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利 他 心행위의 목적을 타인을 위한 선에 두는 것을 말하며, 쉽게 말해서 이기심(利 己心)의 반대되는 뜻으로 남을 위한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함은 바로 이타심이 성격적 측면으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사람을 뜻한다.
2. 특징
세간에서 말하는 착한 성격, 상냥함, 배려심 등은 이 개념과 매우 관련이 깊다.공감능력은 이타심 발달에 큰 영향을 끼친다. 타 개체의 어려움이나 감정 등에 공감하지 못하는 개체는 타 개체를 위해서 행동한다는 생각을 못 한다. 그래서 공감능력이 높은 동물이나 사람이 다른 대상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더 높으며 실제로도 그렇다. 반면 공감능력이 낮은 동물이나 사람은 무리 내에서도 별로 이타적으로 굴지 않는 경향성이 높아진다.[1]
보통 부모 중 한 명이 이타적이거나 희생에 대해 교육하는 사람이면 아이의 이타심이 증가한다.[2][3] 비슷하게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의 잘못이 타인에게 끼칠 영향을 생각하게 하고, 질문을 통해 이해하게 만들면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이타심이 증가한다.[4] 관찰학습도 여기서 중요한데 주변의 어른이 이타심을 많이 보이면 아이들의 이타심이 증가한다. 특히 아이들이 그것을 따라할 수 있게 해주면 효과가 더욱 크다.[5]
아이가 이타적인 일을 했을 때 칭찬을 해주면 나중에 이타심을 발달시킬 확률이 높다. 그런데 여기서 아이의 행동을 칭찬(너는 착한 행동을 했구나)하는 것보다는 아이 자체를 칭찬(너는 착한 아이구나)하는게 더 강한 효과를 보이며 특히 자아가 형성되는 6~8세에 그렇다.[6] 반면에 칭찬의 의미로 돈이나 음식 같은 물질적 보상을 해주면 오히려 감소한다고 하니 주의하자.[7]
자신의 종뿐만 아니라 지구 등 다른 종과 생명체들에게도 이타심이 많은 사람도 있다. 윤리적 채식주의자 같은 경우 당장 지구상의 어느 동물이 먹을 때 미안함을 느끼면서 먹을까 생각해 보자. 이것도 어떻게 보면 이타심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다.
행위의 목적을 타인을 위한 선( 善)에 두는 윤리학상의 한 학설인 이타주의(altruism , 利他 主 義)와도 맞닿아있는 개념이다.
3. 인간의 본성
인간이 이기적이라고 주장하며 이타심을 부정하는 경우가 많지만 사람은 이타적인 본성과 이기적인 본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서구에 살든 아프리카에 살든[8]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돈을 쓸 때보다 남을 위해 쓸 때 더 행복을 느낀다.[9]보통 이기심과 반대되는 개념이라고 간주되지만 이타심 역시 이기심의 일례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10][11] 참고글 1 참고글 2
이런 의견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이타심은 개인 단위로 볼 경우 분명히 이타적이라 할 수 있는 행위지만 집단 단위로 볼 경우 종 전체를 보존하고자 하는 이기심에서 이타심이 오거나[12] 윈윈 전략을 위한 이타심[13], 호혜적 이타성[14] 등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순수한 이타심이라 불릴 만한 행위들[15]에 대해서는 설명이 아직도 부족한 편이다. 그러나 종의 보존을 위해 종족 전체에게 어느 정도 이타심을 가진다는 말도 있다.[16] 이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한 이타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자신의 인생을 아예 시궁창에 버려가면서까지 희생하는 부모들을 떠올리면 쉽다. 그건 자신을 위한 이기심이 아니다. 온전히 자기 자식만을 위한 순수한 이타성이다. 평생을 자기 자식을 업고가고, 자식만을 위해 살고, 자신의 인생은 온전히 제쳐둔다.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것만큼 순수한 이타성은 없다. 다양한 케이스에서 손익을 바라지도 않고, 보상심리를 계산하지 않고 순수하게 타인을 위해 목숨까지 희생하는 경우가 많다. 종의 번식을 위해서가 아닌 완전한 남을 위해 행동되는 경우들이다. 대표적인 예로 신오쿠보역 승객 추락사고가 있다.[17]
