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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2-17 21:07:33

유몽염

1. 개요2. 생애3. 기타

1. 개요

留夢炎
(? ~ 1295년)

남송 말기, 원나라의 인물로, 남송 최후의 간신. 자는 한보(漢輔)이다.

2. 생애

유몽염은 이종 순우 4년(1244년)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당시 남송은 몽골 제국과의 대치로 인해 정세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고, 남송과 몽골 제국의 대결은 도종 시기에 벌어진 양양 공방전 이후 몽골 제국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공종 덕우 원년(1275년), 유몽염은 우승상(右丞相)이 되고 추밀사(樞密使)를 겸임하였다가 좌승상으로 진위되어, 진의중과 함께 공종을 보좌하는 재상이 된다. 하지만 몽골의 군대가 남송의 수도인 임안부까지 침공해오자, 유몽염은 관직을 버리고 달아난다. 유몽염은 남송 조정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있다가 안무대사로 임명되었지만, 원나라에 항복하였다.
문천상이 풀려나면 강남의 선비들이 다시 원나라에 반발하게 될텐데, 그러면 우리는 장차 어디로 가야 하오?
일전에 유몽염은 문천상에게 원나라로 귀순하도록 권하였지만, 문천상은 도리어 그를 쫓아냈다. 이 때문에 왕적옹(王積翁)과 사창원(謝昌元) 등이 문천상을 도사로 석방하라고 했을 때도, 유몽염은 문천상을 풀어주는 것은 불가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국 문천상은 송나라에 대한 자신의 충심을 꺾지 않고 죽음을 맞이한다.

유몽염은 원나라에서 예부상서와 한림학사승지를 지냈으며, 이후 벼슬에서 물러나 1295년에 사망하였다.

3. 기타

사실 원나라 때 편찬된 송사 명나라 때 편찬된 원사에서는 유몽염의 열전을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유몽염에 대한 평판을 확인할 수 있는 문구가 있는데 내용은 이러하다.
양절에는 유몽염이 있지만, 유몽염은 양절의 수치였다. 명나라 시기에 유씨(留氏)의 인물들은 과거 시험을 치러 갈 때는 모두 "자신은 유몽염의 후손이 아니다"라고 하는 보증서를 써야 과거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송인유사휘편(宋人遺事彙編)

이를 보면, 유몽염에 대한 평판은 악비를 지극히 사랑했던 효종이 악비를 모함하여 죽인 진회를 극도로 증오하여 자신의 치세 동안 진씨 집안의 관직 진출을 차단한 것과 비슷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