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마이소- 사이코패스 그란 거는 마 유전도 아이고, 이래 가까이 있어도 무슨 감기맹키로 남한테 전염도 안 됩니더.”
번죽이 좋다. 찰진 경상도 사투리를 구사하는, 유쾌하고 긍정적인 사내다. 정의감이 특출나다 못해 호주머니 속에서도 툭 튀어나온 송곳 같기도 하다. 한 10초만 가만 보고 있으면, 얼뜨기 소매치기범까지 ‘형사님은 경찰이 아니라 모델 해도 되시겠어요’ 란 말이 툭 튀어 나올 정도로 허우대 멀쩡한 미남이다. 덕분에 그를 한 번 겪은 이들은, 모두 입을 모아 그가 부잣집에서 세상 부침 한 번 겪지 않고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난, 귀하디 귀한 금수저 외동아들일 것이라 증언하곤 한다. 그러나 사실 그는, 대한민국 최악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윤희재의 막내아들로... 본명은, 윤나무다.
길낙원, 나의 유년시절의 첫사랑이자 자신이 아버지와 다른 종류의 인간임을 일깨워준 최초의 타인이자 유일한 구원자. 지금도 단 하나의 사랑이다. 자신을 품어주어 어쩌면 더욱 고통 받았을 낙원을 생각하면, 어떠한 일에든 평정을 유지하던 자신의 틀을 깨버리며 마치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의 균열을 느끼게 된다.
“제가 과거는 좀 심하게 다큔데, 지금은 완전 버라이어티 예능이라서- 분통도 하루에 막 열 번씩 터뜨려요, 무슨 마우이 화산처럼-”
어린시절 유명배우인 어머니를 둬서 참 귀찮다고 꿍얼거렸지만, 사실은 배우라는 그 변화무쌍한 직업이 참으로 멋져 보였다. 그래서였나, 자연스레 어려서부터 배우로의 꿈을 꿨고, 참혹한 사건을 겪었지만, 결국 이겨 내고 배우의 길을 택했다. 척 보기에도 배짱 두둑하고, 유쾌하고, 명랑하다. 때문에 모두가 생각도 못했다. 윤희재에게 살해당한 국민 배우 지혜원의 딸이란 사실을.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아이콘이자, 멜로 연기가 기가 막히는, 그러나 할 말 다하고 자뻑 충만한, 남성팬은 물론 다수의 여성팬을 거느린 인기 배우다.
윤나무. 사춘기의 입구에서 만난 나의 첫사랑. 그리고 나의 부모님을 죽인 철천지원수의 아들. 너무도 어린 나이에도 어른스럽기만 하던 그 아이가, 나의 부모님을 죽인 원수의 자식이, 지금도 보고 싶은 내가, 두렵고 또 두렵다. 다시 만나게 되면, 또렷이 나를 응시하던 그 아이를 만나면 또다시 사랑하게 될 것 같아, 그것이 가장 두렵다.
“서울 한복판에 1시간만 서 있어 봐. 온갖 놈들이 다 지나가. 그 중엔 조금만 수 틀려도 생판 모르는 너랑 아무 척 진 것도 없이 그냥 쑤시고도 남을 놈들도 버젓이 존재한다고. 세상이란, 인간이란, 그런 거야. 이유는 없어. 그냥 휘두르고 싶은 대로 사는 거야. 미친 세상이잖아. 화풀이는 하고 살아야지. 난 적어도 그런 놈들과는 달라. 격이 있거든.”
피상적으로 매력이 있고 자존감이 넘친다. 병적인 거짓말로 상대를 통제하고, 후회나 죄책감이 결여되었으며 타인에 대한 공감이 떨어진다. 책임감이 없이 늘 자극을 추구하고, 기생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충동성이 강하다. 이처럼, 윤희재는 사이코패스의 필수 요소를 고루 갖춘, 악인이었다.