이 순수한 이타성은 장대익 저서 '다윈&페일리'에서도 언급된다. 인간 이외의 동물에게서 관찰된 바가 없는 이타성이라고 한다. 완전한 이기심이 있다면 완전히 남을 위한 이타심도 있는 것이다. 참고글[18] 마찬가지로 우리의 주변에는 단순 진화심리학적 접근으로는 한계성을 느낄만큼 온전히 이타적인 행위들이 많다. 아마 이는 공감능력에서 기인했으리라 추측된다. 진화심리학으로만 보기엔 분명한 맹점이 있다. 참고글 우물에 빠지려는 아이를 구하는 것, 눈앞에서 지하철로 뛰어들려는 사람을 저지하려는 행동, 건물에서 뛰어내리는 사람을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구하려는 행동 등을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무슨 의도가 있어서, 자신이 이득을 얻거나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타인을 위한, 그 사람을 구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종의 개체유지 논리조차 붙일 수 없다. 결론적으로 둘 다 죽을 가능성이 더 높은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죽을 확률이 높아도 타인을 구하고자 달려드는 사례들은 완전히 순수한 이타성 이외에는 설명할 수 없다. 사랑과 마찬가지로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본성인 것이다. 확률을 계산하며 보상을 따질거라면 왜 선로에 떨어진 승객을 열차가 접근중임에도 구하겠는가? 그저 계산할 겨를도 없이 방관자 효과와 상황의 압박마저 무시하고 이기심을 뛰어넘어 타인을 살리고자 하는 이타성만이 존재할 뿐이다.
하지만 결국 이기심인지 이타심인지는 그 대상이 자신인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있는 문제이고, 이기심을 혈연과 같은 집단을 대상으로 생각하듯이 자신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이타성 역시 본성 중 일부이다. 참고글
4. 이타심의 양면성
물론 인간 사회에 이타심이 꼭 필요한 덕목인 것은 맞지만 모든 종류의 이타심이 항상 꼭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니 주의할 필요가 있다. 가족이나 친구에 대한 이타심이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면 부모찬스, 파벌, 끼리끼리, 친목질, 부정부패 등 온갖 폐단을 낳을 수 있고 자신이 속한 공동체(특정 지역, 기업, 정당, 정파 등등) 구성원 전체에 대한 이타심도 잘못 나가면 집단이기주의로 빠져 국가 전체로 볼때는 해악을 끼칠 수 있다. 국가의 모든 국민들 전체에 대한 이타심 역시 잘못 나가면 국수주의로 빠질 수 있다. 인류 전체에 대한 이타심은 가장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조차도 인류에 의한 환경파괴 및 인류 외 다른 생물종에 끼치는 해악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현대에 환경파괴의 주범으로 꼽히는 많은 기술과 발명품이 원래는 인류를 이롭게 할 목적으로 개발되었다는 걸 생각해보자. 이것마저 넘어 인류뿐만 아니라 세상 만물 모든 것에 대한 이타심까지 간다면 말 그대로 성인이라고 부를 만한 수준이다.예수나 간디 같은 어마어마한 인류애를 보여준 인물들이 괜히 위대한 성인으로 추앙받는게 아니다. 왜냐면 이러한 성인들과 같은 수준의 보편적이고 범인류적인 이타심을 보여준 사람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공평하게 사랑하는 게 이상적이란 건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은 말그대로 이상일 뿐이다. 사회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봤다면 이 복잡한 세상에서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차별없이 공명정대하게 이타적으로 대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는 걸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성인, 성자가 괜히 성인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이타심이 인간의 본성 중 하나인 것은 맞지만 절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의 경우 인간의 이타심에는 그 한계와 경계가 명확하다. 자신의 가족, 친구나 호감이 가는 사람, 나아가서 자신의 민족에 속한 사람에게는 무한한 이타심을 보여주던 사람이 비호감인 사람이나 거기에 들지 못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잔혹해지는 사례가 수도 없이 많다. 어찌보면 이런 비뚤어진 이타심이 이기심보다도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는 것이, 순수하게 이기적인 사람은 최소한 자신에게 손해가 가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악행을 저지르면 반드시 처벌을 받아 손해를 보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잘 만들면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 반면 이런 비뚤어진 이타심으로 자기 동료, 친구의 악행을 도와주거나 비호해주는 사람은 설령 그로 인해 자기에게 피해가 온다고 해도 끝까지 악행을 비호하는 경우가 많아 오히려 통제하는게 더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자신에 대한 이기심에서 비롯된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이 잘못이라는 인식조차 없어 정당화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설령 사회 전체에 피해가 간다고 해도 내 친구를 도와준건데 뭐가 잘못이냐는 식. 