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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5 03:56:47

요주(삼국지)

姚伷
(? ~ 242)

1. 개요

삼국시대 촉한의 인물이며 자는 자서(子緒)로 익주 파서군 낭중현 사람.

2. 생애

유비가 익주를 평정하자 공조서좌가 되었고 이 때 2천석의 지위에 있으면서 명성이 높았으며, 장억과 사이가 좋았다. 유비가 죽은 후인 223년에 광한태수가 되었고 제갈량이 위나라를 공격한 북벌을 감행해 한중에 주둔할 때 제갈량이 그를 불러 연으로 삼았으며, 요주는 문무의 인재를 동시에 추천했다.

제갈량이 그를 칭찬하여 말했다.
군왕에게 충성하고 이익이 되게 함에 있어서 인재를 추천하는 것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인재를 추천할 경우에는 각각 자신들이 좋아하는 분야에 힘쓰려고 합니다. 그런데 현재 요연(姚掾)은 강함과 부드러움을 병존시켜 문ㆍ무 두 방면에서 쓰는 사람의 수요를 확대하고 있으니, 넓고 전아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 연의 지위에 있는 자들이 각기 이 일에 주의하여 나의 기대에 보답하기 원합니다.

그는 참군(參軍)으로 승진되었다. 제갈량이 세상을 떠난 후, 점점 승진하여 상서복야(尚書僕射)가 되었다. 당시 사람들은 그의 성실함과 순수함에 감독했다. 연희(延熙) 5년(242)에 사망했다.

그가 사망한 것은 계한보신찬이 쓰여진 이후라는 것으로 볼 때 계한보신찬은 242년 이전에 저술된 것으로 보인다.

3. 미디어 믹스

3.1. 코에이 삼국지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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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소설 삼국지 마행처우역거

승상연으로 나오고 비관이 위나라의 목민관으로 유명한 창자를 암수를 써서 죽인 일로 신문받았는데, 보즐이 추국장에 있는 것에 대해 비관이 한 소리하다가 양희가 너무 지나치다고 하자 요주는 일 리가 있다면서 동맹이라도 사신이 추국장에 있는 것은 맞지 않다고 했다.

이 일로 논쟁을 벌이다가 맹광이 공자와 맹자를 언급하면서 대신들이 공자가 농사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다고 섭섭하게 여긴 것을 오해했는데, 맹광이 공자가 농사를 중요하게 여기고 여러 개의 문답을 나누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오해한 것에 대해 자신의 죄라면서 요주는 죄를 청했고 요주의 뒤를 이어서 이복, 여예, 양홍, 종예, 왕사 등도 함께 자신들의 잘못이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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