 발견된 상황이지만 고대 황금 유물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 일본에서는 최상급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따라 타국에서 도굴해서 들여온 유물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에 의해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오마이뉴스 6세기 경 가야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황금 유물로 가야시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나 현재 일본에 유출되어 있어 자세한 연구는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