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pe (일반/밝은 화면)
최근 수정 시각 : 2023-03-12 12:09:42

유백당



1. 개요2. 행적3. 무공

[clearfix]

1. 개요

"대사. 고맙습니다. 역시 그때 가주의 편지를 대사에게 전한 저의 판단은 실로 비범무쌍한 것이었지요? 물론, 저의 비범함은 그때 십걸과의 10회 결전으로 증명이 되었지만, 도법 말고 지략에서의 비범함은 이제야 증명이 된 셈이군요! 이제 저의 비범함으로 난곡을 다시 일으켜야지요. 이 잿더미 속에서··· 그리고 저는 만년을 호젓한 화염산 근방에 가서 보내야지요."
"좋은 이야기요. 옛날 현장법사의 행로를 따르다 보면 만년이 저절로 호젓해질 거요. 물론 일을 마무리하고서 말이요. 우린 약속대로, 그대와 모용성 대협에게 한 약속대로 돕겠소. 이곳의 무고한 백성이 무사하도록··· 한데···"
"하하핫. 고맙습니다."
- 『호접몽』에서 유백당의 자화자찬(自畵自讚)에 이은 아미파(峨嵋派) 진명대사(眞命大師)의 대답이다.
풍종호의 무협소설 『 호접몽(胡蝶夢)』에 등장하는 육대세가(六大勢家) 중 모용세가(慕容勢家)에 속한 유씨 가문의 장자로, 도성(刀聖) 유장룡의 아들이다. 호쾌하며 장난기가 많은 성격에 여자를 좋아해서 셋째 부인까지 있다. 모용호, 냉천휘, 고소월과는 어렸을 때부터 같이 커 온 사이인 만큼 막역지간(莫逆之間)이다.

2. 행적

육대세가의 논검회(論劍會)는 10~15년을 주기로 열리는데, 이들 4명이 처음 모습을 보여 파란을 일으킨 것은 20년 전 논검회 때이다. 제비뽑기를 통해서 제일 먼저 나서게 된 유백당은 육씨세가(陸氏勢家)의 자제[1]와 겨룬다. 제 실력도 모르고 설쳐대던 그의 목을 날려버리려 한 유백당은 기겁하여 끼어든 아버지 유장룡에게 막혀 무승부로 마치고 내려온다. 그러나 육가의 자제는 오히려 유장룡 때문에 이길 수 있는 비무를 비기게 됐다고 멋대로 행동하는 바람에 유백당은 노발대발(怒發大發)한다. 이어서 냉천휘는 황보세가(皇甫勢家) 자제의 얼굴을 발로 뭉갰으며, 고소월도 상관옥을 물리친다. 마지막 차례였던 모용호는 남궁세가(南宮勢家)의 뛰어난 인재라는 남궁기를 상대로 불패검(不敗劍)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이로써 이들은 모용세가를 빛낼 사룡(四龍)이라 불린다.

인생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 이러한 영광의 논검회가 끝나고 3년 만에 모용세가는 내분이 일어나 후계자였던 모용호가 죽으면서 가문의 갈등은 도를 넘어선다. 다만 노가주인 모용성이 버티고 있었기에 더 표면화가 되지 않을 뿐이었다. 이런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 7년 뒤에 다시금 논검회가 열리고, 유백당은 무슨 이유에선가 논검회에 참석지 않은 채 가족들과 함께 유람에 나선다.[2] 그래도 남아 있던 냉천휘와 고소월의 활약으로 이 두 번째 논검회도 모용세가는 무사히 끝마친다. 하지만 두 번째 논검회 이후 6년 만에 가문을 억지로라도 지탱해오던 노가주가 더는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면서 이제는 모용세가의 직계들은 아무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래서 모용세가는 냉씨 가문과 유씨 가문으로 나누어질 상황에 직면하고 만다.

어느덧 세 번째 논검회가 열릴 시기가 다가와 대체로 이번이 급격히 몰락한 모용세가의 이름이 마지막으로 쓰일 자리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백당은 여전히 세가의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나서지 않으려 했으나, 고소월이 묵린영(墨燐影)을 모용호로 착각하여 죽는 일이 일어나면서 마음을 바꿔 모용세가를 유지하려는 냉천휘를 돕고자 한다.[3] 검의 마성(魔性)을 강제로 억누르는 위험한 방법을 동원하면서까지 냉천휘는 혜광섬혼검(慧光閃魂劍)을 펼쳐 논검회에서 막강한 위용을 뽐내며 모용세가의 힘이 아직 건재하고 있음을 증명한다. 그런데 냉천휘의 바람과는 달리 진정한 후손인 묵린영은 모용세가를 더 이상 지속시킬 생각이 없었다. 마혈방(魔血幇)의 화계(火計)를 틈타 그는 혜광섬혼의 인증을 위한 대결로 냉천휘를 죽인 다음, 냉서한까지 냉혹하게 처단한다. 결국, 냉씨 가문도 모용세가도 남지 않은 난곡의 백성들을 유씨 가문이 남아 지켜나가게 된다.

3. 무공


[1] 현 육가의 가주인 육모화의 동생이다. [2] 늙고 병든 몸으로 가독검(家督劍)을 쥐고 나서야 했던 모용성의 모습이 냉천휘에게는 상처로 남는다. 그는 유백당도 자신과 같은 마음이라 모용성을 볼 수 없어서 유람을 하러 간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3] 인용문을 보면 모용성의 심부름으로 유백당이 아미파에 간 것을 알 수 있다. 즉, 모용성이 모용세가의 문을 닫기로 한 것을 그가 알고 있었다. 그런 까닭에 세가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 아마도 냉천휘 역시 그 사실을 알면서도 내분의 배후인 아버지가 친구인 모용호를 죽인 일이 못내 마음에 걸려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