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사천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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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타 카츠이에 | 니와 나가히데 | 타키가와 카즈마스 | 아케치 미츠히데 |
1. 개요
일본 센고쿠 시대, 오다 노부나가 휘하로 전국 통일에 공헌한 4명의 무장을 일컫는 말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사천왕과는 별도의 대접을 받아, 사천왕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비슷한 의미로 히데요시가 포함된 오다 오대장(織田五大将)이 있다.1. 시바타 카츠이에(柴田勝家)
2. 니와 나가히데(丹羽長秀)
3. 타키가와 카즈마스(滝川一益)
4. 아케치 미츠히데(明智光秀)
2. 최후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태반이 최후가 좋지 않다. 어찌보면 당연하기도 한 게, 노부나가 사후 주도권을 잡은 게 히데요시였고 히데요시는 가능한한 오다 가문의 흔적을 일소하려 했으니, 오다 가문의 원로이자 유력자인 이들을 가만히 둘 이유도 없었다.먼저 미츠히데가 혼노지의 변 이후, 야마자키 전투에서 히데요시에게 패하고 도망가다가 주민에게 피살.[1]
카츠이에는 키요스 회의부터 비롯된 세력 내 주도권 다툼끝에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패배한 뒤 자결.
카즈마스는 가나가와 전투에서 호조군에게 대패하여 영지와 발언권을 잃고 없는 사람 취급 당한데다,[2]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카츠이에를 지지했다가 아예 쫄딱 망해 결국 실의 속에서 사망.
그나마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나가히데는 이후 120만석의 대영주 취급까지 받고 나름대로 온건하게 살다가 병사.[3]
사천왕중 그나마 살아남고 가문을 지키는데 성공한 것은 야마자키 전투부터 히데요시를 지지했던 니와 나가히데였다. 이후에도 키요스 회의등에서도 줄곧 히데요시를 지지했고, 히데요시도 이를 보고 경계를 푼건지 상술한대로 막대한 고쿠다가를 제공해주었다. 물론 딱 나가히데만 좋게 봐줬기에 그가 죽은 뒤 그의 아들인 나가시게가 니와 가의 당주가 되자 120만석 태반을 압류하고 4만석만 던져주는 등 찬밥취급했다.
그러고도 나가히데의 생존력을 어느정도 물려받긴 한건지 이후에 어찌저찌 수난을 겪으면서도 세를 유지하다가 결과적으로 나가시게의 아들인 미츠시게의 대에 무츠의 니혼마츠 번으로 옮겨지고, 그 번주 자리를 유지하며 메이지 유신 직전까지 다이묘로 가문을 이어나갔다. 가문이 아예 몰락한 다른 오다 사천왕들이나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정권을 잡은 뒤 도요토미 히데요시 본인이 과거에 그들에게 했던 했던 그대로 돌려받아 말그대로 가문이 멸족당한 도요토미 가문에 비하면 니와 가문은 상대적으로 잘 살았다고 볼 수 있다.
3. 창작물에서
전국무쌍 시리즈와 전국 바사라 시리즈에서는 가츠이에, 미츠히데는 플레이 가능한 무장이지만 나머지 둘은 어째선지 클론 무장.일본 메이플스토리 전국시대 편에서도 오다군의 수장 오다 노부나가의 휘하 세력으로 나온다.
[1]
생존했다는 설도 있으나 증거가 빈약해 사실상 살해당했다는 게 정설로 여겨지고 있다.
[2]
자기 몫으로 하사받았던 고즈케와 시나노 일부를 각각 호조와 도쿠가와가 차지하며 빈털터리 신세가 되었다. 그래도 중신이라고 이세 쪽에 새 영지를 받기는 했으나 원래와 비교하면 처참할 정도로 몰락한 꼴이었다.
[3]
자살했다는 설도 있으나 미츠히데 생존설처럼 근거가 빈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