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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1 02:29:04

윌리엄 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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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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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호이 전면.jpg
윌리엄 엘스워스 "더미" 호이
William Ellsworth "Dummy" Hoy
출생 1862년 5월 23일
사망 1961년 12월 15일
오하이오주 신시내티 (향년 99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오하이오주 한콕카운티 훅타운
신체 164cm / 67kg~72kg
포지션 중견수
투타 우투좌타[1]
프로입단 1888년
소속팀 워싱턴 내셔널스(1888년~1889년)
버팔로 바이슨(1890년)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1891년)
워싱턴 스테이츠맨(1892년~1893년)
신시내티 레즈(1894년~1897년)
루이빌 커늘스(1898년~1899년)
시카고 화이트삭스(1900년~1901년)
신시내티 레즈(1902년)
1. 개요2. 이전3. 선수시절4. 플레이 스타일5. 실제로 호이가 수신호 발달에 영향을 줬는가
5.1. 출처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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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일:호이 싸인.jpg
우투좌타의 역대 두번째 청각장애인 야구선수. 때문에 더미 호이(Dummy Hoy)로도 알려져 있다. 이 선수를 위해 야구 심판 판정의 수신호가 발달되었다. 덕분에 1888년에 내셔널 리그 도루왕에 수상되었다. 그리고 아메리칸 리그 최초의 그랜드 슬램 선수이기하며 과거 미국에 존재했던 2개의 프로리그와 내셔널리그. 아메리칸 리그를 다 경험한 보기 힘든 기록도 있다.

2. 이전

원래는 청각장애인이 아니었지만 어린 시절 뇌수막염으로 인해 청각장애인이 되었다.

최초의 메이저리그 청각장애인 선수인 에드 던든(Ed Dundon)과 같은 학교인 오하이오 주립 청각 장애인 학교를 나왔다.

원래는 구두수선 일을 하는 자영업자이지만 어느 날 동네 아이들과 공놀이를 하던 호이에게 한 남자가 그걸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아 다음 날 다시와 켄튼에서 어바나라는 팀과 경기를 하는데 한 번 와보는게 어떻냐고해서 타자로 나서게 되어 안타를 치게 되는데 안타를 친 상대는 빌리 할트(Billy Hart)로 당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1886년~1892년)에서 마이너리그이긴하지만 뛰던 선수였다.

그후 야구를 하기위해 가게를 닫고 노스웨스트 리그로 갔지만 청각장애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받아주는 팀이 없다가 오시코시 지역 팀에서 받아줘서 들어가게 된다.

3. 선수시절

파일:오시코시 2.jpg
파일:오시코시 파무스.jpg
차례대로 1986년 왼쪽 맨위 1987년 왼쪽 맨밑

위스콘신주에 오시코시(oshkosh)지역에 파무스[2]라는 팀에서 1886년부터 1887년까지 뛰었다. 그나마 알수 있는 성적은 타율 .367 도루 67개
파일:윌리엄 호이.jpg
워싱턴 내셔널스 시절 만들어진 카드
그 후 워싱턴 내셔널스[3]에서 뛰게 되는 데 첫 입단부터 도루가 82개
타율은 .274로 당시 평균 .239보다 높았으며 팀 내에서 제일 높았다. 그리고 도루가 82개 팀 내 도루 2등인 월트 윌모트(Walt Wilmot)는 도루가 46개다 거의 2배 가까이 된다. 대신 홈런이 2개로 극단적인 똑딱이임을 볼 수 있지만 꼴등이다.

1889년은 588타석 139안타 0홈런 35도루 0.274로 다른 선수들에 비해 조금 뒤쳐졌지만 그래도 평균은 했지만 내셔널리그 8등 즉 꼴등이다.

