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rowcolor=#C0C0C0> 초대 | 제2대 | 제2대 | 제3대 |
엘렌딜 | 이실두르 | 아나리온 | 메넬딜 | |
<rowcolor=#C0C0C0> 제4대 | 제5대 | 제6대 | 제7대 | |
케멘두르 | 에아렌딜 | 아나르딜 | 오스토헤르 | |
<rowcolor=#C0C0C0> 제8대 | 제9대 | 제10대 | 제11대 | |
로멘다킬 1세 | 투람바르 | 아타나타르 1세 | 시리온딜 | |
<rowcolor=#C0C0C0> 제12대 | 제13대 | 제14대 | 제15대 | |
타란논 | 에아르닐 1세 | 키랸딜 | 햐르멘다킬 1세 | |
<rowcolor=#C0C0C0> 제16대 | 제17대 | 제18대 | 제19대 | |
아타나타르 2세 | 나르마킬 1세 | 칼마킬 | 로멘다킬 2세 | |
<rowcolor=#C0C0C0> 제20대 | 제21대 | 제22대 | 제23대 | |
발라카르 | 엘다카르 | 카스타미르 | 알다미르 | |
<rowcolor=#C0C0C0> 제24대 | 제25대 | 제26대 | 제27대 | |
햐르멘다킬 2세 | 미나르딜 | 텔렘나르 | 타론도르 | |
<rowcolor=#C0C0C0> 제28대 | 제29대 | 제30대 | 제31대 | |
텔루메흐타르 | 나르마킬 2세 | 칼리메흐타르 | 온도헤르 | |
<rowcolor=#C0C0C0> 제32대 | 제33대 | 제34대 | 제35대 | |
에아르닐 2세 | 에아르누르 | 엘렛사르 | 엘다리온 | |
}}}}}}}}} |
<colbgcolor=#000000><colcolor=#C0C0C0>
레젠다리움의 등장인물 온도헤르 Ondoher |
|
본명 |
Ondoher 온도헤르 |
성별 | 남성 |
종족 | 인간 ( 두네다인) |
출생 | T.A. 1787 |
거주지 | 곤도르 |
가문/왕조 |
House of Elendil 엘렌딜 왕조 Anárioni 아나리온 왕조[1] |
직책 |
King of Gondor 곤도르의 왕 |
재위기간 | T.A. 1936 - 1944 |
가족관계 | |
부모 | 칼리메흐타르 (아버지) |
형제자매 | 남매 |
자녀 |
아르타미르 (아들) 파라미르 (아들) 피리엘 (딸) |
[clearfix]
1. 개요
레젠다리움의 등장인물. 곤도르의 제 31대 왕이다.2. 이름
3. 행적
제3시대 1787년에 곤도르의 왕자였던 칼리메흐타르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36년 즉위하여 1944년 157세의 나이로 전사할 때까지 8년간 즉위하였다.3.1. 북왕국과의 동맹 재개
곤도르와 아르세다인 왕국은 오랜 단절을 끊고 다시 동맹을 맺는다. 이들은 앙마르나 전차몰이족이 누메노르 생존자들을 없애려는 단일한 목적에 의해 움직인 것이라 판단하였고 이에 아르세다인의 왕자 아르베두이와 곤도르의 공주 피리엘은 혼인한다. 이를 통해 이실두르와 아나리온의 가문이 하나로 합쳐지게 되었다.[5]3.2. 전차몰이족의 재침략
1940년, 에오세오드 족에게서 다시 전차몰이족의 움직임이 있다는 소식이 입수되었고 온도헤르는 이에 전쟁준비를 시작한다. 온도헤르는 적들이 북쪽과 남쪽에서 모두 쳐들어올 것이라 예상하고 군대를 둘로 나눠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한 남부전선에는 왕실의 일원인 에아르닐에게 지휘권을 줘서 펠라르기르에 주둔하도록 했다. 그리고 북부 전선은 왕인 자신이 스스로 지휘하였는데 이는 오래된 곤도르의 관습[6]이었다.1944년, 마침내 적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에아르닐은 절반의 군대와 함께 안두인 강을 건넜고 나머지는 일부러 포로스강의 여울을 무방비로 둔 채 남부 이실리엔에서 북쪽으로 40마일 정도 되는 곳에 야영하였다. 한편, 온도헤르는 북부 이실리엔을 통과해 다고를라드 평원에 군대를 배치하기로 하였다.[7]
10월 4일, 온도헤르는 45년전 승리했던 전투를 생각하며 적들이 북쪽에서 쳐들어올 것이라 생각하고 막 검은 문을 지나고 있었다. 또 외조카 미노타르가 우익부대, 당시 Dor-en-Ernil.( 이 지역은 돌 암로스가 있는 지역으로 곤도르 건국전부터 엘렌딜의 먼 친척들이 다스리던 지역이었다[8]의 제후 아드라힐이 좌익부대를 이끌며 뒤를 따르고 있었는데 이들은 다고를라드에서 비로소 그들의 자리를 잡을 예정이었다.
하지만 전차몰이족은 룬해에서 집결한 뒤 로바니온과 칸드의 군대와 합류하여 곧장 서진한 다음 곤도르의 측면을 공격하였다.
