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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1-10-12 21:15:04

장재규

파일:장재규.jpg
성명 장재규(張在圭)
생몰 1882년 2월 13일 ~ 1977년 2월 28일
출생지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예양리
사망지 충청북도 청원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9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장재규는 1882년 2월 13일 충청남도 연기군 동면 예양리에서 태어났다. 1915년 3월 12일 충남 연기군 조치원 헌병분견소 소속 헌병 야나기사와 도지로(柳澤藤次郞)가 민적정리를 위해 동소에 비치된 민적부(民籍簿)를 가지고 민적조사를 시행했다. 이에 장재규는 형 장재학과 논의한 뒤 "본인은 일본신민이 아닌데 일본 관헌이 조선 시대에 등록된 자신의 민적부를 소지한다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동생과 함께 민적부 중에서 본인에 관계된 일부분을 찢어서 소각했다. 이 일로 그는 형과 함께 체포되었지만, 1915년 5월 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형이 형법 제258조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데 비해 자신은 곧 석방되었다.

그는 이후에도 형과 함께 일제에게 세금을 한 푼도 바칠 수 없다며 납세 거부 운동을 벌였다. 이에 일제가 그의 집안 재산을 강제 압류하는 등 갖은 수단을 동원했지만, 그는 끝내 굴복하지 않았고, 결국 1917년 1월 23일 그와 형 장재학은 전남 고흥군 거금도로 유배되었고, 조카 장화진은 제주도로 유배되었다. 이후 1919년 1월 4일 형의 죽음을 목도한 그는 몇년 후 유배에서 풀려나 청원군에서 조용히 지내다 1977년 2월 28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장재규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9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