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요안니스 말라라스 (영어: John Malalas, 그리스어: Ἰωάννης Μαλάλας) |
출생 | 490년대 |
사망 | 570년대 |
직위 | 연대기 작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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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기 6세기경에 활동한 동로마 제국의 연대기 작가.2. 생애
490년대에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에서 출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말라라스'라는 이름은 아마도 아람어 말로로(malolo, ܡܰܠܳܠܰܐ )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 의미는 "웅변가", 또는 "변호사"이다. 일찍이 안티오키아에서 법률을 공부하였고, 안티오키아 정부에서 일하거나 안티오키아 총대주교의 법률학자로 일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526년 안티오키아에서 일어난 대지진 직후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주하였다. 이후 연대기를 집필하였으며, 570년대에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3. 연대기(Χρονογραφία)
그의 연대기는 천지창조부터 563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조카인 마르키아누스가 이끄는 로마군이 아프리카 원정을 떠나는 이야기까지의 역사를 다뤘다. 총 18권으로 구성되었는데, 당대에 상당한 인기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9세기까지 여러 역사가들이 그의 연대기를 인용하였고, 10세기 경에는 고대 불가리아어로 번역되었고, 중세에는 러시아어와 조지아어, 라틴어 등으로 번역되었다. 현재 그의 연대기는 부분적으로 손실된 내용이 있는 걸 빼면 거의 온전하게 전해지고 있다.그는 독자들이 자신의 작품에 접근하기 쉽게 하고자 구어체로 서술하였다. 수많은 일화를 기술하면서 출처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고, 역사와 신화, 그리고 성경의 일화를 뒤섞곤 했다. 그래서 현대 역사가들은 그의 연대기가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5세기 말부터 6세기의 사건들에 관한 기록은 비교적 정확하다는 평을 받으며, 다른 연대기에서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여럿 있기 때문에 마냥 무시할 수는 없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크레타 문명의 멸망과 트로이에 대한 색다른 정보를 제공한 점이 주목받는다.
말라라스에 따르면, 크레타 왕 미노스에게 미노타우로스라는 사생아가 있었는데, 미노스가 죽자 미노타우로스가 왕위에 올랐다. 섬의 소왕들은 서자의 통치를 모욕으로 여기고, 미케네 일대의 최북단인 테살리아의 왕 테세우스를 초대했다. 테세우스는 즉시 크레타로 가서 미노타우로스를 공격하여 제압했지만, 곧 크레타 일대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결국 소왕들은 자신들의 행위를 후회하며 고르틴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이 사건 이후로 크레타의 해상 무역 지배는 완전히 끝났다고 한다.
또한 말라라스에 따르면, 미케네인들의 함선이 헬레스폰트 해협을 통과했을 때 아나톨리아의 왕에게 공격당했다고 한다. 이리하여 해전이 벌어졌고, 미케네군이 압승을 거뒀다. 미케네군은 연이어 대도시를 습격하여 파괴와 약탈을 자행했다고 한다. 많은 중세 작가들은 이 사건이 그리스인과 트로이인 사이의 분쟁의 실제 원인이라고 여겼다. 한편, 말라라스는 트로이 왕국이 프리기아 전역을 다스리는 강대한 국가였다고 기술했다. 신뢰성이 떨어지는 이야기기는 하지만, 6세기의 학자들이 크레타와 트로이, 그리고 미케네 문명에 대해 어떤 관념을 가졌는지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