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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03 09:59:01

외환은행 여자 농구단

정식 명칭 외환은행 여자 농구단
창단 1974년
해체 1997년

여자 농구 실업 구단. 외환 위기 당시 해체한 곳 중 하나다.

원래 전신격인 팀이 하나 있었다. 1972년 생긴 시온합섬이 그 전신이다. 시온합섬이 어떤 회사냐면, 천부교 소속 회사, 즉 신앙촌계 회사였다. 소위 개신교에서 말하는 이단과 관련된 곳이다. 즉, 과거 성남 일화 천마 축구단을 개신교에서 바라보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딱히 종교적인 열정을 가지고 뽑은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종교와 떨어져서 생각할 수는 없던 팀이었다. 참고로 시온합섬은 아직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팀은 1974년 횡령 등의 혐의로 회사 대표가 구속되는 등, 경영에 부침을 겪으면서 해체되었다. 이 때 선수들을 모두 새롭게 생긴 외환은행 농구단에 몰아주면서 외환은행 여자 농구단이 생길 수 있었다.

전성기 시절 대표적인 선수는 강현숙, 방신실, 나현숙이었다. 특히 강현숙은 시온합섬 시절에 팀에 합류해서 훗날 국가대표 명 가드로 이름을 떨치는 이 선수는 시온합섬 팀 창단 1년 만에 팀을 대회 우승으로 이끄는 등 맹활약했다. 사실 이 팀을 주축으로 구성된 외환은행은 적어도 1970년대 중엽부터 1980년대 초까지는 강팀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뒤, 금융단 팀이 일반 실업팀에게 스카우트비에서 밀리면서 전력 보강에 실패해 1982년 전국체전 우승을 끝으로 점차 추락하기 시작했다. 1983/84 점보시리즈에서 종합 4위를 해 체면치레를 했지만, 이후 농구대잔치에서 3차 대회 문턱도 넘지 못했고, 이를 보다 못해 모기업 노조 측이 팀을 살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금운동을 벌였고, 사내에서도 '환은농구후원회'가 꾸려졌다. 1995년 12월 농구대잔치 선경증권전에서 유영주에게 한 경기 최다득점 기록인 55점을 내준 적도 있을 정도로 전력이 정말 좋지 않았다.

1990년대 중반 들어 은행의 전폭적인 지원 속에 스카우트비를 늘리면서 다시 뭔가 시도하려고 했지만 바로 찾아온 IMF에 그대로 무릎을 꿇고, 1997년 12월에 탁구단과 동반해체되었다. 외환은행 자체도 없어질 위기인 지금, 농구단이 만일 IMF 파고를 넘었더라도 외환은행 이름으로 계속 남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외환은행 여자 농구단이 해체되고 15년 뒤, 하나금융지주는 해체 위기에 직면한 신세계 쿨캣 농구단을 인수하여 외환은행의 이름이 들어간 여자 프로 구단인 부천 하나외환 여자 농구단을 창단했다. 여담으로 서울은행 서울은행 여자 농구단을 운영하다가 1998년 2월에 해체했는데, 우연히도 두 은행이 하나은행에 넘어온 후 프로에서 부활한 셈. 대신 현재의 부천 하나원큐는 신세계 쿨캣의 역사까지 합치면 태평양화학 농구단이 전신이라 계승한 팀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