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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1-13 12:59:48

장정환



1. 개요2. 생애3. 여담4. 참고문헌

1. 개요

북한의 군인, 정치인, 외교관.

2. 생애

1923년 1월 25일, 함경북도 청진시 송평구역에서 태어났다. 1941년 12월 청진 사립대성학교를 졸업한 후 인민학교 교원, 중학교 교원으로 일하다가 해방 이후 청년동맹 일군이 되었다. 어릴 때 만주에 이주한 경험도 있었으며 이 때문에 중국어, 러시아어, 영어에 모두 능통했다고 알려진다.

1950년 7월, 청진시 인민위원회 교육부에 발탁되었으며 1952년 조선로동당 함경북도위원회에서 일하다가 중앙위원회 지도원으로 승진, 외무성 국장에 이르렀다. 총정치국 주임, 4군단 정치 부군단장 등을 역임했으며 1954년에 소련에 유학을 다녀왔다는 말도 있다. 1956년에는 선전선동부 부부장에 임명되었다. 1961년 3월, 주창준의 뒤를 이어 정전위 북측 수석대표로 부임하면서 2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보선되었으며 1962년 10월, 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다. 1964년 9월에 박중국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 이후 민족보위성 총정치국 부국장이 되었으며 1966년 6월 22일,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에 따라 홍동철의 뒤를 이어 쿠바 대사로 부임하였다. 1967년 11월, 4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었으며 1970년 8월 26일, 백선일이 후임 대사에 임명됨에 따라 귀국, 1971년 8월에 민족보위성 부상에 임명되었다. 1972년 12월, 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 재선되는 한편 민족보위성이 인민무력부로 개편되면서 인민무력부 부부장으로 유임되었다. 1974년 2월, 중앙위원회 후보위원에 보선되면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에서는 소환되었다. 1977년 2월, 지병학 장의위원을 지냈다.

하지만 뭔가 사고를 쳤는지 1977년 7월, 중앙위 후보위원에서 소환되었으며 인민무력부 부부장에서도 해임, 함경북도 행정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좌천되었고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탈락했으며 1982년 7월 23일에 사망했다. 이후 시신은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김정일 후계세습을 비판했다고 하는데 정말로 그랬다면 좌천이 아니라 수용소로 직행했을 때니 설득력이 떨어진다. 비슷한 시기에 리용무를 비롯하여 김정일을 등에 업고 너무 나대던 측근들이 대거 좌천당했는데 거기에 휘말렸을 가능성이 있다.

조카 장성택의 덕을 보았는지 2001년 5월에는 그의 일대기를 다룬 소개편집물도 나왔다. 하지만 장성택이 숙청당하면서 껄끄러운 인물이 됐을듯.

3. 여담

장성택의 삼촌이라고 한다.

4.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