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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8 04:31:38

이창섭(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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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昌燮|Rhee Chang-seop
파일:이창섭사진.jpg
출생 1962년 7월 25일 ([age(1962-07-25)]세)
부산광역시
본관 全義 이씨
신체 175cm, 80kg
학력 해운대초등학교 (졸업)
성동중학교 (졸업)
혜광고등학교 (졸업)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학과(학사)
미국 시라큐스대학고 언론대학원 (수료)
한국외국어대학교 정치행정언론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석사)
종교 기독교
직업 언론인|평론가|사회기관단체인
소속 경제평론가협회 부회장|국방정책자문위원|서울시자원봉사센터 감사|전 연합뉴스 지방국장|전 연합뉴스 편집국장 직무대행|전 연합뉴스TV 총괄부국장|전 금융감독원 자문위원 |전 서울중앙지법 시민사법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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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3. 활동4. 비판 및 논란 작성 중 삭제 말기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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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다매체 다기능 언론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연합뉴스, YTN, 연합뉴스TV, 펜앤드마이크 등에서 기자, PD, 방송 진행자로 일했다. 중도 보수 성향의 정통 언론인으로서 “언론은 사실을 중시해야 한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팩트 베이스드 저널리즘(fact-based journalism)”을 추구한다. 캐치프레이즈는 “사실의 축적”으로, “사실을 하나씩 확인해 가면 그 과정에서 진실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낸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텍스트 매체인 연합뉴스에서도 기자, 런던특파원, 경제부장, 논설위원, 지방국장, 편집국장 등 다양한 제작 분야에 일했다. 연합뉴스TV 경영기획실장, 연합뉴스 미래전략실장 등을 맡아 경영 업무 경험도 풍부하다. 펜앤드마이크 보도본부장 겸 사장으로 인터넷 신문겸 유튜브 채널을 운영했다. 풍부한 미디어 경험을 바탕으로 케이블TV 개국, 인터넷 신문사, 유튜브 방송 설립, 위기 관리 홍보 컨설팅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유교TV 기획위원, 국방정책 자문위원, 경제평론가협회 부회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통한 공동체 재건 사업에도 관심이 있어 서울시 자원봉사센터 감사로 4년째 봉사하고 있다.

2. 생애

부산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자연 속에서 성장했다. 큰 걸음으로 열 번만 걸으면 바다로 뛰어들 수 있는 환경에사 자랐다. 학창 시절에는 반장과 전교회장을 도맡아 하면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경험을 쌓았다. 급우들과 함께 학교 안팎에서 열린 여러 경진대회에서 참여해 수상하며 지도력, 친화력, 뛰어난 팀워크 역량을 발휘했다. 특히 학교에서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을 돕는 일에 늘 앞장섰다. 담임 선생님을 대신해 모금 운동을 진행하거나,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들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도움을 주었다.

카투사로 입대해 미8군 의무사령부에서 근무하며 미군 부대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활동을 이어갔다. 엑스레이 담당 의무병과 앰뷸런스 긴급 출동 대원으로 일하면서 응급 상황에 처한 미군과 그 가족들, 그리고 한국군 장병들의 진료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다.

대한항공에 입사해 직장 생활을 시작했지만, 공익에 더 크게 기여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언론사 연합뉴스에 입사하여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메르스 사태 당시에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서 메르스가 확산되고 있음을 대한민국 언론 최초로 보도하여,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의 대국민 사과를 이끌어냈다. 또한, 메르스 대응 과정에서 박근혜 정부가 혼란스러워하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보건장관, 미국 질병통제센터 감염병 책임자, 파스퇴르 연구소 전염병 전문가 등 해외 전문가들을 인터뷰하여, 패닉에 빠지지 말고 격리 조치에 협조하며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3년째 메르스… 사우디 “정보 공유·선제대응·협업이 중요” #)

2008년 4월에는 대한민국을 촛불 시위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던 MBC PD수첩의 광우병 보도가 가짜뉴스임을 밝힌 유일한 언론인으로서 존중과 질투를 동시에 받고 있다.

