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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현재4. 유사 사례

1. 개요



척관법에서 사용하는 길이 단위. 차원은 [math(\sf L)]이다. 우리말로는 '자', 한자로는 척(尺)으로 쓴다. '내 코가 석 '의 '자'가 바로 이것으로 본인 코(콧물)가 석 자나 나와 다른 것들을 신경 쓸 상황이 아니라는 뜻. 의 '척'도 이 한자를 쓴다.

파생 단위로는 (, 0.1척), 지(咫, 0.8척), 칸(間, 6척)가 존재한다.

2. 역사

와 마찬가지로 시대와 국가에 따라 달랐으며, 이 때문에 파생 단위의 길이 역시 시대에 따라 달랐다.

손가락을 이용해 길이를 재는 단위로서, 초기에는 성인 남자가 손을 폈을 때 엄지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 사이 길이, 즉 약 19cm 정도였다고 한다. 이후 점점 길어지면서 전한대 23cm, 대 24.5cm로 늘어났다. 한국과 일본의 기준은 중국과 달랐다.

삼국지 관우가 9척으로 유명한 탓에 '사람 키가 240cm(또는 270cm)가 말이 되냐'하며 중국식 과장법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천지를 먹다 II에서는 관우의 키를 245cm로 설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위에서 설명했듯이 자의 정확한 길이는 시대와 지역에 따라서 달랐다. 후한 척은 23cm, 서진 척은 24cm, 동진 척은 25cm이므로 관우가 활동하던 시기인 후한 척으로 9척이면 207cm다. 현대에도 207cm면 전세계 어딜 가도 거인인데, 관우가 활동하던 시기에는 말할 것도 없다.

사실상 이런 고대 문헌에서 사람의 키가 8척이었다는 서울은 실제 측정한 키가 아니라 일반인보다 크다는 의미로 쓰였다고 여김이 적절하다.

한국 역시 시대에 따라 여러 가지 자가 통용되었는데, 그 중에서도 고구려척은 35.6cm 정도였다. 조선시대 들어서 세종대왕이 표준도량형을 확립하였다. 현대 한국 학자들은 세종이 표준화한 도량형의 구체적인 길이를 연구했는데, 사소한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 큰 차이 없이 의견이 모였다. 현재 우리나라 문화재청은 2000년 《조선시대 표준 자》라는 책자와 실물 자를 만들어 배포했는데, 그에 따르면 세종이 표준화한 자들의 길이는 이러하다. 근데 여기서 포백척은 문제가 있다. 경국대전은 포백척 1자가 황종척으로 1자 3촌 4분 8리라고 설명하는데, 이에 따르면 46.6 cm 정도가 되어야 한다. 학자들도 포백척은 조선 전기 기준 46.6 cm쯤이 표준이라는 의견이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세종 때 만든 도량형기가 소실되고 도량형이 문란해졌다. 전란이 끝나자 조정은 어떻게든 표준도량형을 복구하고자 했지만 왜란 전보다 자 길이를 조금 길게 잡아버렸다.[1] 《조선시대 표준 자》의 실물모형 또한 영조 16년(1740)에 복구한 자를 바탕으로 만들었는데, 경국대전의 규정보다 길다. 만일 참고한 포백척이 정말로 세종 28년(1446년)에 만들어진 표준이었다면, 이미 세종 때부터 포백척은 표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조선 말기로 들어서면 도량형은 더욱 문란해졌지만 조정은 바로잡을 여력이 없었다. 구한말에 일본이 조선 남부지방 여러 곳에서 쓰이던 도량형들을 확인해보니 그야말로 들쭉날쭉하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 고종은 나름대로 미터법에 맞추어 새로운 표준을 확립하려고 했다. 1902년 도량형규칙을 세워서 반포하고 1905년 법률로 반포하였다. 하지만 국운이 기울어 1909년 일본의 강압으로 일본과 도량형을 맞췄고, 그에 따른 1척 = 30cm 의 도량형이 현재까지 쓰이고 있다.

3. 현재

현재 한국과 일본에서 비공식으로 쓰이는 1척은 약 30.303 cm[2]이다. 이 기준은 1875년 일본 메이지 정부가 도량형취체조례(度量衡取締条例)라는 법령을 발표하며 표준화한 곡척(曲尺)이다. 그런데 마침 조선에서 주척(周尺)과 함께 자주 사용한 영조척(營造尺) 길이와 거의 비슷했기 때문인지 식민지 조선에서도 큰 거부감 없이 쓰였다. 0.5cm, 즉 5mm정도밖에 차이가 없는데 이는 현대에도 일상생활에서는 무시하고 쓸 수 있을 정도의 오차다.

어항 크기를 잴 때에도 쓰고, 옷장 따위의 치수를 잴 때에도 간혹 쓰며, 영화나 드라마, 광고 촬영 시 조명용 프레임의 길이를 표기하는 데에도 쓰인다.

4. 유사 사례

유사한 단위로는 피트가 있는데, 현재 쓰이는 자(곡척)와 피트의 차이가 0.177 cm 정도밖에 안 되므로 크게 구별하지 않고 쓴다. 여기에서 따와 아예 '피트 척'(呎)이라는 한자도 만들어졌을 정도.

옛날 군부대 유류고에는 50자 이내 금연" 문구가 붙어 있었는데, 이는 "No smoking within 50 feet" 표시를 억지 우리말로만 표기하다 보니 생긴 결과다. 물론 이후 미터법 사용 장려 운동으로 인해 "15미터 이내 금연" 표기를 쓴다. 안전규정이 개정되면서 16미터로 늘었지만, 아직도 15미터인 곳이 간혹 있다.

서양 역시 영국 피트와 프랑스 피트가 달라, 실제로는 평균 신장보다 4cm 정도 더 크던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졸지에 난쟁이로 소문나버리기도 했다.


[1] 영조 16년(1740) 유척기(兪拓基)는 유형원이 쓴 반계수록을 참고해 세종 28년(1446)에 만들어진 포백척을 근거로 세종 시절 표준 자를 복구하자고 주장했는데 조정도 이를 받아들였다. [2] 1033{10 \over 33} m, 다시 말해 100033{1000 \over 33} c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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