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ruby(阮,ruby=Nguyễn)][ruby(友,ruby=Hữu)][ruby(安,ruby=An)] (완우안) |
출생 |
1926년
10월 1일 프랑스령 인도차이나 호아 루 |
사망 |
1995년
4월 9일 베트남 하노이 (향년 68세) |
복무 |
베트남 인민군(1945-1995) |
최종 계급 | 육군 대장 |
주요 보직 | 베트남 국방부장 |
주요 참전 |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 베트남 전쟁 |
응우엔 흐우 안 장군 | 아내와 함께 찍은 사진. |
1. 개요
베트남의 군인.2. 전투 기록
응우엔 후안은 1차 인도차이나 전쟁 초기부터 육군에 합류해서 싸웠다.그는 1949년 방 루 패스 와 렁 파이의 전투에 참가했고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그 다음 해 응우옌 후안은 국경 캠페인에 참여했고, 이븐 케의 전투에서 제174 연대 대대 (CAA Bac Lang) 251 대대의 지휘관이었다.
응우옌 후안은 빈류, 빈푹 및 목쩌우에서의 전투에 참여한 대대 지휘관, 연대 부대장 직을 차례로 수행했다.
디엔 비엔 푸 전투에서 그는 겨우 28살의 나이로 제316사단의 174연대를 지휘했고, 3번 Hill A1(Éliane 2)을 공격했다. 1954년 5월 7일 아침, 그의 지휘하에 174연대는 그의 지휘하에 174연대는 A1 기지를 완전히 파괴하여 무옹 탄을 공격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디엔 비엔 푸 전투의 종지부를 찍게 됐다.
2.1. 베트남 전쟁
1964년 사단장으로서 그는 325사단을 남부 전투로 이끌었다. 물류 확보와 변화하는 상황의 어려움으로 인해 고원에 도착한 325 사단은 산개되었다. 2개의 연대는 5구역으로 내려갔고, 101연대는 고지대 전선 (B3)에 남아 있었고, 그는 B3 부사령관을 역임했다. 그는 101연대를 직접 지휘하여 "블랙 타이거"라는 별명을 가진 대대를 격파한 다음 남베트남 제44연대에게 심각한 손실을 입히고 해당 연대의 지휘관을 사살했다.이후 영화 위 워 솔저스에서도 나오는 이아드랑 전투에서 북베트남군 지휘관을 맡았고, 그는 미군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혔다.[1]
1971년 그는 전투에 참여한 제308사단 사령관이었으며 남라오스 전선에서 다른 부대와 함께 전투하여 승리했다. 승리 후, 그는 중앙위원회에 의해 다시 파견되어 남 라오스 전선에서 Chum Field를 되찾는 것을 도왔다. 1972년 6월 말 응우엔 후 안은 꽝 트리에서 제308사단을 지휘했다.
1975년 춘계 공세에서 응우엔 후안은 2군단의 사령관이었고, 2군단은 그의 명령에 따라서 꽝 트리와 후에를 점령하는데 성공했다.
3일 밤 동안 5군과 함께 다낭 군사 복합 기지에서 거의 10만 명의 베트남 공화국 군대 기동 주둔군을 격파했고 호치민 캠페인에 참여하기 위해 거의 1000km를 행진했다.
판 랑 에서 베트남 공화국 군대의 방어선을 24시간 이내에 파괴했다. 사이공을 점령하기 위한 전투에서 2군단은 사이공을 포위했던 군단중 하나였고, 1975년 4월 30일 11시 30분경 월맹군의 깃발을 남베트남 공화국 궁전에 꽂는 데 성공함과 동시에 즈엉반민 총통에게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도록 강요했다.
3. 베트남 전쟁 종전 이후
1977년 12월부터 1981년까지 크메르 루주 폴 포트에 대한 공격을 하기위해 2대대 지휘관을 하기도 했다. 베트남 전쟁이 끝난 이후로도 응우엔 후 안 은 베트남군에 계속 복무했다. 1980년 그는 중장으로 승진했고 6년 후 대장으로 승진했다.베트남에서 지압장군 이라고 불리던 보 응우엔 지압은 응우엔 후 안 장군을 "전장의 장군" 이라고 불렀고, 현재 베트남에서 닌빈 지역에 그의 이름을 딴 거리까지 있을정도다.
이후 할 무어 중령이 쭈 후이먼, 응우엔 후 안, 보 응우엔 지압을 만나서 회포를 풀기도 했다. 현재까지도 베트남에서 가장 실력이 좋았었던 장성 4인 중에 4번째가 응우엔 후 안 이고, 1번째는 보 응우엔 지압이다.
4. 역임한 지위
- 베트남 인민군 부총참모장
- 베트남군 총참모장 (1984-1987)
- 베트남 육군 학원 감독 (1988-1991)
- 국방부장 (1991-1995)
5. 위 워 솔저스에서
돈 두엉이 연기했다.[2]전투의 거점들을 빠르게 파악하고 미군의 측면과 포반에 매서운 공세를 퍼붓게 하는 등, 할 무어 중령에 버금가는 맞수로 그려진다. 또한 실제 응우옌 후 안 장군과 같이, 희생된 장병들을추모하거나, 부상입은 병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모습을 통해 부하들을 아끼는 모습 역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