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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02 14:12:02

윌리엄 글라스데일

성명 윌리엄 글라스데일
William Glasdale
생몰년도 미상 ~ 1429년 5월 7일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사망지 프랑스 왕국 오를레앙
직위 잉글랜드군 투렐 성채 수비대장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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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군인. 오를레앙 공방전에서 잔 다르크에 대적하다가 전사했다.

2. 생애

글라스데일에 대한 자료는 프랑스 쪽 기록인 <처녀 연대기>, <오를레앙 공방전 일기>, <파리 시민 일기>에서만 확인된다. 이에 따르면, 그는 오를레앙 공방전에 참여한 잉글랜드군 장교로서, 1428년 10월 21일 잉글랜드군이 오를레앙 주변 요새들 중 가장 중요한 요새로 손꼽히는 '투렐(Turel)' 요새를 공략한 뒤 그곳의 수비대장에 발탁되었다. 그는 500명의 장병을 이끌었고, 투렐 요새에 다양한 구경의 대포를 장착한 뒤 오를레앙 성채에 포격을 퍼부었다. 1428년 12월 25일 성탄절을 기념한 임시 휴일 때, 오를레앙 수비대 지휘관 장 드 뒤누아에게 사절을 보내 숙련된 음악가들에게 트럼펫을 불도록 명령해달라고 요청했고, 뒤누아의 지시를 받은 음악가들은 꽤 오랫동안 훌륭한 곡을 연주했다고 한다.

1430년 4월 29일 오를레앙에 도착한 잔 다르크는 5월 1일 도시 밖으로 나가서 모든 잉글랜드 요새를 개인적으로 조사한 뒤 루아르 강의 파괴된 다리로 가서 글라스데일에게 물러나달라고 설득했다. 훗날 그녀의 행적에 대해 법정에서 증언한 성직자 장 파스쿠렐은 잉글랜드 병사들이 이렇게 외쳤다고 회상했다.
"아르마냑 창녀가 여기에 왔다!"

이후 글라스데일은 잔 다르크에게 이렇게 외쳤다.
"네년은 젖소다! 네년을 잡으면 불태우겠다!"

글라스데일이 온갖 조롱과 저주를 퍼부었지만, 잔 다르크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계속 설득했다. 그녀의 종자였던 장 돌론은 훗날 잔 다르크 복권 재판에서 글라스데일이 끝내 물러나지 않자, 잔이 오를레앙으로 돌아가면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증언했다.
"이제 소중한 프랑스인의 피를 얼마나 흘려야 할까요?"

1430년 5월 7일, 잔 다르크의 독려를 받은 프랑스군이 투렐 요새를 맹공격한 끝에 함락했다. 잉글랜드군은 패주하다가 불타는 바지선에 의해 손상을 입은 다리가 병사들의 무게 때문에 무너지면서 물속에 떨어져 대거 익사했다. 그 중에는 지난날 잔 다르크에게 조롱을 퍼부었던 글라스데일도 있었다. <파리 시민의 일기>에 따르면, 그의 유해는 물에서 건져진 뒤 네 조각으로 자르고 끓는 물에 삶은 뒤 생메리로 옮겨져 예배당 근처 창고에 8~10일간 머물렀다가 고향으로 돌아가 그곳에 묻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