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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9 09:33:31

이도영(1884)



1. 소개2. 개요3. 행적
3.1. 작품
4.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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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파일:external/www.etorrent.co.kr/d5600c253706e2d91865cf1cdb922125_3iJIU72woMVnhL.jpg
한국만화박물관에 전시된 이도영 삽화[1]
위 삽화는 1909년부터 1910년까지 대한민보에 게재된 삽화( 이도영 作)로서 근대적 한국 만화의 시초이다.

2. 개요

이도영의 본관은 연안[2]으로 예조판서 이세재의 손자로, 양근군수 이인승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3. 행적

이도영은 18살이 되었을 때 조선시대 화가였던 조석진과 안중식의 문하생이 되어 전통적인 기법에 다양한 소재를 접목시켜 자유로운 화법을 펼쳤다. 그의 화가로서의 기여뿐만 아니라 1918년에는 "고희동, 조석진, 안중식" 등 13인 발기인과 함께 서화협회를 창립하며 민족 운동에도 앞장섰다. 이도영의 활동은 근대기 교과서 삽화와 잡지 표지 등을 통해 활발했으며, 1910년대 딱지본 소설책의 표지뿐만 아니라 『홍도화』, 『옥중가인』, 『옥중화』 등 다양한 작품을 그려냈다. 그의 표지 작품은 근대 초기의 고급스러운 문화상품으로 꼽히며, 한국 출판사의 근대 표지 디자인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

3.1. 작품

파일:대한민보 만평.png
<colbgcolor=#07446e> 1910년(융희 4년) 6월 23일 자 《대한민보》 만평.
통감부 깃발을 든 일본 관료 양 옆의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만평을 그린 화가 이도영은 "한쪽에서 울며 청하고, 한쪽에서 구걸하는 상황이 참 가관이다"라고 적어두었다.

4. 기타


[1] 일제와 기득권층의 탄압에 대한 풍자 만화로, 대한민보가 창간된 시기인 대한제국 말기-국운이 쇠해갔던 당대에 대한 통렬한 비평을 담고 있다. [2] 연안 이씨 관동파로 조선 중기 4대 문장가 중 한 명인 월사 이정구의 후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