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오의 무장에 대한 내용은 유찬(삼국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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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찬(촉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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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劉纂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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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삼국시대 오나라의 무장이자 손권의 사위로 손권의 둘째 딸[1]을 맞이한다. 후에 부인이 죽은 뒤, 주거가 죽자 손노육의 남편이 된다. 서예가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2. 생애
235년에 여릉의 이환, 노합과 회계의 수춘, 남해의 나려 등의 도적이 일시에 반란을 일으키자 유찬은 당자와 함께 여대의 지휘 아래 이들을 무찌르면서 236년에 수춘을 항복시켜 유찬은 이환을 사로잡고 당자는 노합을 사로잡아 이들을 참수한다.256년에 거기장군을 지낸 유찬은 손준이 문흠이 위나라를 공격하자는 건의에 대해 여거, 주이, 당자와 함께 적을 공격할 계획을 세웠는데, 손준이 죽자 취소되었다. 그러나 여거, 등윤이 손준의 뒤를 이어 손침이 정권을 잡은 일에 반발하자 문흠, 당자와 함께 여거를 공격한다.
266년, 사마소의 장례식에 다녀온 정충이 익양을 습격하면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하자 육개는 그 일에 반대하는데 유찬은
하늘이 오행을 낳았는데, 누가 전쟁을 없앨 수 있겠습니까? 거짓 수단에 의지하여 서로 다투는 것도 종래에 있었습니다. 만일 그들이 누설하는 것이 있다면 어찌 놓칠 수 있겠습니까 ? 마땅히 첩자를 보내 그들의 정세를 관찰해야만 합니다.
라고 말해 정충의 의견에 찬동했는데,
손호 또한 마음 속으로는 유찬의 의견이 맞다고 여겼지만 결국 육개의 의견에 따라 공격은 일어나지 않았다.행적을 보면, 어딘가 묘한 점이 있다. 주거가 죽고 난 후 손노육의 재혼 대상이었고, 후에 손노육이 누명을 쓰고 살해당할 때 전혀 연좌되지 않았으며, 그러면서도 직위는 손호 시절[2]까지 쭉쭉 승진한 미스테리한 인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