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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 한국만화박물관에 전시된 이도영 삽화[1] |
2. 개요
이도영의 본관은 연안[2]으로 예조판서 이세재의 손자로, 양근군수 이인승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3. 행적
이도영은 18살이 되었을 때 조선시대 화가였던 조석진과 안중식의 문하생이 되어 전통적인 기법에 다양한 소재를 접목시켜 자유로운 화법을 펼쳤다. 그의 화가로서의 기여뿐만 아니라 1918년에는 "고희동, 조석진, 안중식" 등 13인 발기인과 함께 서화협회를 창립하며 민족 운동에도 앞장섰다. 이도영의 활동은 근대기 교과서 삽화와 잡지 표지 등을 통해 활발했으며, 1910년대 딱지본 소설책의 표지뿐만 아니라 『홍도화』, 『옥중가인』, 『옥중화』 등 다양한 작품을 그려냈다. 그의 표지 작품은 근대 초기의 고급스러운 문화상품으로 꼽히며, 한국 출판사의 근대 표지 디자인 형성에 큰 영향을 끼쳤다.3.1.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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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7446e> 1910년(융희 4년) 6월 23일 자 《대한민보》 만평. 통감부 깃발을 든 일본 관료 양 옆의 사람들이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만평을 그린 화가 이도영은 "한쪽에서 울며 청하고, 한쪽에서 구걸하는 상황이 참 가관이다"라고 적어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