임금 체불 문제가 있었는지 플레이어스 리그에 버팔로 바이슨으로 이적한다. 버팔로에서는 595타석 147안타 1홈런 39도루 0.298 타율라는 활약을 하여 팀원들과 우승을 못하며 꼴등을하고 타격 관련 상을 1976년 명예의 전당에 오르는 로저 코너(Roger Connor) 19세기 최고의 타자 피트 브라우닝(Pete Browning) 1881년부터 1888년까지 버팔로 바이슨스와 디트로이트 울버린스에서 빅4라고 불린 타자 그룹 중 한 명인 하디 리차드슨(Hardy Richardson)[4] 때문에 상을 하나도 받지 못했고 바로 리그가 사라져 버린다.[5]

그렇게 갈 곳 없어진 윌리엄은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 리그[6] 세인트루인스 브라운스로 간다. 688타석 168안타 5홈런 59도루 117 볼넷 0.292 타율로 활약하지만 플레이어스에서 같이 들어온 보스턴 레즈한테 밀리며 2등 다음 시즌을 기약하지만 리그가 파산하며 내셔널 리그로 돌아온다

워싱턴 세네터스로 들어오자마자 599타석 167안타 3홈런 60도루 0.282타율로 활약하지만 팀은 10등 다음 시즌 588타석 139안타 0홈런 35도루 0.274로 준수하게 하지만 팀은 아예 꼴등으로 가며 이적한다.

1894년 신시내티 레즈로 오고 도루보다는 타격이 더 좋다고 생각했는지 616 타석 153안타 28도루 0.304타율로 활약하지만 팀은 10등을 하고만다.

다음 시즌 490시즌 119안타 50도루 삼진 8개 타율 0.277으로 활약과 더불어 팀은 8등을 하고 드디어 1896년 554타석 134안타 4홈런 50도루 0.298로 활약과 더불어 새로온 타자 하이니 페이츠(Heinie Peitz)의 장타 지원과 에디 버크(Eddie Burke)의 0.340라는 엄청난 타율과 함께 불뿜는 타선으로 3등까지 올라왔으나 투수진이 평균자책점이 .400을 넘는 투수가 있을정도 심각했기에 결국 3위에 그치게 되고 그 후 1897년에도 활약했으나 프랭크 셰리가 보스턴과 시즌 4할 타자 윌리 킬러의 볼티모어 두 팀 때문에 4등으로 시즌을 마감한다.

다음 시즌 루이빌 커늘스로 갔으며 기록은 582타석 117안타 6홈런 37도루 6홈런 타율 0.304 팀내에서 홈런 2등 도루 3등을 기록하며 팀은 9등으로 추락 다음 시즌에는 636타석 194안타 33도루 5홈런 타율 0.305로 활약했지만 또 9등 이 때 아직 신인인 호너스 와그너하고 같이 뛰었다.

그후로 내셔널리그를 떠나 아메리칸 리그에 시카고 화이트스타킹스로 가고 547타석 139안타 32도루 1홈런 타율 0.254로 리그 1위를 처음으로 하지만 그땐 아직 아메리칸 리그가 마이너리그였지만 프로리그로 출범한 1901년 아메리칸 리그가 프로리그로 출범한 해 화이트스탕킹스 최초로 타석에 오르며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527타석 112득점 155안타 27도루 2홈런 타율 0.294로 활약하며 또 한번 우승한다.

1902년 신시내티로 가고 뉴욕 양키스와의 경기에서 호이와 같은 청각장애인 선수인 루터 테일러(Luther "Dummy" Taylor)[7]와 만나 경기를 가졌다. 테일러는 호이에게 싸인를 받고 인터뷰에서
옛날에 호이와 나는 더미라고 불렸다. "그것은 우리를 상처받지 않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더 열심히 싸우게 만들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
“In the old days, Hoy and I were called Dummy,” “It didn’t hurt us. It made us fight harder. Nobody ever felt sorry for me.”
이날 일화로 1번 타자로 나선 호이가 테일러에게 다가가 친근하게 안녕 반가워라고 쓴 종이를 건내며 서로 얘기했으며 심판은 이에 가만히 보고 있었다고 한다.
279타석 81안타 11도루 2홈런 타율 0.290으로 나이가 40세로 기량이 하락한 모습을 보였다.

그후 1903년 로스엔젤레스 에인절스[8]에서 은퇴를 했다.