3. 활동

1989년 연합뉴스 공채 8기로 기자 생활을 시작했으며 2016년 민노총 언론노조의 지지를 받는 연합뉴스 경영진 조승부 사장, 이병로 부사장, 김진형 상무에 의해 해직됐다. 중앙 언론사 편집국장 출신이 어떠한 부정, 위법 행위 없이` 편집권 남용'을 이유로 해고된 최초의 사례다. 동아일보는 이창섭 국장을 해고한 연합뉴스 혁신위원회(위원장 이희용)에 대해 “언론사에 들이닥친 인민위원회를 보는 듯했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 송평인 칼럼: 문재인 정권에서 '완장' 찼던 언론인들" #

연합뉴스에 27년간 재직하면서 ▲최고 전성기에 전세계 60여곳에 달했던 해외 취재망 구축 사업 ▲대한민국 최초의 24시간 케이블 보도채널 YTN 창설 ▲대한민국 최초의 종합 경제정보전문 회사 연합인포맥스 분사 ▲제2 보도채널 연합뉴스TV 창설 ▲연합뉴스 사옥 재건축 ▲연합뉴스 기사 저작권 확립 ▲연합뉴스 지방주재 기자 착취 관행 철폐 등 연합뉴스가 글로벌 통신사로 도약하는데 토대가 된 굵직굵직한 혁신을 주도했다. 편집국장 시절인 2016년 1월 연합뉴스의 인터넷 점유율이 압도적 1위를 기록하면서 매체 영향력은 KBS, 조선일보에 이어 3위를 기록해 창사 이래 최고의 실적을 냈다. (연합뉴스, 인터넷점유율 압도적1위…매체영향력 KBS.조선.연합順) #

가. 대한민국 최초의 24시간 보도채널 YTN 창설 참여
1992년 초 연합뉴스 산업부 기자 시절 전희섭 당시 차장이 주도해 만든 의해 24시간 보도채널 설립 기획팀에 발탁됐다. 전희섭 차장, 강일중 차장, 이창섭 기자 3명의 언론인이 대한민국 최초의 24시간 보도채널인 YTN의 청사진을 그렸다. 평기자가 발탁된 이유는 영어 실력 때문이었다. 전희섭 차장은 투자 규모 때문에 고민하는 현소환 연합뉴스 사장에게 저비용 고효율 구조로 로컬 방송을 하는 “뉴욕원(1)” 방송을 모델로 보도 채널을 만들겠다고 보고했다. CNN과 뉴욕원을 벤치 마킹하기 위해서는 홀륭한 영어 해독력을 가진 기자가 필요했다. 기획팀은 디지털 방송 기술 혁신을 공격적으로 수용하고 소니 ENG 카메라 등 고가 장비로 채워진 고비용 방송국이 아니라 저렴한 6mm 카메라 베이스의 방송국을 만들기로 했다. 첨단 장비를 도입, 인력 의존도를 낮추고 연합뉴스와 협업해 효율적이면서 신속, 정확한 방송국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업무가 늘어나면서 신문사 교정 담당 기자와 다소 유사한 연합뉴스 정리부 기자로 들어왔던 고대 신방과 석사 출신의 최영재가 YTN 창설 기획팀에 합류했다. 최영재의 추천으로 다시 같은 고대 신방과 석사 출신인 강형철이 들어왔다. 최영재, 강형철은 보도채널 창설 경험을 바탕으로 학계로 진출해 대표적인 진보 진영 언론학자가 됐다.

YTN에서 뉴스제작총괄부 PD, YTN 경제부 기자로 활동했다. 오후 5시 반에 하는 30분짜리 경제 뉴스 프로그램 “경제생활”을 기획, 제작, 송출했다. 뉴스제작총괄부 PD 시절에는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당시 현장에 투입돼 YTN을 빛나게 한 특종을 했다. 1995년 7월 삼풍백화점 붕괴사건 발생 다음날 KBS 출신 부장으로부터 “삼풍백화점 현장에 나가라”는 지시를 받고 사고 현장 취재 및 생중계 팀에 합류했다. 합류 시점은 생존자가 더이상 발견되지 않아 구조작업을 중단하고 건물 잔해 제거 작업을 본격화하기로 한 날이었다. 사고 현장에 나와 있던 매몰자 가족들은 구조작업 중단에 거칠게 항의하며 생존자 확인 및 구조작업을 지속해달라고 요청하는 상황이었다.
먼지 자욱한 매몰 현장을 집중적으로 취재하다 자원봉사 구조대원으로부터 “지하에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다. 구조대원에게 “다시 지하로 들어가서 말을 걸어 보고 대화가 가능하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려달라. 이름, 나이, 직업 등을 알 수 있으면 알아오라”고 부탁했다. 지하로 다시 들어갔다가 나온 구조대원은 “이름이 000이라고 한다. 직업은 학교 선생이고 나이는 40세. ‘살려주세요. 물 좀 주세요’라고 말하더라”고 전했다. 이 내용은 YTN을 통해 라이브로 보도됐다. 이 보도로 인해 사고수습본부는 잔해 제거 작업을 전면 중단하고 다시 대대적인 구조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열댓 명이 살아서 나왔다. 당시 생중계를 지휘했던 YTN 뉴스총괄부 데스크는 카메라 기자를 생존자가 있는 곳으로 들여보내, 어둠 속에서 살려달라 애원하는 생존자의 육성과 몸짓을 촬영해 보도했다. 대한민국 언론은 물론 전세계 언론이 이 영상을 사용했다.

