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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9 19:59:29

HMS 워스파이트

워스파이트에서 넘어옴
파일:external/livedoor.blogimg.jp/b7515184.jpg

1. 개요2. 제원3. 상세4. 함생5. 미디어에서

1. 개요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2번함. 그랜드 올드 레이디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함선의 모토는 Belli dura despicio(나는 전쟁의 고난을 경멸하노라).

2. 제원

전장 196.22m(취역 당시)
전폭 27.56m(취역 당시)
흘수선 9.27m(취역 당시)
배수량 경하 29,150톤/만재 33,000톤(취역당시), 경하 32,468톤/만재 36,565톤(1940년)
승조원 951명(취역당시), 1184명(1940년)
추진기관 파슨스 직결식 증기터빈 4기, 4축추진
보일러 밥콕 & 윌콕스 증기보일러 24기
연료탑재량 3,400톤
출력 75,000마력(취역당시), 80,000마력(1940년)
최고속력 25노트(취역당시), 24노트(1940년)
항속거리 10노트 4,400해리(취역당시), 10노트 13,500해리(1940년)
주포 42구경장[1] 15인치(381mm) 연장포탑 4문
부포[2] 45구경장 6인치(152mm) 단장포 16문
대공포 45구경장 3인치(76mm) 단장포 2문
45구경장 4인치(102mm) 단장포 2문[3]
45구경장 4.5인치(114mm) 연장포탑 10문[4]

기본적으로 제원은 1번함 퀸 엘리자베스와 같다.[5]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은 5척 중 3척이 개장을 받았는데, 워스파이트는 1941년에 가장 처음으로 대개장을 받았다. 대개장 때는 퀸 엘리자베스와 밸리언트와는 달리 측면 포곽과 6인치 포를 그대로 냅뒀다. 나머지 둘은 6인치 포를 철거하고 모두 4.5인치 양용포를 장착했다. 이렇게 된 이유는 유틀란트 해전에서 실컷 두들겨 맞는 원인이 되었던 키 고장이라는 고질병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가 있는 배였지만, 전함이라서 버릴 수도 없는 탓에, 리나운급 순양전함 리펄스와 함께 테스트베드라고 쓰고 모르모트 개장의 대상이 된다. 그 결과는 퀸 엘리자베스와 밸리언트, 리나운의 대개장 사양에 피드백되었고, 어드미럴급 순양전함 후드의 개장에도 적용될 예정이었으나 그 전에 격침된다.

3. 상세

1912년 데이븐포트 해군기지에서 기공되어 1915년 3월 8일 취역. 제1차 세계 대전 유틀란트 해전에서는 키 고장으로 뱅뱅 돌게 된 탓에 헬골란트급 전함 4척에게 집중공격을 당해 최소 15발 이상 피탄되어 대파되었고 14명 전사, 32명 부상의 피해를 입었으나 버텨내었고 259발을 쏴붙이며 무사히 철수했다. 이 키 고장은 워스파이트의 함생 내내 함께 하게 되는 고질병이 된다.

