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진수(張振秀) |
생몰 | 1894년 7월 10일 ~ 1945년 12월 16일 |
출생지 |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읍 동동 |
사망지 | 부산광역시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진수는 1894년 7월 10일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읍 동동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3월 신석구와 천도교계 인사들을 통해 독립운동 상황을 전해들은 뒤 구중회·김추은(金秋銀) 등과 함께 결사단을 조직하기로 결의하고 영산읍에서의 독립만세시위를 3월 13일에 벌이기로 결정했다. 이후 그는 동지들과 함께 목판으로 많은 태극기를 인쇄하고 독립선언서 요약문과 ‘대한독립만세’라고 대서특필한 큰 깃발을 준비했다.이후 거사 당일에는 23인의 결사대와 함께 700명의 시위대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이에 놀란 영산주재소의 일제 경찰들은 읍내로 진출하는 다리목인 만년교(萬年橋)에 저지선을 만들었다. 시위대가 나타나자 일경은 선두에 있던 결사대원 하은호를 개머리판으로 때려 쓰러뜨렸다. 그러자 그를 비롯한 결사대원은 경찰에게 달려들어 총을 빼앗고 육탄전을 벌였다.
이후 동지들과 함게 체포된 그는 1919년 5월 1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0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부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45년 12월 16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장진수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4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