YTN에서 PD로 1년 정도 일한 뒤 경제부 기자로 재배치됐다. 개국 직전 대거 영입된 KBS 출신 인사들은 초고비용 구조인 KBS식 보도국을 만들고 있었고, 저비용 고효율 구조의 방송을 하자고 주장하던 이창섭은 연합뉴스로 복귀했다. YTN에서 얻은 방송 경험은 후일 연합뉴스TV를 창설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이창섭이 설계에 적극 참여했던 연합뉴스TV는 YTN 3분의 1 인력으로도 24시간 보도채널 운영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했다. 앵커가 서서 하는 뉴스, 광고 중에도 송출되는 붉은색의 긴급 뉴스 자막, “라이브 유”라고 불리는 백팩 중계 장비를 도입 등이 한국 언론계 최초로 실시된 혁신 사례들이다.
파일:붉은 색 자막....png

나. 미국 유학
YTN에서 복귀한 뒤 1998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토플 GRE를 친 뒤 정규 석사 과정에 지원해 미국 뉴욕 컬럼비아 대학의 저널리즘 스쿨과 업스테이트 뉴욕 시라큐스대학 저널리즘 스 스쿨에 합격했다. 원서를 접수하고 뉴욕 맨해튼 소재 컬럼비아 대학 저널리즘 스쿨을 방문했다. 추운 겨울날 학교 교정에서 벌벌 떨며 담배를 피우는 노인을 만났다. “요즘 흡연자들은 소수파가 됐지요(These days, smokers are such minorities)” 질문에 이 노인은 “그렇지요(Sure)”라고 답하며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온 연합뉴스 기자라고 소개하고, 컬럼비아 저널리즘 스쿨에 대해 알아보려 왔다고 하니 노인은 “내가 저널리즘 스쿨 학장이다. 반갑다. 내 방에 가서 얘기나 좀 하자”고 제의했다. 이 사람이 미국 최고의 언론학자로 꼽히는 제임스 케어리(James Carey) 교수였다.

파일:케어리교수.png ||
제임스 케어리 교수 위키피디아 https://en.wikipedia.org/wiki/James_W._Carey
케어리 교수의 방으로 가는 복도에는 여러대의 컴퓨터 단말기가 놓여 있었고 학생들이 붙어 앉아 있었다. 케어리 교수에게 뭔지 물어보니, 경제정보전문 통신사인 블룸버그 단말기라고 설명했다. 연합뉴스 국제국에도 한 구석에 방치돼 있던 그 단말기였다. 케어리 교수는 IT기술 발달로 수많은 정보와 데이터와 지식이 블룸버그 같은 단말기를 통해 유통되고 있고 금융산업이 극도로 발전하는 가운데 개인들도 대거 주식투자에 뛰어들고 있다면서 경제뉴스의 고도화, 경제정보매체의 급격한 성장이 미국 언론계의 트렌드라고 말했다. 이 짧은 대화는 나중에 한국 최초, 최대의 금융정보회사인 연합 인포맥스 탄생으로 이어진다.

신문왕 퓰리처가 세운 컬럼비아 대학 저널리즘 스쿨은 연간 학비 3만불에 월세 및 생활비로 5만불 가까운 비용이 있어야 했다. IMF 외환위기 중에 있었기 때문에 환율은 2천원을 넘고, 한국의 부동산 가격은 폭락해 뉴욕에서 필요한 막대한 생활비와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상대적으로 비용이 저렴한 시라큐스 대학에 진학했다. 2년 과정인 정규 석사 과정을 1년에 마치는 강행군을 하고, 논문 프로포절까지 통과했지만, 귀국 후 격무에 시달리며 논문을 완성하지 못했다. 논문 주제는 IMF 외환위기로 가는 과정에서 한국 언론과 미국 언론의 보도를 비교하는 것이었는데 자료 수집 및 정리에 막대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한국 언론은 “경제 펀드멘탈이 튼튼해 외환위기는 없다”는 기획재정부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했으나 블룸버그 통신은 한국의 외환보유고가 동이 나 버렸다고 직설적으로 보도해 금융시장 붕괴를 유발했다. AFP, AP, 월스트리트 저널 등 수많은 미국 언론들이 한국이 IMF 구제금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지만, 한국 언론은 정반대로 보도했다. 엄청난 분량의 자료 조사와 정리를 해야하는 작업인데 귀국 후 곧바로 현업에 투입되면서 논문을 완성하지 못했다. 시라큐스에서 한 공부는 언론의 미래에 대한 통찰력과 탄탄한 영어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주었다. 그리고 케어리 교수와의 짧은 만남은 한국 최초의 종합 금융정보 전문회사인 연합인포맥스 창설로 이어졌다. 연합인포맥스 홈페이지: https://news.einfomax.co.kr/