범죄자도 자기 잇속이나 챙기는 이기적인 잡범들 보다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비뚤어진 신념을 가진 테러리스트 같은 종류가 더 무서운 법이다. 자살 테러 같은 걸 저지르는 테러범도 결국 (설령 그것이 비뚤어진 신념이긴 해도) 많은 사람들을 위한 대의를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테러를 저지른다면 이 또한 그러한 비뚤어진 이타심의 극단적인 일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이타심에는 복합적인 양면성이 존재하는 양날의 검이기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이기심을 억누르고 이타심만을 강요하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인지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이타심의 강요는 집단주의의 폐해, 더 극단적으로 강요할 경우 전체주의를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5. 기타
기본적으로 이타심이 강한 사람은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여겨지지만[19] 이타심이 병적 수준으로 강한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타인을 위해 희생하다가 되려 피해하는 경우도 있고, 사람들에게 잘못 걸려서 이용될 수도 있다.[20][21]즉, 적당한 이타심은 사회생활에 필수적이지만[22] 이기심과 마찬가지로 지나치게 강하면 오히려 자신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23]
실제로 생물학에서 생존을 위해 이타심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24]
단순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타심 외에도 어떠한 강박증[25] 같은 정신질환/정신병리, 혹은 비합리적 신념이 원인이 되어 발동하는 이타심도 있다.
메시아 콤플렉스는 이기심이 이타심을 만드는 전형적인 예시다. 자기만족을 위한 이기심이 이타심을 만든다.
여러모로 매우 복합적인 측면이 있어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심리적 요소이며 사회를 구성하는 데에 거반 필수요소다.
[1]
타 개체의 입장에 대해 알 바 아니라는 경향성이 강해지기 때문에 이득이 보장되지 않는 한 마음으로만 움직일 가능성은 줄어드는 것이다.
[2]
Hoffman, M. L. (1975). Altruistic behavior and the parent-child relationship.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1(5), 937.
[3]
여기서 희생에 대한 교육이란 아이들이 누군가에게 잘못을 했을 때 아이들로 하여금 상대방의 감정을 생각하게 하고 거기에 대한 배상과 사과의 필요성을 가르치는 방식의 교육이다.
[4]
Hoffman, M. L., & Saltzstein, H. D. (1967). Parent discipline and the child's moral development.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5(1), 45.
[5]
Rosenhan, D., & White, G. M. (1967). Observation and rehearsal as determinants of prosocial behavior.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5(4), 424.
[6]
Grusec, J. E., & Redler, E. (1980). Attribution, reinforcement, and altruism: A developmental analysis. Developmental psychology, 16(5), 525.
[7]
Fabes, R. A., Fultz, J., Eisenberg, N., May-Plumlee, T., & Christopher, F. S. (1989). Effects of rewards on children's prosocial motivation: A socialization study. Developmental psychology, 25(4), 509.
[8]
Aknin, L. B., Barrington-Leigh, C. P., Dunn, E. W., Helliwell, J. F., Burns, J., Biswas-Diener, R., ... & Norton, M. I. (2013). Prosocial spending and well-being: Cross-cultural evidence for a psychological universal.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04(4), 635.
