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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2 22:52:48

이태리 타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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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기본적인 형태

1. 개요2. 역사3. 때는 밀지 않는 것이 좋다4. 외국에서5. 기타

1. 개요

이태리 타올(伊太利 towel)은 한국에서 를 미는 데에 사용하는 거친 천으로 흰 색이 기본으로, 염료에 따라. 적색, 녹색, 황색, 청색 등의 이태리 타올이 생산되었다. 또한 대부분의 제품에 특유의 줄무늬 패턴이 그려져 있다. 이태리 타올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유는 타올을 만드는 데에 쓰이는 실의 원료[1] 이탈리아에서 수입해서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이태리 타올을 사용해서가 아니다.

워낙 유명한 덕분인지 때수건으로 불리기도 한다.

2. 역사

1967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초읍동 현 창곡시장자리에 한일직물(대표 김원조)이라는 섬유회사에서 처음 개발하여 만들었다.

탄생 계기는 이렇다. 당시 한일직물이 이탈리아에서 원단을 수입해 왔는데, 원단이 너무 거칠어서 활용 방법을 고민하던 중, 회사 관계자 중 하나가 샤워를 하며 "까칠까칠한 원단으로 피부를 밀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고 회사에 아이디어를 냈다. 시범으로 만든 제품의 반응은 성공적이었고, 이걸 그대로 제품으로 내게 된다.

하지만 개발자라고 알려진 부산의 아리랑 관광 호텔 김필곤 회장[2]은 개발자가 아니다. 김필곤 회장은 원래 부산광역시 수정동에서 놋그릇 장사하던 사람이었으나 이태리 타올이 개발된 후 그 영업을 맡아 큰 수익을 벌어들였다. 그 후 원개발자인 한일직물 김원조 대표가 다른 사업으로 부도가 나서 지병 등의 이유로 이태리 타올 생산을 하지 않고 오랫동안 연락이 끊기자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그 자신이 개발자라고 각종 방송 및 언론에 밝혀 명성을 얻었으나 원개발자인 김원조의 가족들이 이의를 제기하면서 진상이 밝혀져 망신살을 사게 되었다. 자신이 개발자라고 허위 주장을 하던 김필곤은 단지 영업을 맡았을 뿐 실제 섬유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고 한다.

원개발자 김원조씨는 천연섬유를 대체할 합성섬유 개발에 큰 업적을 이루었다. 이태리타올 외에도, 여름철 마를 대신할 지지미원단(한국것이다!)을 발명했으며, 견을 대신할 물실크를 개발하여 실크의 촉감을 유지면서도 물세탁이 가능하도록 했다. 그리고 족자나 명함에 사용되는 잘 찢어지지않는 종이와 실을 섞은 형태를 선보였으며, 대한민국에서는 최초로 70년대초에 스카프를 만들어, 지금의 쉬폰과 같은 천을 선보였다. 원개발자 김원조는 2011년 9월 22일에 사망하였다.
다만 처음 이 때밀이 도구를 선보일 때는 그다지 반응이 좋지 못했다. 그때는 주로 돌멩이로 때를 밀었기 때문에 돈 주고 떼 미는 도구를 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업으로 이후 인기는 선풍적이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으며 지금도 공중목욕탕같은 곳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품이다.

3. 때는 밀지 않는 것이 좋다

때는 피부를 보호하는 보호장벽으로, 때를 미는 것은 피부 노화를 촉진 시키는 주범이다. 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가 말하는 평생 때를 밀면 안 되는 이유

4. 외국에서

5. 기타



[1] 주로 비스코스 레이온을 사용한다. [2] 한일직물 대표와 친척관계였다. [3] exfoliate란 단어가 '각질이나 (피부)의 노폐물을 벗겨내는'이란 의미이다. [4] 지금도 서양에는 드물게 날이 무딘 칼로 때를 미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5] 화투의 원조는 일본이지만(애초에 그 닌텐도가 원래 화투 만들던 회사이다) 한국의 화투는 이와 구분되는 특징이 존재한다. [6] 성인으로 치자면, 온 몸을 공업용 사포로 있는 힘껏 문대는 것과 비슷하다. 단순히 사포로 바꾼 게 아니라 미는 힘 자체가 다르다는 것. 이태리 타올이 사포만큼은 아니지만(둘의 차이는 대충 본드와 풀 정도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 그래도 어린이 입장에서 이태리 타올이 성인 입장에서 사포 정도는 가뿐히 넘는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