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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14 18:09:13

오가 노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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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타몬 마에다
1946~1951
이부카 마사루
1951~1971
모리타 아키오
1971~1989
오가 노리오
1989~1999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이데이 노부유키
1999~2005
하워드 스트링거
2005~2012
히라이 카즈오
2012~2018
요시다 켄이치로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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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 제4대 대표이사 사장
오가 노리오
大賀典雄| Oga Norio
파일:Sonyooga.jpg
<colbgcolor=#000> 이름 오가 노리오 (大賀典雄)
출생 1930년 1월 29일
일본 제국 시즈오카현 누마즈시
사망 2011년 4월 23일 (향년 81세)
도쿄도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책 소니 대표이사 및 사장 (1989년 ~ 19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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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 부모 아버지 오가 마사이치, 어머니 오가 토시노
배우자 오가 미도리 (1957년 결혼 ~ 2011년 사망)
자녀 없음
신체 178cm
학력 시즈오카현립 누마즈 중학교 (졸업)
도쿄예술대학 음악학부 (성악 / 학사)
베를린 국립 예술대학 (음악학 / 졸업)
종교 불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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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성장과정3. 업적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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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기업인이자 성악가, 지휘자. 소니의 전 회장이었다. 창업주 모리타 아키오와 함께 소니를 세계적 기업으로 일군 주역이다. 그는 소니를 가전 명문기업이자 세계적인 미디어 업체로 성장시킨 일등공신으로 평가받는다[1].

2. 성장과정

오가는 1930년 시즈오카현 누마즈시에서 태어났다. 어릴때 폐결핵을 앓고있던 중에 지인에게서 물리와 음악을 배우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음악도의 길로 들어선다. 오페라 가수가 되기를 꿈꿨던 오가는 도쿄예술대학 음악학부 성악과로 진학하고 1953년 졸업했다. 대학 재학시절, 소니의 전신이었던 도쿄통신공업사의 제품이었던 테이프리코더를 연습기재로 구매했다가 제품에 하자가 있음을 발견, 회사로 찾아가 항의했는데[2] 이것이 계기가 되어 '촉탁'이란 직책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그후 국립 베를린예술대학 음악학부로 유학하게 된다. 유학을 마친 오가는 소니로 개칭된 회사로 다시 돌아와 광고부장 및 디자인 실장이란 직함으로 정식 업무를 보게된다. 음악가로서의 탁월한 식견이 있었던지라 그가 기획한 제품들이 대박을 치고 그 업적을 힘입어 1964년 불과 34세의 나이로 중역의 자리에 오른다. 그 이후로도 계속 승승장구하여 사장, 회장. 이사회 의장을 거처 명예회장의 자리에 오른다. 그 후 2000년에 이데이 노부유키를 소니 회장으로 임명한 후 물러났다.

2001년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음악 페스티벌에서 오케스트라 지휘 중 뇌출혈로 쓰러진 후 3개월을 혼수 상태로 있다가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기력을 회복한 적도 있었다. 그의 73번째 생일이던 2003년에는 이사회 의장과 명예회장 자리에서도 완전히 은퇴했다. 이후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단장으로 재직했다가, 2011년 4월 23일, 향년 81세로 타계했다.

3. 업적

1988년 미국 CBS사에게서 현 소니 뮤직의 전신인 CBS 레코드 그룹을 20억 달러에 인수했으며, 이듬해인 1989년에 코카콜라로부터 현 소니 픽처스의 자회사가 되는 컬럼비아 픽처스를 34억 달러에 인수한다. 아울러 플레이스테이션을 탄생시킨 주역이기도 하다.[3]

4. 여담



[1] 플레이스테이션이야말로 오가 노리오의 소니 회장 재임 시절 탄생시킨 역작이라 할 수 있는데 물론 그 구상과 제안은 쿠타라기 켄이 한 것이지만 이를 승인한 인물이 오가였기 때문이다. [2] 항의가 아니라 대놓고 "이건 내가 봤을때 쓰레기나 다름없다"라며 깠다. [3] 아래의 링크에서도 자세하게 나와있지만 쿠타라기 켄이라는 인물과 오가 노리오의 지원이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명품이었고 또한 소니에게 있어서는 신의 한수와도 같은 결정이었다. 현재 소니가 처한 상황을 빗대어 보고 플레이스테이션이 지금 가지고 있는 위상을 놓고 본다면 플레이스테이션이야말로 소니를 살린 역작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4] 사실 카라얀이나 번스타인 등의 지휘자들은 소니 임원진과 사이가 꽤 좋았는데 아키오 모리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 광팬이었다. [5] 베를린의 소니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