[9]
Dunn, E. W., Aknin, L. B., & Norton, M. I. (2008). Spending money on others promotes happiness. Science, 319(5870), 1687-1688.
[10]
기본적으로 최소한의 이타심은 사실 무리를 짓고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에게 있어서 필수적인 요소이기도 하다. 이타심 없이 오로지 자기중심적으로만 행동하는(즉 상대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이기적으로만 행동하는) 개체는 눈총을 사서 무리에서 배제되어 도태당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11]
다만 이타심이 이기심의 일례라고 단순히 치부하기엔 상당히 모호한데 이타심의 사례 중에는 자신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을 위해 이타심을 발휘한 끝에 목숨까지 희생하는 사례도 꽤나 존재하기 때문이다.(즉, 이기심이 전혀 발동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이타심은 발휘될 수 있다는 것)
[12]
가까운 혈연을 돕기 위한 이타심이 그 예시.
[13]
즉 서로서로 이득이 되는 결과를 낳기 위해 당장의 이기적인 선택을 보류하고 이타적인 선택을 한다는 것. 한 마디로 말해서 단적으로 보면 이타심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다.
[14]
나중에 자신이 위험에 처했을때 도움받을 수 있게 타인에게 도움을 베푸는 식의 이타성(이타심)을 말한다. 즉 이 역시 장기적인 입장에서 보면 이기심으로, 순수하게 타인을 돕기보다는 앞으로의 보상(타인이 내게 베푸는 도움)을 기대하고 행하는 이기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고 진화심리학 등에서는 설명한다. 협력 문제의 경우에도 이를 들 수 있다.
[15]
완전한 타인을 위해서 아무런 대가도 보상도 기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
[16]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군 중에서 단순히 무임승차만 하려는 개체는 무리에서 도태된다. (단순히 이기적으로 굴기만 하는 개체는 전체의 보존에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정도 베풀 줄 아는 개체들은 살아남아서 지속적으로 무리를 이루는데 서로 도와주는 구조(이타적인 협력구조)를 만들수록 전체의 존속에 좀 더 유리해지는 결과를 낳기 때문. 이는 유전학적으로 인간이 관계지향성의 성질을 가진다는 것과도 어느 정도 일맥상통하는 면모가 있다. 게다가 저런 '보상 없이도 타 개체를 위해 희생하는 개체' 를 좋게 보는 경향성이 무리 전체에서 더 강할수록 무리는 서로서로 도우며 존속하기 때문. (그런 거 신경 안 쓰는 이기적인 경향성이 더 강하다면 무리는 금방 와해되고 만다) 다만 이로서도 순수한 이타성을 설명하기엔 좀 부족하다는 의견이 많다.
[17]
당시 이수현의 행동은 호혜적 이타성, win-win전략, 혈연 보존을 위한 이타성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았다. 그 짧은 몇초간의 순간. 계산되지 않고 그저 타인을 살리고자 뛰어든 것이다. 그 행동에 이기심이란 없었다. 이수현이 취객의 구조를 포기했다면 충분히 살 수 있었다고 밝혀졌다. 생과 사가 결정되는 그 순간에 이수현이 취객을 구조하려한 행동은 추후의 '보상'을 기대하여 이타적인 행위를 한다는 '호혜적 이타성'의 논리로는 너무나도 설명하기가 부족하다.
[18]
피: 그러니까 자기의 것이 아닐 경우 그리고 남들이 노력해도 자기에게 이득이 올 경우, 사람들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보다 약삭빠르게 자신의 노력은 덜 들이고 이득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추구하게 된다는 겁니다. 모두의 책임은 아무의 책임도 아니라는 말도 있죠. 이타성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어떻게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A: 인간에게 이기적인 본성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환경에 따라서 이타성은 이기성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며 싸운 우리의 과거가 있지 않습니까? 항일 운동이나 민주화 운동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에 참여했던 개인들이 자기 이익만을 고려했더라면 어떻게 고문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며 그런 희생을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인간은 계산만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피: 이기주의자의 견해에 따르면 그런 애국심, 정의, 도덕, 윤리 같은 것도 결국 자기 만족, 자긍심, 공감 같은 심리적 기제들에 의한 이기심의 변형된 형태로 설명을 하더군요.
