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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28 01:45:28

윤형두(1935)

윤형두
尹炯斗
파일:윤형두 기업인.jpg
<colbgcolor=black><colcolor=white> 출생 <colbgcolor=white,#191919> 1935년 12월 27일
일본 고베시
사망 2023년 12월 3일 (향년 87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직업 기업인
학력 오노초등학교 (졸업)
순천농림중학교 (졸업)
순천농림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 법학 / 학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 경영학 / 석사)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출판잡지학 / 석사)
순천대학교 (출판학 / 명예박사)
경력 범우출판 대표
한국출판학회 회장
대한출판문화협회 선임부회장
대한출판문화협회 회장
석당인쇄소 대표
한국도서유통협의회 회장
한국출판협동조합 이사장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이사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이사
한국서지학회 이사
한국언론학회 이사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객원교수
경희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강사
동국대학교 정보산업대학원 강사
서강대학교 언론대학원 강사
연세대학교 언론홍보대학원 강사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 이사장
가족 배우자 강영매[1]
슬하 2남 1녀[2]

1. 개요2. 생애3.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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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

2. 생애

1935년 일본 고베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법학과,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을 수료했다.

1956년 월간 '신세계' 수습기자로 경력을 시작했다. 이 잡지는 이승만 정권이 발췌 개헌으로 독재의 야욕을 드러내던 부산 임시수도 시절 조병옥이 창간한 야당지 ‘자유세계’의 후신 격이었으며, 당시 김대중이 주간으로 있었다. 이때부터 김대중은 물론 김상현, 박순천, 오위영, 장면, 윤제술 등 당대 야권의 거물급 인사들과 인연을 맺게 된다. 1960년 4.19 혁명 이후에는 민주당 당보 ‘민주정치’ 기자로 활약했다.

1966년 범우사를 설립해 출판계에 뛰어든 후 김상현 의원과 함께 월간 ‘다리’를 펴냈다.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때 '다리'는 김대중 후보 관련 모든 선전 책자와 홍보물, 기념패 일체의 제작 책임을 맡았고 이를 방해하려고 일으킨 조작 사건이 바로 ‘다리 필화사건'이었다. 검찰은 '다리' 1970년 11월호에 실린 임중빈의 기사를 빌미로 임중빈, 윤형두, 윤재식 3인을 기소했으나 이 사건 재판을 맡았던 목요상 판사는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무죄 판결을 내려 결국 옷을 벗어야 했다.

파일:다리 필화사건.jpg
1971년 4월 다리 필화사건 1심에서 재판받는 모습. 왼쪽부터 윤재식, 윤형두, 임중빈.

1972년 월간『수필문학』에 수필 「콩과 액운」을 발표하면서 작가 활동도 시작하였다.

한국출판문화상을 4차례(1981·1991·1994·1995년) 받았으며 1988년에는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2007년에는 미국 세계인명사전 '후즈후 아메리칸 판'과 '후즈후 아시아 판'에 동시에 등재됐으며 2009년에는 국제인명센터(IBC)의 '21세기를 대표하는 2천명의 지식인' 중 한명으로 선정됐다.

2023년 12월 3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87세.

3. 저서



[1]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2] 윤재민 범우출판 대표, 윤재준 서울디지털대학교 교수, 윤성혜 윤아트 대표. [3] 전 2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