전간기에는 이런저런 고장이나 사고가 잦은 배로 불운한 배라는 이미지를 얻기도 했다. 유럽에 공산주의가 한창일 때는 수병들의 파업도 있었으나, 유혈진압한 러시아와는 달리 장교들이 신사적으로 협상에 응했다. 퀸 엘리자베스급 전함 중에서 가장 먼저 개장을 받았는데, 리펄스와 함께 테스트 베드 노릇을 했다. 이는 이 배가 키 고장을 겪은 탓에 덜 아까웠기 때문이었다(...)개장 결과는 자매함들[6] 리나운에 반영되었고, 후드의 개장안에도 영향을 주었으나, 다들 알다시피 후드는 이 개장안이 적용되지 못했다.[7]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나르빅, 크레타, 살레르노 등지에서 맹활약하며 영국 해군 최고의 수훈함으로 자리매김했다. 노르웨이 전역에서는 독일 해군 수상함대 세력의 절반 가까이를 파괴했고, 지중해 전역 칼라브리아 해전에서는 콘테 디 카보우르급 전함 줄리오 체자레를 상대로 역대 최장거리인 23km에서 명중탄을 내는 등 나치 독일 해군과 이탈리아 해군에게는 악몽 같은 전함이라고 볼 수 있다. 살레르노 침공 작전에 참가했다 Fritz X에 피격되어 대파당하며, 이후 불구의 몸을[8] 이끌고 노르망디 상륙 작전 등지에서 연안포격함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1947년에 퇴역. 공적만 놓고 보자면 충분히 기념함으로 보존될만한 가치가 있었지만, 전후 영국 경제사정이 개판이 된 터라[9] 어쩔 수 없이 해체되었다. 이때 영국은 백오십 년 된 테메레르급 전열함 임플래커블함도 폭약으로 날려버린 상황이었다. 해체를 위해 예인 중 폭풍으로 인해 해안으로 떠밀려 콘월 서부 해안 프러시아 커브에 좌초되었고, 그냥 거기서 해체되었다. 전체 해체가 완료된 것은 1950년.그래도 최대한 보존해서 관광수입 좀 벌어들이면 좋았을 텐데[10]
해체되는 워스파이트


이후 워스파이트라는 이름은 발리언트급 공격원잠 2번함에 계승된다. 이 배도 평시의 사고뭉치 기믹을 어느 정도 물려받았다는 후문. 이 워스파이트는 1991년에 퇴역했고, 건조 예정인 드레드노트급 잠수함 3번함이 워스파이트라는 함명을 물려 받았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모두 거친 백전노장이라 할 수 있는 함선이라 사람으로 치면 노인네 취급을 받았다. 대표적인 예로 마타판곶 해전에서 워스파이트가 전과를 올리자 당시 지중해함대 사령관이었던 앤드류 커닝햄 제독은 "노부인(Old Lady)도 치마를 들어 올리면 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여담으로 건조비는 대략 250 만 파운드였는데, 개장비도 대략 250 만 파운드쯤 들었다. 모 군화모양 나라처럼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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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함생

HMS 워스파이트의 파란만장한 함생을 정리한 글: (1) (2) (3) (4) (5)

5. 미디어에서


[1] 포신길이/포 직경 [2] 2기 삭제, 상기사항은 자매함별로 상이할수 있음. [3] 1926~27년 근대화 개장에서 4기 증설뒤 40년 개장에서 전부 삭제, 상기사항은 자매함별로 상이할수 있음. [4] 1940년 개장시 증설. [5] 함교모양은 살짝 다르다. [6] 그러나 4번함 버럼과 5번함 말라야는 예산 부족으로 제대로 된 개장을 받지 못하고 퀸 엘리자베스와 벨리언트만 재대로 된 개장을 받는다. [7] 그리고 훗날 후드는 개장받지 못한 약점부분이 피탄당하면서 그대로 격침당하고 말았다. [8] 3번 주포탑과 4번 보일러실 사용 불가. 이 상처는 끝내 수리되지 못했다. [9] 이 때문에 영국은 미국으로부터 물자 지원을 받았고, 1954년, 그러니까 전쟁 끝나고도 9년이나 지났는데 배급제를 유지해야 했다. [10] 비슷하게 경제적 사정으로 이 우주괴물도 기념함이 되지 못하고 해체되었다. 여담으로 HMS 벨파스트의 경우 1968년까지 활동을 하다 기념함이 되었는데, 그렇게 될때까지 3년이나 걸렸고, 1971년이 되어서야 기념함이 되었지만, 그 3년이라는 과정에서 해체 위기까지 겪기도 하는등 우여곡절이 있었기 때문에, 47년에 퇴역한 워스파이트가 살아남기란 힘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