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치노타니 전투 一ノ谷の戦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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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 |
1184년
2월 7일[1] (주에이 3년/지쇼 원년)[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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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
일본 셋츠노쿠니 이치노타니 (효고현 고베시 외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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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인 | |
겐페이 전쟁 중반, 헤이케의 반격 | |
교전세력 | |
겐지 | 헤이케 |
지휘관 | |
미나모토노 요시츠네 미나모토노 노리요리 구마가이 나오자네 |
타이라노 토모모리 타이라노 시게히라 타이라노 아츠모리 † |
병력 | |
불명 | 불명 |
결과 | |
미나모토가의 승리 | |
영향 | |
헤이케의 반격 실패 | |
피해규모 | |
불명 |
1. 개요
헤이안 시대 말기, 겐페이 전쟁 때 후쿠하라(지금의 고베)의 이치노타니 성에서 벌어진 겐지와 헤이케의 전투로 이 전투로 헤이케는 전세를 역전시킬 기회를 잃어버리고 유능한 장군들과 주력군을 대부분 상실하는 피해를 입고 겐지는 헤이케를 다시금 궁지로 몰아붙이게 된다.2. 배경
후지강 전투 이후 헤이케는 겐지에게 밀려 한때 규슈 지역까지 퇴각을 해 멸망 위기에 몰리게 된다. 하지만 겐지 세력의 양대 중심축인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와 미나모토노 요시나카의 내전으로 인해 겐지가 헤이케 토벌을 미루자 헤이케는 이 기회를 이용해 후쿠하라를 거점으로 삼고 동쪽으로 진출하려고 한다.[3] 이렇게 헤이케의 세력이 회복되려고 할 때쯤 요시나카 세력을 멸망시킨 요리토모는 겐지 일족을 장악하고 자신의 동생들인 미나모토노 노리요리와 미나모토노 요시츠네에게 군대를 주어 헤이케의 동진 저지 및 토벌 명령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한동안 소강상태에 있던 겐페이 전쟁은 다시 발발한다.3. 전투 내용
헤이케는 명장 타이라노 토모모리와 타이라노 시게히라 그리고 수많은 헤이케 일족 출신의 무장들이 후쿠하라의 이치노타니 성쪽에 방어진을 치고 미나모토의 공격을 대비한다.
겐지 역시 헤이케의 방어진을 보고서 이 진을 무력화시킬 방법을 고심하게 된다. 그러던 중 요시츠네는 방어진 뒤에 절벽이 있는 것을 보고 그 지역 인근에 살던 사람을 통해 절벽의 지리에 대해 탐문한다. 이후 요시츠네는 아무도 예상못한 전술을 쓰는데 바로 절벽에서 기습을 하는 것이었다. 요시츠네는 곧바로 정병 70기를 이끌고 절벽을 뛰어내려 헤이케 진영으로 돌진했다.
헤이케는 겐지군의 기습에 당황하며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하고 이후 노리요리가 이끄는 겐지의 본군까지 합세하자 급기야 병사들은 진영을 버리고 도주하기 시작했다. 헤이케의 총대장 무네모리는 도주하고 토모모리는 병사들을 수습하고 반격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결국 후퇴를 결정했다. 시게히라 역시 분전했으나 사로잡혀 포로가 되면서 전투는 요시츠네의 겐지군의 대승으로 끝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