A: 그것은 억지입니다. 실제 우리는 그런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절대 모든 것을 손익을 따져서 주판알을 튕기는 그런 존재가 아니란 말입니다. 답답하군요. 부모자식간의 사랑, 형제간의 우애, 친구들과의 우정, 연인들의 사랑, 빈곤한 이들을 위한 자선 및 봉사활동 등은 그럼 어떻게 설명이 됩니까? 이들이 어떤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19] '무리에 도움과 배려를 제공할 확률이 높다 = 무리에 대한 기여도가 높다'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 한마디로 이타심이 강한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일이 자주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21] 이타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이기적인 사람이 이득을 더 많이 취하면 이기적인 행동이 이타적인 사람에게 전파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회는 이타적인 공동체가 이기적인 공동체보다 전쟁이나 혹독한 환경에서 더 잘 생존한다. 즉, 집단 내에서 개인 선택 과정은 이타적인 사람들을 ‘추려내지만’, 집단 선택 과정에서는 이타적인 사람이 적은 집단이 ‘추려지게’ 된다. 이렇게 보면 이론상으로 이타적인 집단이 살아남지만 실제로는 집단 내에서 이타적인 사람이 이기적인 사람의 전략을 배워나가는 속도가 이타적인 사람이 적은 공동체가 소멸하는 속도보다 빠른 것이 현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선택과 개인이 원하는 선택의 방향이 서로 정반대라는 것이다(이는 한편으로 무관심/ 외로움, 양극화, 좋았던 옛날 편향의 원인이기도 하다).( 출처) 그렇기에 이타적인 사람들이 이론상보다 더 손해를 보는 상황이 필연적으로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 인간이 아무리 관계지행적이래도 날 때부터 순수하게 타인을 위하려 드는 인간은 없듯이 생물로서 반드시, 그리고 본능적으로서 타고나는 이기심이 인간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앞서서 적용된다는 증거기도 하다. [22] 애초에 이타심이 없으면 사회는 유지가 안 된다. 모두가 단순히 이기적이기만 한다면 홉스가 말한 대로 인간들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나 하고 앉아있을 판이다(...). 인간이 어느 정도 이타심을 지닌다고 해도 많은 부분에서 인간은 이기적인 면모를 드러내기에 사회는 법, 규범, 제도 등을 만들어서 어느 정도 사람들을 통재함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이타적으로 굴 것에 대해 교육시킴으로써 사회 내의 사람들의 이타심의 전반적인 수준을 어느 정도 조정한다. 즉 사회는 이타적인 면모가 있어야지만이 돌아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타적인 인간을 선택하려는 속성을 지닌다. [23] 이렇게 되는 이유는 간단한데,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호의가 지속되면 어느 순간부터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이타심을 절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이타심을 어느 시점부터 이용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나오게 된다.한 마디로 만만하게 본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회는 꽤나 냉혹해서, 이렇게 착한 사람들에게 들러붙어서 빨아먹을 거 다 빨아먹고 차갑게 내치는 사람들도 상당수이다. (즉 내가 아무리 타인에게 좋게 나온다고 해도 모든 타인이 내가 했던 것처럼 나에게 무조건적으로 이타적으로 굴 가능성은 제로라는 것) 사실 이정도 수준이면 착한 것도 아니다. 그냥 호구다. 다만 사람에 대한 통찰력이 높은 경우, 상대방의 악한 마음의 동기를 간파하고 상대방에게 안 좋은 버릇을 들이지 않게 하기 위해 상대방의 요구를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을 이타적인 마음을 품은 채로 할 수 있다.
죄수의 딜레마를 활용한 액설로드 게임 대회에서 등장했던 전략들에 비유하면 전자는
황금률이고 후자는
팃포탯이라 할 수 있다.
