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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0 20:29:47

이정선(음반)

이정선
파일:이정선_1집.jpg
<colbgcolor=#ffffff><colcolor=#000000> 발매일 1975년 6월 26일(최초 발매)[초판]
1976년 3월 30일(재발매)[재판]
1976년 9월 30일(정식 발매)[삼판]
장르 포크, 포크 록
재생 시간 35:57
곡 수 11곡
레이블 지구레코드
프로듀서 이정선

멜론 선정 명반
이정선(음반)


1. 개요2. 상세3. 트랙 리스트
3.1. Side A
3.1.1. 오직 사랑뿐3.1.2. 이리저리3.1.3. 천사#1 (경음악)3.1.4. 오늘같은 밤3.1.5. 천사#23.1.6. 깃발
3.2. Side B
3.2.1. 섬소년3.2.2. 말은 필요없어요3.2.3. 여인3.2.4. 행복하여라3.2.5. 세모
3.2.5.1. 거리
[clearfix]

1. 개요

1976년 발매된 이정선의 공식 데뷔 앨범.

2. 상세

이정선은 자신의 첫 음반이 판매 금지 처분을 받아 사장되었지만 음악성만큼은 인정받아 지구레코드와 60만원이라는 당시 상당한 거금으로 전속 계약을 맺어 두 번째 데뷔 음반을 만들게 된다. 과거의 음반으로 상당한 고초를 겪어서 사회 문제를 직설적으로 풀기보다, 자연과 관련된 노래로 은유적으로 표현하는데 집중했다.

곡 녹음을 하기 위해 당시 미국에서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던 김의철[4]의 형에게 어쿠스틱 기타를 부탁하였지만 이정선이 자주 사용하는 어쿠스틱 기타가 아닌 클래식 기타를 받게 돼 앨범의 히트곡 중 하나인 <섬소년>의 몽환적인 느낌을 내는데 힘이 되었다.
파일:이정선_1집(장발버전).jpg
장발 사진을 수록한 초 · 재판
이 앨범은 다양한 버전이 존재하는데 관련된 일화가 있다. 1975년 6월에 처음으로 발매된 버전은 처음에는 어두운 배경과 장발의 이정선이 함께 찍힌 재킷으로 되어있었으며, 수록곡 중에는 과거에 발표한 적이 있는 <거리>를 다시 수록했다. 하지만 심의 기관에서는 과거 금지 처분을 받은 전적이 있는 <거리>을 빌미로 판매 금지 처분을 내렸다. 결국 <거리>를 삭제시키고 재킷은 유지한 채 다시 발매하였지만, 재킷 사진의 장발이 불량해 보인다는 구실로 또 다시 판매 금지 처분을 내려버렸다. 이정선은 이번에도 음반이 금지되면 영원히 음악을 못 할 거 같은 위기감을 느껴 머리를 자르고 복장을 단정하게 한 사진으로 재킷을 변경한다. 다행히 자켓을 변경한 음반은 다행히 심의가 통과되어 발매될 수 있었으며 1976년 9월에 발매된 삼판을 공식 1집으로 분류한다.

데뷔 음반이 총 3번이나 검열을 당한 사례는 한국 대중가요사에서 찾아보기 매우 드물다. 이정선은 오히려 인생 경험에 도움이 되었다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3. 트랙 리스트

트랙 곡명 작사 작곡 편곡 재생 시간
<colbgcolor=#ffffff><colcolor=#D9BA23> Side A
1 오직 사랑뿐 이정선 이정선 이정선 3:10
2 이리저리 2:32
3 천사#1 2:53
4 오늘같은 밤 2:18
5 천사#2 3:12
6 깃발 2:12
Side B
7 섬소년 이정선 이정선 이정선 4:02
8 말은 필요없어요 4:05
9 여인 4:00
10 행복하여라 3:23
11 세모 3:00

3.1. Side A

3.1.1. 오직 사랑뿐

오직 사랑뿐
몰아치는 비바람을 향하여

3.1.2. 이리저리

이리저리
너는 저리로 나는 이리로

3.1.3. 천사#1 (경음악)


3.1.4. 오늘같은 밤

오늘같은 밤
오늘같은 밤 무엇을 하나

3.1.5. 천사#2

천사#2
은빛 날개 훨훨 펄럭이며

3.1.6. 깃발

깃발
무얼 기다리나

3.2. Side B

3.2.1. 섬소년

섬소년
외딴 파도 위 조그만 섬마을

3.2.2. 말은 필요없어요

말은 필요없어요
말은 필요없어요

3.2.3. 여인

여인
깊은 물고기처럼

3.2.4. 행복하여라

행복하여라
내 마음 주고 받을

3.2.5. 세모

세모
세모 나의 꿈
3.2.5.1. 거리
거리
말을 하는 사람은 많아도



[초판] [재판] [삼판] [4] 이후 둘은 사중창단의 형태였던 초기 해바라기를 결성한다. [5] 1975년 7월 13일, 조선일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