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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d1b43><colcolor=#ffd400> 조선 전계대원군의 부인 | 조선 철종의 친모
용성부대부인 | 龍城府大夫人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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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부대부인 묘소 근경 | |||
출생 | 1793년 7월 20일 | ||
조선
강화도 (現 인천광역시 강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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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1848년 이전 (향년 55세 이하) | ||
능묘 |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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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6d1b43><colcolor=#ffd400> 본관 | 용담 염씨 | |
부모 |
부친 염성화(廉星華) 모친 상주 지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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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자매 | 남동생 염보길(廉輔吉) | ||
배우자 | 전계대원군 | ||
자녀 |
슬하 1남 장남 - 철종 장황제(哲宗 章皇帝, 1831 ~ 18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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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작 |
영원부대부인(鈴原府大夫人) →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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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계대원군의 소실이자 철종의 친어머니이다. 조선의 부대부인들 중 유일하게 정실이 아니다.2. 생애
일생에 대해 남아있는 기록이 거의 없다.다만 가계가 굉장히 한미했다고 한다. 할아버지 염덕석이 생전에 사과(司果)[1]를, 증조할아버지 염상임이 통정대부(通政大夫)[2]를 지낸 것이 그의 집안 관직 내력의 전부라고 한다. 그리고 조상들의 묘소가 강화군 양도면 하일리 일대와 강화군 송산에 있었다고 한다. #
언제 전계대원군의 소실이 되었는지, 그 전에는 어떻게 살았는지 역시 알려진 게 없다. 다만 그의 선산이 강화군에 있는 점, 전계대원군이 귀양 생활 하던 곳이 강화도인 점을 볼 때, 두 사람은 전계대원군의 유배가 풀린 1830년( 순조 30년) 이전에 강화도에서 만난 듯 하다.
슬하에 자녀는 철종 1명만 두었다.
언제 사망했는지도 모른다. 다만 《 철종실록》의 기사 들을 보면, 철종이 즉위하기 전에 세상을 떠난 듯 하다.
1849년(철종 즉위년) 아들 철종이 즉위한 후 부대부인으로 추증받았고, 더불어 친정 조상들과 형제들도 증직받았다. 첫 작호는 '영원부대부인(鈴原府大夫人)'이었으나 1861년(철종 12년)에 '용성부대부인(龍城府大夫人)'으로 바뀌었다. #
3. 사후
묘소는 처음에는 한성부 홍은동에 있었다가, 후에 경기도 양주군 수동면 답동리를 거쳐 다시 경기도 포천시 선단동 산11번지 해룡산으로 옮겨졌다. 그곳은 전계대원군과 완양부대부인 최씨를 합장한 묘소의 왼쪽 아래에 있는 언덕이다.4. 여담
- 철종 즉위 후 남편이 전계대원군으로 추봉받을 때, 전계대원군의 처가 조상 3대의 벼슬도 같이 추증했다. 그런데 용성부대부인은 소실이기 때문에, 그의 친정 식구들은 추증받지 못할 뻔했다. 처음에 신료들은 전계대원군의 본처인 전주 최씨의 친정만 증직하자고 주장했다가, 그래도 왕의 생가인 염씨 집안도 추증해야 한다는 반론이 나와서 같이 추증했다.
5. 사건 사고
5.1. 염종수 사기 사건
철종이 왕위에 오른 후, 용성부대부인의 가문을 사칭한 사기 사건이 일어났다.경기도 파주 근방에 살던, 파주 염씨 성을 가진 염종수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철종 즉위 직후, 새 임금의 외가가 용담 염씨라는 것을 알았다. 용담 염씨는 파주 염씨에서 갈라져 나온 가문이다. 그래서 염종수는 자신과 철종이 한 뿌리이며, 왕의 친척임을 내세워 부귀영화를 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철종의 외할아버지인 염성화의 가계가 자신의 가계에서 갈라져 나간 것으로 족보를 위조하는 엄청난 짓을 꾸몄다. 그리고 본인이 철종의 외삼촌이라고 거짓 상소를 올렸다. 가까운 친척 하나 없어 항상 외로움을 느끼던 철종은 염종수 부자를 궁궐로 불러와 잘 대접했고 벼슬도 주었다. # # 그렇게 호강을 누리던 염종수는 완전범죄를 꾸미려고 염성화 묘 앞에 비석을 세운 다음, 본관 적는 공간에 '용담(龍潭)' 대신 자신의 본관인 ' 파주(坡州)'라고 새겨 넣는 짓까지 벌였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밟히는 법. 강화도에서 살던 철종의 진짜 외삼촌이자 용성부대부인의 남동생인 # 염보길이 진실을 밝혀냈다. # 염종수는 왕을 속인 죄로 목이 달아났고 # 그의 아들 염희영은 제주도의 관노비로 전락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