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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17 09:45:48

요한 게오르크 폰 작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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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일생
2.1. 초기 경력2.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

1. 개요

작센 선제후국의 육군 사령관.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 7년 전쟁에서 작센군 지휘관으로서 활동했다.

2. 일생

2.1. 초기 경력

게오르크는 1704년 8월 21일 드레스덴에서 태어났다. 그는 폴란드 국왕이자 작센 선제후인 아우구스트 2세의 사생아였고, 어머니는 폴란드 왕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가문 중 하나인 루보미르스키 가문의 여식이었다. 게오르크는 드레스덴 브레슬라우에서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았고 1718년 9월 로마로 가서 예수회 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처음에는 테셴의 왕자라는 칭호를 얻었고 어머니의 의향에 따라 성직자가 되고자 했다. 그는 몰타 기사단에 들어갔고 1722년 몰타 대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그는 곧 슈발리에 드 삭스라는 호칭으로 불리게 된다.

1724년 12월, 게오르크는 로마를 떠나 뤼네빌로 가서 로렌 공작의 거처로 안내받았고 1726년 5월 대종사장의 명령에 따라 몰타로 파견되었다. 그러나 1727년 10월, 게오르크는 몰타 기사단을 떠나 드레스덴으로 소환되었다. 아버지 아우구스트 2세는 프로이센군과 경쟁할 수 있는 군대를 구축하고 싶어했고 그를 작센군에 배속시켜 군사적 역량을 키우고자 했다. 이에 따라 작센군에 들어간 게오르크는 1729년 12월 12일 작센군의 대령 계급에 임명되었다.

1730년 1월 1일 게오르크는 클링엔베르크 용기병 연대의 지휘관이 되어 명칭을 슈발리에 드 삭스 드래곤 연대로 변경했다. 그 후 자이텐의 수비를 담당하고 있던 그는 1733년 2월 1일 아우구스트 2세가 바르샤바에서 갑자기 사망하자 슈발리에 드 삭스 연대를 폴란드로 이동시켜서 이복형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가 8월 2일 폴란드-리투아니아 국왕으로 선출되는 것을 지지했다. 이후에 벌어진 폴란드 왕위 계승 전쟁 동안, 작센군은 3년간 폴란드에 머물렀다.

1734년 초,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이자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장 카를 6세는 작센에게 프랑스와의 전쟁을 위한 부대를 제공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6천 명의 작센군이 투입되어 오스트리아군에 입대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게오르크는 그의 연대를 이끌고 사부아 공자 외젠의 지휘하에 티모크 전투에 참가했다가 부상을 입었다. 1738년 9월 7일, 게오르크는 아우구스트 3세에 의해 기병대 소장에 임명되었다. 그리고 1740년 8월 11일엔 기병대 중장으로 승진했고, 같은 해 9월 1일 드레스덴에 소환되어 근위 기병 연대 지휘를 맡았다.

2.2.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

1740년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이 발발하자, 작센은 합스부르크 가문에 대항하여 프로이센 왕국의 편을 들었고, 게오르크는 기병대 지휘관으로서 프로이센군과 함께 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군의 거센 역공으로 큰 피해를 입자, 작센은 1744년에 태도를 바꿔 오스트리아의 편을 들어 프로이센군과 맞섰다. 그러나 작센군은 1745년 12월 15일 케셀스도르프 전투에서 참패했고, 결국 전쟁에서 이탈했다. 이듬해 작센 총리 브륄 백작 하인리히는 작센군 3만 명을 1만 8천명으로 감축시키는 정책을 감행했다. 이에 대해 작센군 총사령관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폰 루토프스키와 2인자인 게오르크가 반대했지만, 브륄은 모든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정책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브륄 백작의 감축 정책은 작센군에겐 치명타나 다름없었다. 1756년 프로이센군이 작센을 침공했을 때 작센군은 전쟁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결국 작센군은 피르나에 피신해 오스트리아군의 도움을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그들을 구하려 했던 오스트리아군이 10월 1일 로보지츠 전투에서 패퇴하자, 모든 희망을 잃은 작센군은 10월 15일에 항복했다. 이리하여 작센군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후 게오르크는 드레스덴에서 자신의 이복 동생이자 상급 장성인 루토프스키와 함께 드레스덴에서 힘든 나날을 보냈다.

1763년 7월 27일 루토프스키가 사망한 후 게오르크가 작센군 원수 및 드레스덴 주지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그는 프란츠 크사버와 함께 작센군을 강화시키기 위한 일련의 개혁을 실시했다. 1764년 11월 27일 드레스덴 시 외곽의 진젠도르프센 정원을 건설하고 그 한 가운데에 웅장한 궁전을 지은 게오르크는 1770년 1월 30일 군대를 떠나 그의 정원으로 이주했다. 그후 그는 1774년 2월 25일 병사했다. 향년 70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