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야국의 인물에 대한 내용은 오소도(올야국)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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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 개요
烏炤度생몰년도 미상
발해 말기의 재상(宰相). 고려 후기의 문집인 동인지문사륙, 고려사 최언위 열전에서 언급되었다. 872년 당나라로 건너가서 빈공과에 합격했는데, 함께 과거 시험을 봤던 신라인 이동(李同)보다 석차를 앞섰다고 한다.
이후 906년, 아들인 오광찬이 빈공과에 합격했지만 신라인 최언위보다 등수가 낮자 당나라 조정에 항의했지만, 당나라는 최언위의 학식이 뛰어나다는 이유로 오소도의 입장을 들어주지 않고 신라의 편을 들어주었다. 당시 당나라를 배경으로 발해와 신라 간의 대립과 경쟁의식을 파악할 수 있는 사료이다. 당시에 세 나라 다 망해가고 있었다는 게 함정.[1]
정안국의 왕족 오현명, 올야국의 수령 오소도, 오소경과의 관계는 같은 오(烏)씨 외에 기록에는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친족일 가능성이 존재한다.[2]
[1]
다만 세 나라 중에서는 발해가 상황이 가장 나은 편에 속했다. 당나라는 이미
주전충이 역성혁명의 준비를 거의 다 갖춘 시점이었고, 신라도
궁예와
견훤이 이미 왕을 칭했을 정도로 상황이 나빴던 것에 반해 발해는 아직도
요동에서 거란하고 오랫동안 치열하게 싸우고 이기기도 하는 등 국력이 완전히 죽지는 않은 시점이었다. 그래도 신라보다 10년이나 일찍 망했다.
[2]
오(烏)씨는 사서에 기록된 발해의 일반귀족 49개 성씨 중 1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