다. 연합뉴스의 저작권 확보 운동...한국의 뉴스 소비 패턴을 바꾸다
귀국 후 처음으로 한 일은 뉴스 저작권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한국 언론계에는 신문사나 방송국 기자들이 언론계 동료인 통신사 기자가 힘들여 쓴 기사를 가져가서 출처(credit)나 작성자(by line)를 밝히지 않고 자기 이름으로 도용하는 사실상의 지적 절도가 만연해 있었다. 반면 미국 언론은 어떤 통신사의 어떤 기자가 쓴 것인지를 분명히 밝히고 기사를 전재했다. 통신사 기자들도 자포자기 상태로 자기가 쓴 기사가 다른 언론사의 다른 기자가 쓴 기사로 유통되는 부조리를 방치하고 있었다.

처음으로 한 일이 연합뉴스 언론노조(민노총 언론노조이나 정치 노조가 아니라 정상적인 노조) 산하에 권리찾기팀을 만든 것이다. 연합뉴스 기사 도용 실태를 정리하고, 해외 사례를 소개하고 개선방안까지 제시했다. 회사를 압박해 연합뉴스이 주요 고객 중 하나인 한국경제신문을 저작권 침해 혐의로 형사고소했다. 당시 한국 경제신문은 연합뉴스와 계약 없이 연합뉴스가 생산한 실시간 뉴스를 PC통신을 통해 재전송하고 있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한국경제신문 협의를 요구해 왔다. 상당한 금액의 보상을 하되, 그 금액만큼 한국경제신문이 연합뉴스의 브랜드 광고를 신문에 실어주는 것으로 합의했다. 언론계에서는 더 이상 연합뉴스 기사를 계약없이 가져다 써서는 안되겠다는 공감대가 마련됐다.

그 다음은 조선일보였다. 당시 조선일보 자회사인 디지틀조선은 연합뉴스와 전재 계약 없이 연합뉴스의 실시간 뉴스들을 무단도용하고 있었다. 디지틀조선은 조선일보와 조선일보 계열사, 제휴사들의 질 좋은 콘텐츠에다 연합뉴스 속보를 가져가서 명실상부한 뉴스 포털이 돼 있었다. 네이버, 다음의 뉴스 포털 기능을 디지틀조선이 하고 있었다. 트래픽이 증가해서 디지틀조선의 주가는 폭등세였다. 조선일보 사내에는 디지틀조선 주식 사재기 붐이 일어났다. (디지틀 조선 주식매집 ‘붐’장외등록 추진…5천원대서 2만원으로 ‘상승’ https://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4742
디지틀조선에 정식 계약을 체결하자며 전재료로 월 천만원을 요구하자, 디지틀조선 경영진은 하루 200건 정도만 필요하다며 가격을 후려쳤다. 몇 백만원에 200건 정도의 기사만 공급됐다. 이 결정으로 디지틀조선의 속보성이 사라졌다. 하루 2천건에 달하는 연합뉴스 속보가 빠지자 디지틀조선의 방문자는 크게 주었고 주식 가치도 급락했다. 반면 다음, 야후 코리아 등 검색 포털은 연합뉴스 실시간 콘텐츠 전량을 경쟁적으로 전재했다. 연합뉴스 속보에 조선일보 등 다른 언론사 콘텐츠로 전재해 뉴스 소비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포털의 트래픽이 폭증하면서 뉴스 소비 관행(the habit of news consumption)이 완전히 바뀌었다. 독자는 이미 뉴스를 실시간으로 소비하고 있었는데, 디지틀조선이 속보를 포기하면서, 포털이 실시간 뉴스 유통을 주도하게됐다. 언론사 홈페이지가 뉴스 유통의 주도권을 상실하는 순간이었다.

이어 저작권 규약을 만들고, 포털이나 언론사와 계약할 때 기사 출처와 작성자 이름을 반드시 밝히도록 했다. 포털은 이런 원칙을 지키고 있지만 저작권 인정에 인색한 일부 언론사들은 여전히 자사 홈페이지에서 사용하는 연합뉴스 기사 말미에 “연합”이라고만 적는 편법을 사용하고 있다.

[알림] 연합뉴스 콘텐츠 저작권 고지
송고시간2024-07-28 00:00 공유 댓글 글자크기조정 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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