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위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왕관(삼국지) 문서 참고하십시오.
王瓘
[clearfix]
1. 개요
삼국지연의의 가공인물.2. 행적
삼국시대의 조위의 장수로 사마소가 조모를 시해하고 조환을 옹립하자 강유가 이를 명분으로 삼아 15만의 군사를 일으켜 기산으로 침공하려고 할 때 등애의 참군으로 종군했다.촉한군이 세 길로 나온다는 보고가 들어와 장수들과 대책을 의논할 때 등애에게 이전에 사마소에게 대항하다가 죽은 조모의 편을 들다가 죽은 왕경의 조카로 거짓 투항하는 계책을 올려 내응하려고 했는데, 등애는 강유를 속이지 못할까 걱정이라 했지만 목숨을 걸고 가기로 한다.
등애에게서 5천명의 군사를 받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야곡으로 나아가다가 촉한군을 발견하자 위나라에서 항복한 군사라면서 촉군에게 거짓 투항을 했는데, 이 때 왕경의 조카로 사칭해서 삼촌의 원한을 갚겠다고 했다. 강유가 식량이 걱정이라면서 그 수레들을 천구에 있으니 기산으로 가라는 지시를 받았으며, 강유도 기산 영채를 공격하러 간다고 했다.
왕관은 강유가 자신의 계책에 걸린 줄 알고 수락하면서 왕관이 데리고 온 군사 중에서 3천명만 데리고 갔다가 2천명을 뒤에 남겨둬서 길을 안내해 기산을 치도록 한다고 하자 강유가 의심할까 두려워 수락했는데, 강유는 사마소가 조조에 비길 만한 간웅이라 왕경을 죽이고 그 삼족을 몰살하면서 그 친조카가 관외에서 군사를 거느리게 내버려 둘 리가 없다는 이유로 거짓 투항인 것을 간파했다.
하후패도 강유에게 왕관이 왕경의 조카라는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얘기했으며, 등애에게 사람을 보내 글을 보고했지만 강유가 야곡으로 나아가지 않고 사람을 길에 매복시켜 왕관의 첩자를 막자 열흘도 지나지 않아 등애에게 보고하는 글을 지닌 자가 붙잡혔다. 결국 8월 20일에 오솔길로 군량을 날라 큰 영채로 돌아가 담산 골짜기로 맞이해달라는 내용이 드러났다.
강유가 글을 지닌 자를 죽이고 8월 15일에 등애에게 몸소 대군을 거느리고 담산 골짜기에서 맞이해 호응해달라고 한 내용으로 고치면서 그 부하를 위군으로 위장시켜 위군 영채에 글을 전했으며, 식량을 거느리는 위군으로 위장해 산골짜기에서 매복했다. 결국 등애는 그 내용을 보고 기뻐해 15일에 5만을 이끌고 담산 골짜기로 달려가면서도 산들이 겹쳐 길을 가리고 있는 것 때문에 매복한 군사가 있을까 우려해 나아가지 않았는데, 왕관이 군량과 말먹이 풀을 지니고 경계를 넘다가 촉한군의 추격을 받는다는 거짓 보고에 속아 등애가 왕관을 구원하러 가려다가 촉한군의 복병에게 개발살났다.
왕관은 등애와 비밀리 약속한 대로 군량과 말먹이 풀을 실은 수레를 갖춰놓고 일이 진행되기를 기다렸지만 일이 발각되어 등애가 패했다는 보고받자 사람을 시켜 상황을 알아보게 했다가 촉한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고받자 심복들에게 군량과 말먹이 풀을 실은 수레를 모두 불태우게 했다가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라고 했다.
그러면서 군사를 거느리고 서쪽으로 달려갔다가 촉한군이 추격하면서 따라잡힐까 두려워 잔도와 여러 요충의 관을 불태웠으며, 한중을 잃을까 두려워 한 강유가 추격해 포위되자 흑룡강[1]에 뛰어들어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