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전직 농구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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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eee,#191919> 이홍수 李泓受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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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76년 6월 9일 ([age(1976-06-09)]세) | |
부산광역시 | ||
국적 | 대한민국 | |
신체 | 키 179cm| 체중 78kg | |
포지션 | 농구선수( 포인트 가드 / 은퇴) | |
학력 |
부산성동초등학교 (졸업) 대연중학교 (졸업) 부산중앙고등학교 (졸업) 한양대학교 (졸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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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입단 | 1999년 드래프트 1라운드 6순위 ( 창원 LG) | |
현역시절 등번호 | 2[1], 3[2], 5[3], 4[4] | |
병역 | 국군체육부대 농구단 (2002~2004) | |
소속 |
창원 LG 세이커스 (1999~2001)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 (2001~2002) 부산 KTF 매직윙스 (2004~2007) 인천 전자랜드 블랙슬래머-엘리펀츠 (2007~20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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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농구선수였다. 드리블과 패싱이 뛰어나 속공형에다 슈팅자세는 좋았으나 슛 성공률이 떨어졌던 선수였다.2. 선수 이전
부산중앙고 시절 제29회 쌍용기 전국남녀고교농구대회 예선에서 23득점을 넣으며 현주엽의 휘문고등학교를 누르고 조 1위로 6강 진출을 이끌었다.한양대에서는 선배 강기중, 정락영과 함께 뛰었으며 주축 가드로서의 재치있는 패스와 넓은 시야를 자극하였다. 비록 1997-98 농구대잔치에서 강혁, 김성철 등이 이끈 경희대학교와의 4강전에서 패해 결승 진출은 좌절되었지만 이와 같은 활약을 인정받아 어시스트 1위를 수상하였다.
3. 선수 시절
1999년 KBL 드래프트 1라운드 6순위로 입단한 창원 LG 세이커스에서는 오성식의 백업 가드로 뛰었으며 2000-01 시즌 선발 자리에 중용된 조우현에게 밀려 출전시간이 줄어버렸다. 결국 2001-02 시즌 중반에 초대형 빅딜이라 일컫는 4:4 트레이드[5]가 성사되어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로 이적하면서 구단의 심각한 경영난 속에서도 정락영, 전형수, 황진원과 함께 백코트 역할을 맡았다.시즌이 끝나고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2004-05 시즌 자신의 고향팀인 부산 KTF 매직윙스에서 정락영의 백업 포인트가드로 뛰며 정규리그 4위를 기록했지만, 다음시즌인 2005-06 시즌에는 신기성의 합류로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07-08 시즌에는 2:2 트레이드로 인천 전자랜드로 이적[6]한 뒤에도 백업 후보로 뛰었으나 이마저도 벤치에서만 쓸쓸히 보내다가 선수생활을 은퇴했다.
4. 여담
- 부산 KTF 시절 홈에서 경기가 개최되기 전 항상 농구를 하게 도움을 주었던 아버지의 묘지를 찾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