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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21:14:17

육사외도

六師外道
1. 개요2. 목록
2.1. 니간타 나타풋타(Nigantha Nataputta)2.2. 산자야 벨랏티풋타(Sanjaya Belatthiputta)2.3. 아지타 케사캄발린(Ajita Kesakambalin)2.4.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2.5. 파쿠다 캇차야나(Pakudha Kaccayana)2.6. 푸라나 캇사파(Purana Kassapa)
3. 같이 보기

1. 개요

석가모니 붓다와 비슷한 시대와 장소에서 활동했던 사상가 6명과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을 뜻한다.

당시 인도에서는 우파니샤드 철학에 기초하여 62견(六十二見) 또는 360종 이설(異說)이라 불리는 다양한 사상이 나타났는데, 육사외도는 그 가운데서도 가장 세력이 큰 여섯 집단이었으며 석가모니는 이들을 외도(外道: 삿된 길, 즉 바르지 않은 가르침)로 보아 경계하였다. 유교의 대립항으로 양주, 묵자가 있다면 불교에는 이들이 있다.
"고타마에 의하면 당시의 철학자들은 결국 해결되지 않는 형이상학적(形而上學的) 문제로 논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확집(確執)에 사로잡힌 나머지 그 결과로 생각지도 않은 죄악을 범하고 있었다. 고타마는 이와 같은 논쟁은 의의(意義)가 없는 것이라 하여 논쟁에 가담하려고 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와 세계는 상주(常住)한 것인가 혹은 무상한 것인가? 나와 세계는 유한(有限)한 것인가 혹은 무한(無限)한 것인가? 신체와 영혼(靈魂)은 하나인가 혹은 별개의 것인가? 완전한 인격자는 죽은 뒤에 생존하는가 혹은 생존하지 않는 것인가? 등의 질문이 나왔을 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14無記> 또는 <捨置記>). 왜 대답하지 않았는가 하면 이런 식의 형이상학적 문제의 논의는 무익한 것이어서 진실한 인식(認識, 正覺)을 가져오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 한다. 그는 하나의 입장을 고수하여 기타의 것과 다투는 일이 없었다. 그는 여러 가지의 철학설이 어느 것이나 특수한 집착에 기인한 편견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그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이 성찰(省察)하면서 내면의 적정(寂靜)한 경지에 도달하려고 하였다. 그는 자신이 진실한 바라문 또는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도리를 설파하는 것이라 표방하고 있었다. 불교는 어디까지나 인간이 생활해야 할 도리를 밝힌 것인데, 이 도(道)나 또는 규정을 법(다르마)이라고 불렀다. 불교의 실천적 인식이 최초로 당면한 문제는 인생의 고(苦)라는 것이었다. 인간은 어디에 있거나, 또 어떠한 것에 의지하더라도 고(苦)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고(苦)란 자기가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동양사상 > 동양의 사상 > 인도의 사상 > 불교 > 원시불교의 사상, 《글로벌 세계 대백과사전》]

윤회를 부정하는 육사외도들의 주장을 부처가 배격한 것은 상주론(아트만 긍정=영원한 윤회), 단멸론(윤회부정) 모두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는 괴로움을 낳는 질문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관점을 다르게 보자면 묘하게 상당히 현대적인 견해도 많으며, 한편으로는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 철학자들과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2. 목록

2.1. 니간타 나타풋타(Nigantha Nataputta)

위대한 영혼이라는 뜻의 마하비라(Mahavira)로 불렸으며, 산자야의 회의론을 극복하려고 상대주의(相對主義, anekāntavāda)적 인식론을 수립하고 이원론적 우주론을 제시했다.

영혼(Jiva, 命)은 물질(Pudgala)의 업(業)에 속박되어 있으며, 그 때문에 현실과 같은 비참한 상태에 빠졌다고 파악한다. 그러므로 영혼을 물질로부터 해방시켜야 하는데, 그 방법으로 고행을 제시하였다. 또 불살생(不殺生), 불도(不盜), 불음(不淫)을 지키며, 무소유(無所有)를 실천하였다.

마하비라의 가르침은 육사외도 가운데서 유일하게 현대까지 사라지지 않고 살아남은 사상이기도 하니, 바로 자이나교이다.