4. 플레이 스타일

극단적인 교타자이고 통산 타율이 .288로 당시 뛰었던 타자들중에서는 상위권이며 장타율도 나쁘지는 않았으며 키가 작은지라[9]볼넷도 1006개이며 삼진은 345개 정도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의 최대 장점은 빠른 발로 통산 596도루 비공식 617도루로 MLB 통산 도루에서 공식 공동 19위 비공식 17위이다. 물론 1896년 이전에는 과감한 주루도 도루에 포함했으나 그럼에도 리그 도루가 상위권 수준으로 계속 머물렀다는 건 그의 다리가 당대에 상위권이라는 것이며 1896년 이후에도 30도루를 넘는 것을 보면 상당히 발이 빨랐다는 것을 알수있다.

5. 실제로 호이가 수신호 발달에 영향을 줬는가

5.1. 출처

https://ko.m.wikipedia.org/wiki/%EB%8D%94%EB%AF%B8_%ED%98%B8%EC%9D%B4
http://arslongaartcards.com/cards/beginnings-1880s/dummy-hoy-2/
https://www.startasl.com/dummy-hoy/
https://sabr.org/bioproj/person/william-hoy/
https://tribtown.com/2020/07/23/hoy_overcame_all_obstacles_to_star_for_the_reds/
https://www.baseball-reference.com/players/h/hoydu01.shtml
https://www.thenorthwestern.com/story/sports/2019/01/16/deaf-oshkosh-baseball-player-said-have-inspired-umpire-hand-signals/1896925002/
https://www.baseball-reference.com/bullpen/Billy_Hoy
https://www.baseball-reference.com/register/player.fcgi?id=hoy---001wil
https://www.cooperstownexpert.com/player/dummy-hoy/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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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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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조던 발 하임 에디 로빈슨 조지 엘더 아트 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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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래는 오른손 잡이였다. [2] 노스웨스턴 리그로 1886년부터 1887년까지 존재했다. 이 팀이 대단한게 감독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프랭크 셰리(Frank Selee) 후에 내셔널리그에 보스턴 비이터스를 11년 동안 지휘하며 6번이나 우승하고 선수단 21명 중 14명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는데 몇 몇 선수들을 보자면 톰 러벳(Tom Lovett) 투수, 좌익수, 우익수로 네 시즌 동안 내셔널리그에서 뛰었는데 1890년 리그 30승 1891년 20승을 하는 기록을 세웠다. 콘 머피(Con Murphy)는 대부분 마이너리그에서 뛰었지만 마이너에서 100승을 달성했고 거스 그룩(Gus Krock)은 1888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서 22세의 신인 선수로 2위 팀에서 25승 14패를 기록하고 339.2이닝을 던지고 방어율 2.44를 올렸지만 300이닝이 넘는 혹사 때문에 이후 내려가게 된다. [3]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랑 전혀 다른 팀이다. [4] 나머지는 최초의 강타자 댄 브라더스(Dan Brouthers) 장타율이 0.519으로 22년 타이 콥이 앞서기 전까지 최고 기록이였다. 잭 로우(Jack Rowe) 0.286타율과 746득점을 했다. 댄 화이트(Deacon White) 2013년 명예의 전당 헌액자 아마추어 포함 1868년부터 1879까지 뛴 내셔널리그 최초의 타자들 중 한명 [5] 그럴수 밖에 없는게 리그 자체가 임금 문제 때문에 생겼기에 임금 문제가 끝나면 없어질 예정이였다. [6] 현재 독립 리그인 아메리칸 어소시에이션과 이름만 같다 [7] 뉴욕 자이언츠 주요 투수로 8 시즌 동안 활약했다 [8] 퍼시픽 코스트 리그 팀으로 로스엔젤로스 룰루스라고도 알려져 있다. 1958년 브루클린 다저스가 로스엔젤레스로 연고이전을 하며 사라졌다가 나중에 이 이름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가 생기면서 다시 생겨난다. [9] 164cm는 당시 미국 평균 키인 169cm 보다 작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