이에 전열이 무너진 온도헤르의 군대는 급히 우측으로 방향을 돌려 맞섰고 후미에 있던 미노타르에게 자신의 좌측을 지원하라는 전령을 보냈다. 하지만 온도헤르는 중무장한 기병대와 이륜 마차들의 돌격에 대비할 준비는 되어 있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호위대와 기와 함께 급히 낮고 둥근 언덕 위에 자리를 잡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무시무시한 공격이 그 기를 향해 퍼부어져 그 기는 노획되었고 그자신과 호위대 그리고 맏아들이었던 아르타미르가 전사하였다. 그 후, 이들은 곤도르군의 전열 깊숙히 질주하여 대혼란을 일으켰고 많은 자들을 죽음늪까지 몰고 가서 대부분 전멸시켰다.
이제 왕의 외조카 미노흐타르가 지휘권을 잡았다. 전차몰이족의 주력부대가 다가오고 있었으므로 온도헤르를 전사시킨 기병대와 이륜 마차들은 퇴각하였고 그 사이 그는 시간을 벌 수 있었다. 먼저 그는 자신의 기를 세워, 가까이에 있는 중앙부대의 남아있는 사람들과 자신의 관할에 있는 자들을 재집결시켰다. 그 후, 자신의 후위에 있던 좌익의 아드라힐에게 전령을 보내 당장 후퇴할 것을 명하고, 자신은 안두인 강 동쪽에서 가장 좁은 지역인 카이르 안드로스와 에펠 두아스 사이까지 후퇴하여 그곳에 방어선을 치고 미나스 아노르로 가는 길을 최대한 방어하려고 했다. 이 후퇴의 시간을 벌기 위해 미노흐타르는 몸소 후외대를 결성하여 전차몰이족의 전진을 저지해보려고 했다. 또한 아드라힐에게 남쪽의 에아르닐을 찾아 이 재앙과 현재 상황을 전하도록 명했다.
또한 미나스 아노르에 있는 둘째 왕자 파라미르에게도 급보를 보내려는 찰나, 에오세오드의 군사들이 방어선에 합류하여 그가 전사하였음을 알렸다.[9]
비록 이실리엔의 땅은 전차몰이족에게 익숙하지 않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곤도르군이 친 방어선도 수적으로 우세한 전차몰이족의 주력부대의 돌격 앞에 무너지고, 미노흐타르도 화살에 맞아 전사하였다.[10] 후위에서 살아남은 이들은 아드라힐을 찾아 남쪽으로 달아난다. 북부 이실리엔까지 들어와 진격을 멈춘 전차몰이족들은 진지를 차리고, 두 차례의 완승에 축하연을 열었다.
하지만 곤도르의 군대가 모두 전멸한 것은 아니었다. 남부전선에 있던 에아르닐은 군대를 이끌고 와서 포로스강을 건어 근처의 하라드와 칸드의 연합군을 전멸시키고, 급히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후퇴하던 군사들을 모았다. 그리고 성급하게 곤도르의 멸망을 자축하던 그들의 캠프를 기습하여 대부분 전멸시키고, 달아나는 이들도 쫓아와 죽음의늪에서 모두 죽이니, 연합군은 죄다 몰살되었다. 하라드와 칸드는 이 패배로 치명타를 입었고 더 이상 곤도르를 함부로 침공하지 못했다. 이후 곤도르는 멸망의 위기를 간신히 모면하게 되었다.
3.3. 이후
이 전쟁으로 왕과 왕자들이 모두 전사하자 왕의 자식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피리엘의 남편인 아르베두이는 곤도르의 왕위를 주장하였으나 섭정 펠렌두르에 의해 거부당했다. 자세한 것은 아르베두이를 참조.
[1]
엘렌딜 왕조의 분가이자
곤도르 왕가.
[Q]
퀘냐
[3]
Stone/Rock(돌/바위)
[4]
Lord/Master(군주/주인). 'rule/govern/possess(통치하다/지배하다/사로잡다)'를 의미하는 원시 요정어 어근 KHER에서 파생된 단어 khēr 또는 kherū에서 비롯됐다.
[5]
훗날 후손인
아라고른 2세는 안그래도 흠잡을데 없는 정통성이 더욱 완벽해지는 효과를 얻게 된다.
[6]
왕이 주요 전투에 나서고 왕위 계승자는 수도에 남는 것이다.
[7]
이 시기 아직
안두인 대하 북쪽에 세워둔 요새들은 잘 정비되어 있었고 적들의 도강을 충분히 저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온도헤르에게는 어떠한 경고도 전해지지 않았고 이에 온도헤르는 느린 속도로 이동하게 되었다.
[8]
그러나 이들은
엘로스의 후손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 않고서야 임라조르가 요정과 결혼하여 그 후손들에게 요정의 피가 흐르게 되었다는 서술이 나올리가 없기 때문이다.) 곤도르가 건국한 이후에도 이 지역은 여전히 이들의 자치령으로 남아있었다.
[9]
곤도르의 국법으로 왕의 모든 아들이 모두 전쟁터에 나가는 것은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아들 파라미르는 마치 반지전쟁 때의
에오윈이 그랬던 것처럼 변장을 하고 전투에 참여하였고 죽음늪 쪽을 후퇴하다가 적들에게 포획되었다. 마르위니가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달려왔지만 결국 파라미르는 그의 팔에 안기어 죽었고, 그가 왕자라는 사실은 몸수색을 하다가 왕자의 인장을 우연히 발견하면서 알려졌다.
[10]
만일 이때 미노흐타르가 전사하지 않았다면 왕가의 일족이 얼마남지 않은 이 상황에서 그는 큰 무리없이 곤도르의 제 32대왕으로 즉위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혹은
에아르누르의 뒤를 이었을 수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