2.2. 산자야 벨랏티풋타(Sanjaya Belatthiputta)

진리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회의론(懷疑論)과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주장했다.

산자야의 제자 가운데 뛰어난 사람 두 명이 있었으니, 바로 사리풋다 목갈라나이다. 이 둘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듣고 산자야의 가르침에 회의를 느껴 다른 제자 250명과 함께 석가모니에게 귀의하였다. 산자야는 이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아 피를 토하고 죽었다고 한다.

석가모니, 마하비라 이전에는 상당한 규모의 종단을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결국 회의론과 불가지론은 하나의 생각하는 관점이 되기는 하나 고뇌하는 사람에게 명확한 답을 줄 수 없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불교와 자이나교에 나누어져서 흡수당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3. 아지타 케사캄발린(Ajita Kesakambalin)

단멸론자이자 유물론자. 순세파(順世派, Carvaka)라고 한다. 현세의 삶이 최초이자 최후이므로 인간은 그저 즐기고 살아야 한다는 쾌락주의(快樂主義)자 였다.

물질의 구성단위를 지수화풍(地水火風) 4원소설로 보았는데 이는 불교의 생각과 같다.

아지타는 삶은 사대원소의 결합이며 죽음은 사대원소가 흩어져 무로 돌아가는 것으로 보았다. 그러므로 사후 세계나 영혼의 존재는 완전히 부정했으며, 현세도 없고 미래세도 없다고 보았다. 윤회도 없고 선악에 따른 과보도 없으므로, 도덕을 부정하였다.

2.4. 막칼리 고살라(Makkhali Gosala)

숙명론자. 사명외도(邪命外道).

아지비카(Ajivika) 교단의 교조이며, 자이나교와 유사한 교설을 펼쳤고 교세에 있어서도 자이나교의 니간타 나타풋타에 다음갔다. 교설은 후에 자이나교에 흡수통합되었다.

일체의 구성요소로서 12원소설(지수화풍ㆍ공ㆍ득ㆍ실ㆍ고ㆍ락ㆍ생ㆍ사ㆍ영혼)을 주장했으며, 그 가운데는 영혼도 포함되고 인간의 영혼도 하나의 원소로 파악했던 유물론자이다.

의지의 작용을 부정하고 극단적인 우연론(偶然論), 결정론을 주장했다. 불교에서는 생사윤회를 인과와 업보에 따른 것으로 보았으나, 막칼라 고살라는 인과와 업보를 부정하고 무인(無因) 무연(無緣)을 주장했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어서 수행으로 해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막칼라 고살라의 주장으로는 모든 인간은 8백 40만 겁을 윤회하는 동안 저절로 고통이 없어져 스스로 해탈한다는 것이다.[1]

2.5. 파쿠다 캇차야나(Pakudha Kaccayana)

인간을 구성하는 것을 일곱 가지 요소로 보았다. 이는 지(地) 수(水) 화(火) 풍(風)ㆍ고락(苦樂)ㆍ 생명(生命)ㆍ 영혼(靈魂)이다.

일곱 가지 요소는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생명도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은 나지도 죽지도 않는 불생불멸이라고 인식했다. 그러므로 살인을 저지른다고 해도 죽이는 자도 없고, 살해되는 자도 없다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칼로 인간의 목을 자른다고 해도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일곱 가지 요소 사이로 칼이 지나갈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만의 실재를 인정하는 사고방식은 후세의 바이셰시카(Vaiśeṣika)로 계승 · 발전되어 갔다.

2.6. 푸라나 캇사파(Purana Kassapa)

푸라나 카파라는 노예 출신이다. 석가모니와 신통력을 겨루었으나 패배했다는 기록이 있다.

선악(善惡)의 구분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마음대로 정의한 것이며 실제로 선악은 없다고 주장했다. 살생, 도둑질, 간음 등의 악행을 저질러도 인간이 임의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악행을 범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반대로 보시와 방생 같은 선행을 한다고 해도 그것 역시 인간의 관념에 따른 것이므로 선행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업(業)은 없으며 업에 의한 응보도 없고, 업보도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의 길흉화복은 인과나 운명이 아니라 단순히 우연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보았다. 일종의 무도덕주의(無道德主義) 또는 도덕 부정론(道德否定論)이라고 할 수 있다.

3. 같이 보기



[1] 특히 석가모니가 경계했던 학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