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장도정(張道定) |
이명 | 장도정(張道正), 장두정(張斗正), 장기초(張基楚), 송한석(宋寒石) |
생몰 | 1896년 ~ ? |
출생지 | 함경남도 영흥군 |
사망지 | 미상 |
추서 | 건국훈장 애국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2009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장도정은 1896년경 함경남도 영흥군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7월 함경북도 의원으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임시의정원에 참석한 후 그해 여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일세당(一世黨)을 조직한 뒤 1920년 1월 일세당을 한인공산당(韓人共産黨)으로 개칭한 후 회장이 되어 ‘일세보(一世報)’를 간행하여 공산주의 사상을 선전하는 한편, 한인 의용병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전개했다. 또한 1919년 12월에 대한국민의회(大韓國民議會) 외교원으로 발탁되었고, 1920년 4월 블라고베시첸스크에서 조직된 한인공산당위원회(韓人共産黨委員會) 의사부장을 역임했으며, 그해 11월 러시아 치타에서 고려공산당(高麗共産黨) 동아한인부(東亞韓人部)를 조직했다.1920년 8월, 장도정은 모스크바에 파견되어 러시아 노농정부(勞農政府) 외교대표자와 회견했으며, 1921년 자유시 참변 때 원동공화국(遠東共和國) 사령부에 체포되었다가 석방된 뒤 1923년 6월부터 적기단(赤旗團) 정치부 간부로 활동했다. 1924년 3월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소집된 연해주 조선인공산당책임자연합대회에서 준비위원으로 활동했으며, 1930년 6월 만주조선인공산주의자동맹 결성에 참여했다.
그러나 1936년경에 반혁명 혐의로 체포된 것을 마지막으로 장도정의 이후 행적 및 사망년도, 사망지는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2009년 장도정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