자신을 우상화하고 매우 닮은 행동 패턴을 보이는 큰아들 현무에게는 박했고, 오히려 자신과 정반대로 착하고 유순하며, 현명했던 나무를 편애했다. 그래서 나무와 관계를 맺어나가는 낙원네 가족이 거슬렸다. 거슬리는 것들이 보이면 해쳐야 속이 후련했기에 낙원의 부모를 처단했다. 그들 탓이다. 나는 태어나면서 불우한 환경에 처했었고, 따라서 충동적이며, 그들이 날 자극만 하지 않았어도 해치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가 채 두 살이 되지 못한 자신을 버린 후, 곧이어 들어온 나무의 어머니가 자신을 키워줬으나 친아들이 아니란 사실을 알게 된 후 어린 나이임에도 곧바로 비뚤어져 버렸다. 아버지를 포함해 모두가 자신보다 나무를 좋아한다. 아버지와 닮은 구석이라곤 하나도 없어 보이는, 그냥 비리비리하고 나약하기 그지없는 놈일 뿐인데… 자신의 어머니가 되어주었으면 했던, 입은 걸지만 정이 많았던 채옥희 역시 나무를 아들처럼 대했고, 자신이 좋아한 유일한 인간이었던 소진까지 나무의 손만을 잡았다. 한 번도 누군가에게 제대로 사랑 받은 적 없던 애정 결핍과 열등감은 인간에 대한 미움으로 변질되었고, 그 상실감과 나약함은 타인을 향한 폭력으로 발현되었다.
첫 번째 남편이자 소진의 친부를 폐암으로 잃고 억척스레 살았다. 생활력이 강했으나 기댈 곳이 필요했고 소진에겐 아버지가 필요했다. 언변이 좋고 수완 좋아 보이며, 무엇보다 소진을 이뻐하는 듯 보였던 윤희재의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 그와 동거를 시작했고, 졸지에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야 했다. 될 수 있는 한 정을 안 주려 했던 채옥희의 의도와는 달리 나무는 외면할수록 눈에 밟히는 아이였다.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이런 놈이 내 아들이었으면, 소진이의 오빠였으면 하는 생각이 갈수록 들었다.
꿈에 그리던 서울, 청담동 헤어샵에 취직해 연예인들의 머리를 맡는 헤어 디자이너의 말단 보조가 되었고, 거기서 다시 재이를 만났다. 재이가 낙원이었을 적, 예쁘고 착했던 낙원 언니를 좋아했지만 이제와 나무 오빠와 썸을 탄다니 두 사람이 너무 안됐기도 하고, 오빠를 뺏기는 듯 묘한 질투가 나기도 해서 고의로 머리를 망쳤다가 스탭들에게 된통 혼이 나기도 한다. 발랄하고 귀여운데 걸쭉한 사투리와 육두문자를 구사해 이성에게도 인기가 많다.
일 할때는 카리스마 넘치고 냉혹한 검사지만, 계장님에게 ‘동생 바보’란 별칭을 얻을 정도로 낙원에겐 끔찍한 오빠다. 그러나, 사실은 인권 변호사로 활동 중이던 길성식 부부에게 입양된 후 새로운 성씨를 얻게 된 의붓오빠로, 낙원과는 생판 남인 사이다. 12살에 부모를 잃고 절대로 사그라들지 않을 것 같던 아픔과 서러운 진동은 낙원과 양부모님의 따스한 손길로 잠재워졌다. 그렇게 마음 속 깊은 곳에 그 상자를 감출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무원은, 앞으로 이들에게 받은 애정을 평생 되갚아갈 것이라 다짐했다. 그래서 너무나도 비참하게 양부모님마저 잃고 난 뒤, 무원은 자신의 상처보다도 낙원의 상처부터 걱정했다. 유산을 노리는 게 아니냐는 친척들의 따가운 눈초리에도 의붓오빠로서 꿋꿋이 자리를 지켰던 이유는, 오직 낙원 때문이었다.
