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01b><colcolor=#fff> |
|
이름 | 이종우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생 | 1928년 10월 18일[1]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 | |
사망 |
2015년
8월 8일(향년 87세) |
학력 | 경신중학교 - 경신고등학교 -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 중퇴 |
무술 종목 | 태권도, 가라테 |
가족사항 |
배우자 박희옥 자녀 아들 이성호 딸 이시은 친손 이상민 (1998년생) 외손 윤성진 (1999년생)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태권도인. 전 국기원 부원장이자 세계태권도연맹의 주요 창립 멤버 중 한명이었다. 태권도를 창시한 1세대 원로들에 이어 도장 통합과 체계 구축 등에 힘쓴 2세대를 대표한 원로 중 한명으로, 엄운규 등과 함께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사이 태권도계 통합을 이끈 인물이었다.2. 생애
이천시 신둔면 출신 부모님 밑에서 6남 2녀 중 끝에서 두번째로 출생했다. 남자로서는 막내였고 아래로 여동생이 하나 있었다고 한다.친구와 함께 해방 후 중고교 시절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하다, 소공동에 있는 전상섭의 조선연무관(후일 지도관 개칭) 권법부에 입단한다. 이 권법부는 1946년 3월 2일에 개관하였고 개관 당시 당수부로 명명됐지만 1년 후 권법부로 칭하기 시작했다.
1960년대 이종우는 기존 가라테의 쿠미테 슨도메룰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고, 태권도의 스포츠화를 주도하며 경기 태권도를 추구, 호구 도입 룰을 개정하며 발차기에 포인트를 주는 발차기 위주의 겨루기를 이끌어냈다.
한국형 품새 제정과 기술 개편에도 관여하였다..고는 하는데 말만 한국형 품새지 일부 품새는 아예 가라테의 평안형을 기본으로 사실상 베낀 수준이라 오늘날 와선 부정적 시각도 있다.[2]
실제 이종우는 태권도인이 되기 전 본인을 가라테를 배운 가라테인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이고, 가라테의 한국식 명칭인 당수도(공수도)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던지 택견 느낌의 태권도 명칭이 확정되던 시절 최홍희와 대립하면서까지 끝까지 태수도라는 명칭을 밀어붙인 인물이기도 했다.
그래도 태권도로 정해진 이후에는 태권도계 발전을 위해 노력하긴 했는데, 말년에는 가라테와 태권도의 관련성에 대한 인터뷰를 해서 당시 태권도계에 일대 파장을 몰고 오기도 했다. 자세한건 항목 참조.
2015년 향년 87세로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