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FFE3E3><colcolor=#93B5C6> 임순득 任淳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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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15년 2월 11일 |
전라북도 고창군[1] | |
사망 | 1960년대 |
북한 | |
학력 |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현
이화여자고등학교)(퇴학)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현 동덕여자고등학교)(퇴학) |
직업 | 작가, 비평가, 독립운동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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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금쟁이는 수면 위에서 잠시라도 유쾌한 맴도리를 그치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돌고만 있다. 소금쟁이는 흐르는 물 위에서는 결코 돌지 않는다. 거울같이 잔잔한 물이겠지만 생동하는 물결 있는 흐르는 물 위에서는 그 쾌활하고 만족할 수 있는 맴도리를 못한다. 물의 깊이를 모른다. 흐름의 정신과 육체를 모른다. 안정된 평면이 현존하면 고만이다. 소금쟁이의 의욕이란 안온한 순간에 대한 욕심뿐이다. 아아, 소금쟁이들이여!
임순득, 《일요일》중(일상에 안주하는 사람들을 '소금쟁이 종족'으로 비판하는 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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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작가. 한국 최초 여성비평가로 불린다. # 과거에는 일본어로 작품을 썼다는 이유로 전향자로 여겨졌으나 이후 작품에 내재된 저항의식이 평가되어 현재는 끝까지 일제에 굴복하지 않고 신념을 지킨 작가로 여겨진다. 오빠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인 임택재이다. 임순득과 임택재는 이관술의 제자이기도 하다.
임순득을 주제로 하는 논문은 여럿 있다. 이상경의 1930년대의 신여성과 여성작가의 계보 연구 등.
2. 생애
고창에서 보통학교를 마치고 1929년 4월에 서울의 이화여자고등보통학교에 입학했다. 광주학생운동의 연장선으로 1930년 1월 근우회의 지도 하 경성에서 여학생 만세운동을 벌였다. 1931년 이화여고보 300명이 벌인 동맹휴업 사건의 주모자로 활약했다. 당시의 경찰 기록은 이 사건을 조선공산당 재건준비회 사건으로 파악하고 있다. 임순득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고 이화여고보에서 퇴학당한다.[출처]퇴학당한 임순득은 1932년 봄 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3학년에 편입했다. 1932년 10월 이관술의 지도 아래 이경선, 김영원과 함께 독서회를 조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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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덕여자고등보통학교 1932년 졸업앨범 속 학교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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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제동맹을 보도한 기사 중 일부. 반제동맹은 대대적으로 보도된다. |
1933년 1월 말 이관술, 이경선, 임순득은 독서회 사건으로 종로경찰서에 체포된다. 이관술의 집에서 하숙하고 있던 임순득의 오빠 임택재도 함께 검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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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택재가 하숙하던 이관술의 집 |
'조선반제동맹 경성지방 결성준비위원회' 사건으로 확대되어 이관술은 학교에서 쫓겨났다. 임순득은 불기소처분을 받았지만 동덕여고보는 그녀를 퇴학시켰다.[출처]
임순득은 그 뒤 어떤 학교인지는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사범학교에 다닌 것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한다. 또한 임택재의 증인 신문조서에 동생이 조선미술공예사의 기자로 일한다는 기록이 있다.[출처]
1937년 2월 문단에 등장하여 해방 때까지 총 13편의 글을 남겼다.
이삼일이 지나도 좋은 이름이 떠오르지 않자 나는 이상하게 초조해 졌다. 고심 끝에,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홍명희 선생님 같은 고전에 조예가 깊은 분을 찾아가 아기에게 좋은 이름을 지어달라고 부탁해보려고 나로서는 상당한 각오를 하면서도 차마 실행하지 못하고 있던 어느 날, 고려아라는 소설 쓰는 친구가 놀러 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나는 아기 이름을 짓는 것을 제안했다.
임순득, 이름짓기
서술자는 소설가 친구 고려아와 상의하여 여자 아이라면 굴원이 지조의 상징으로 사용한 풀 이름을 따서 임혜원으로, 남자 아이라면 유태 민족의 해방자 모세와 굴원을 한 자씩 따서 임세원으로 짓기로 했다. 1942년에 이름과 정체성의 관계를 문제 삼는 소설이란 어떤 의미일까? 알다시피 1940년 2월부터 창씨개명 정책이 실행되었다.
정종현, 오빠들이 떠난 자리
해방 후 함경남도 원산에서 살다가 1947년 무렵 평양으로 이사했다. 소설, 수필, 평론, 콩트 등 여러 작품을 남겼으나 1959년 『인민조선』에 발표한 「금 목걸이」를 끝으로 이후에 발표한 글들은 아직 찾을 수 없다. 북한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한 남편과 함께 축출되어 기계 운전기사로 일하면서도 단칸방에서 글을 썼고, 남편이 죽은 뒤로는 사회보장으로 살았다고 전해진다. 출처
3. 일제강점기에 발표한 작품과 평론 목록
- 일요일(소설)
- 여류작가의 지위(평론)
- 창작과 태도 - 세계관의 재건을 위하여(평론)
- 여류작가 재인식론(평론)
- 늪의 쐐기풀에 부침(수필)
- 타부의 변(수필)
- 작은 페스탈로치(수필)
- 오하의 아몽(수필)
- 불효기에 처한 조선여류작가론(평론)
- 계절의 노래(소설)
- 이름짓기(소설)
- 가을의 선물(소설)
- 달밤의 대화(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