自在庵
경기도 동두천시 상봉암동 소요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경기 북부 본찰인 봉선사의 말사(末寺)이다. 잠정적으로 소요사(逍遙寺), 소요암(逍遙庵)이라고도 불리기도 하나 원효대사가 세운 곳이자 그가 소요산에서 득도하던 중에 여성의 모습으로 유혹하여 나타났다는 관세음보살을 설법으로 물리치고 스스로 소요산에서 득도하는 의미를 통하여서 자재암으로 부르고 있다.
1. 소개
소요산 기슭에 있는 작은 절로, 서기 645년 신라 무열왕 당시 신라의 고승인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던 것으로 전해지며, 고려 광종 5년에 소요사(逍遙寺)로 이름을 바꾸었다. 의종 때 불에 타 소실되었다가 대웅전과 요사채를 복구하였다.숭유억불이 있던 조선왕조 당시에도 절이 그대로 유지되었으나, 이로 인해서 퇴락되어 가다가 고종 9년(1872년)에 원공, 제암 승려들에 의해 절 44칸을 중창하고 영원사(靈願寺)로 고쳤다가 1907년 정미의병 당시 이곳이 조선 의병들의 본거지로 알려져서 일본군이 소요산 일대를 침공하여 의병들을 체포, 토벌하고 절을 불지르면서 소실되었다. 1909년 승려 성파와 제암이 재건하여서 원효대사의 뜻을 이어가기 위해 원래 이름인 자재암으로 환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8.15 해방 후에 일본군이 물러갔으나 5년 후인 1950년 북한군이 의정부를 침공하고 서울로 남하하였을 때 북한군과 대한민국 국군의 소요산에서의 교전으로 절이 파괴되어서 소실되었고, 1961년 진정 승려가 현재의 대웅전을, 1977년 삼성각, 1984년에 부설 유치원을 개설하였다.
2. 유래
자재암이라는 절 이름은 원효대사가 이 절을 창건하였을 적에 소요산 아래에서 득도를 할 때 여성의 모습으로 나타나 유혹을 하였다는 관세음보살을 보고 설파로 물리쳤을 때 그 여인이 관세음보살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소요산에서 스스로 득도를 한다는데서 자재암이라고 지었다.이후 소요사, 영원사 등으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1909년 원효 대사의 이러한 뜻을 이어나가고자 현재의 자재암으로 환원하였다.
3. 특징
소요산 기슭에 있는 작은 절로, 한국의 소재 절 중에서는 소요산에서 흐르는 폭포 2곳을 만날 수 있다. 현재의 절은 1961년에 재건한 것이다.나한전은 소요산 바위 틈을 이용하여서 법당이 만들어져 이용할 수 있으며, 법당 문도 일반 절에서 볼 수 있는 전통적인 문이 아닌 현대식 유리 현관이어서 문 앞에서 불상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화재를 여러 차례 겪은 탓에 중건을 반복하여 왔으며, 1907년에 의병 토벌을 하는 일본군과 6.25 전쟁 때 북한군이 파괴하여서 여러 차례 소실을 겪었다가 현재의 모습이 이른다.
산 기슭에 있는 절이어서 다른 절들과 다르게 범종루는 없다. 대신 대웅전 앞에 있는 작은 범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