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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喜承
1913년 10월 02일 ~ 1995년 12월 18일
대한민국의 전
정치인이다.
1913년
충청북도
충주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주오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8.15 광복 후 충북자동차주식회사 취체역, 주한미군 제7사단통역관, 경기도청 및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통역관 등으로 활동하였다.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충주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대동청년단
김기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무소속
조대연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UNKRA 및 KCAC 정치고문, 문교부(현
대한민국 교육부) 기술교육원부원장서리,
미군 작전과 포로심사관 등으로 활동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자유당 김기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에 충청북도 충주시 선거구로
공천을 신청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기철에 밀려 탈락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충청북도 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현역 지역구 국회의원인 자유당
정상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당 후보로 충청북도 충주시-중원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4년 자유민주당이
민정당에 흡수되자 민정당 충청북도당 위원장이 되었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공천에서 탈락하자
한국독립당 후보로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공화당
이종근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