[24]
위에 나온 것처럼 무리생활을 하는 개체군에서 무임승차를 하려드는 개체는 빨리 도태된다. 그러나 상대에게 어느 정도 이타적으로 구는 개체들끼리는 지속적인 협력이 이루어져, 결과적으로 생존에는 플러스로 작용한다.
[25]
착한 아이 증후군 등
A: 인간에게 이기적인 본성이 있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환경에 따라서 이타성은 이기성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목숨을 내던지며 싸운 우리의 과거가 있지 않습니까? 항일 운동이나 민주화 운동 같은 것들 말입니다. 이에 참여했던 개인들이 자기 이익만을 고려했더라면 어떻게 고문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며 그런 희생을 감당할 수 있었겠습니까?인간은 계산만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피: 이기주의자의 견해에 따르면 그런 애국심, 정의, 도덕, 윤리 같은 것도 결국 자기 만족, 자긍심, 공감 같은 심리적 기제들에 의한 이기심의 변형된 형태로 설명을 하더군요.
A: 그것은 억지입니다. 실제 우리는 그런 계산을 하지 않습니다. 절대 모든 것을 손익을 따져서 주판알을 튕기는 그런 존재가 아니란 말입니다. 답답하군요. 부모자식간의 사랑, 형제간의 우애, 친구들과의 우정, 연인들의 사랑, 빈곤한 이들을 위한 자선 및 봉사활동 등은 그럼 어떻게 설명이 됩니까? 이들이 어떤 계산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까? [19] '무리에 도움과 배려를 제공할 확률이 높다 = 무리에 대한 기여도가 높다'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 한마디로 이타심이 강한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일이 자주 생길 수 있다는 뜻이다. [21] 이타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이기적인 사람이 이득을 더 많이 취하면 이기적인 행동이 이타적인 사람에게 전파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회는 이타적인 공동체가 이기적인 공동체보다 전쟁이나 혹독한 환경에서 더 잘 생존한다. 즉, 집단 내에서 개인 선택 과정은 이타적인 사람들을 ‘추려내지만’, 집단 선택 과정에서는 이타적인 사람이 적은 집단이 ‘추려지게’ 된다. 이렇게 보면 이론상으로 이타적인 집단이 살아남지만 실제로는 집단 내에서 이타적인 사람이 이기적인 사람의 전략을 배워나가는 속도가 이타적인 사람이 적은 공동체가 소멸하는 속도보다 빠른 것이 현실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은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데 사회가 필요로 하는 선택과 개인이 원하는 선택의 방향이 서로 정반대라는 것이다(이는 한편으로 무관심/ 외로움, 양극화, 좋았던 옛날 편향의 원인이기도 하다).( 출처) 그렇기에 이타적인 사람들이 이론상보다 더 손해를 보는 상황이 필연적으로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 인간이 아무리 관계지행적이래도 날 때부터 순수하게 타인을 위하려 드는 인간은 없듯이 생물로서 반드시, 그리고 본능적으로서 타고나는 이기심이 인간들에게는 기본적으로 앞서서 적용된다는 증거기도 하다. [22] 애초에 이타심이 없으면 사회는 유지가 안 된다. 모두가 단순히 이기적이기만 한다면 홉스가 말한 대로 인간들은 만인 대 만인의 투쟁이나 하고 앉아있을 판이다(...). 인간이 어느 정도 이타심을 지닌다고 해도 많은 부분에서 인간은 이기적인 면모를 드러내기에 사회는 법, 규범, 제도 등을 만들어서 어느 정도 사람들을 통재함과 동시에 지속적으로 이타적으로 굴 것에 대해 교육시킴으로써 사회 내의 사람들의 이타심의 전반적인 수준을 어느 정도 조정한다. 즉 사회는 이타적인 면모가 있어야지만이 돌아가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이타적인 인간을 선택하려는 속성을 지닌다. [23] 이렇게 되는 이유는 간단한데, 기본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호의가 지속되면 어느 순간부터 그걸 당연하게 여기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런 이타심을 절재할 줄 모르는 사람들의 이타심을 어느 시점부터 이용하기 시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나오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