화목한 중산층 가정에서 3남매 중 막내로 사랑 받고 컸다. 예의 바르고, 착하고, 순수하다. 그래선가, 처음 경대에 들어왔을 때 우연히 친구에게서 ‘저 선배, 윤희재 아들이래’ 란 소리를 듣고 도진에게 오히려 관심이 갔다. 소문의 그가, 너무도 맑게 웃고 있어서.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누구보다도 정의로워 보여서. 그렇게 그를 몰래 지켜볼수록, 호감이 커져갔다. 그가 얼마나 아픈 사랑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깊은 상처를 감추고 있는지, 감히 짐작조차 못한 채.
이미 알고 있었다. 그가 연쇄살인범 윤희재의 자식이란 걸. 입학 직후부터 도진에 대한 소문이 교내에 은밀히 퍼졌기에. 도진이 사투리를 구사하며, 넉살좋은 척을 하고,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을 때, 착한 놈 코스프레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옆에서 같이 지켜볼수록, 하루하루 같이 생활할수록, 도진은 정말 좋은 놈이었다. 그 좋은 놈이 그냥 계속 좋은 놈으로 살 수 있게, 곁에서 자신이 지켜봐주고 싶다는 마음이 굳건해졌다.
‘내가 한재이 키웠어!’ 떠들고 다니기보단, ‘재이씨가 날 업어키웠어!’ 말하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에게 전폭적인 신뢰와 지지를 보이는, 재이의 연예기획사 대표. 평생 학업과는 담을 쌓았기에, 맞춤법도 잘 몰라 계약서도 엉망으로 작성하고, 어쩌다 비유를 든 속담은 결정적 단어들이 틀리기 일쑤지만, 재이를 향한 마음만은 진실되고 명확한, 일명 ‘재이맘’인, 극성 매니저다.
아름다운데다 연기력까지 받쳐주는 청춘스타다.
세간엔 청순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로 알려져 있지만, 주변인은 다 안다.
그녀가 웃고는 있으나 실은 비꼬는 것이며,
부드러워 보이나 까칠하기가 수세미 저리가란 걸.
그런데 그 속을 또 까보니, 주변인마저도 잘 모르는 따스함이 숨어 있었다.
자신이 지금의 재이처럼 햇병아리였던 10년 전,
그녀의 어머니이자 연예계 대선배인 지혜원으로부터 받았던
호의와 친절, 배려를 잊지 않고 이를 고스란히 그 딸인 재이에게 대갚음해 줄 정도로.
이를 계기로, 재이가 험한 연예계에서 곤란에 처하고 고립될 때마다
도도하게 충고하며 진심으로 안아주는, 마치 친언니 같은 존재가 된다.
시사월간지 <시사라인>의 베테랑 기자. 기자로서 자신이 세상을 비추기보단, 사실은 세상이 자신을 비춰주길 원했던 박희영으로선, 윤희재라는 짐승은 꽤 값지고 쓸만한 도구였다. 사건의 중심이 되어야 할 피해자, 유가족, 나아가 가해자 가족의 신변이나 상처 따위에도 무감하다. 오로지 살인자가 말하는 ‘그의 팩트’를 취재할 뿐이다. 국민의 오감을 자극할, 자극적인 팩트만을. 결국, 그녀 역시 사이코패스일지 모른다. 윤희재도 이를 모르진 않을 것이다. 단지 한 명은 칼을 들었고, 한 명은 펜을 들었을 뿐.
11화에서 윤희재의 추종자인 염지홍에게 살해당한다.
기레기의 면모를 제대로 보여준다. 도진과 재이의 뒤를 계속 쫓아다니며 그들의 트라우마를 자극하며, 윤희재와 얽혀 상처를 받고 있는 두사람의 뒤에서 계속 카메라를 들이대는 짓을 서슴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