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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3-05 17:18:01

예카테리나 구바레바

초대 헤르손주 부지사
예카테리나 유리예브나 구바레바
Екатерина Юрьевна Губарева
파일:예카테리나 구바레바.jpg
<colbgcolor=#363948><colcolor=#fff>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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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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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83년 7월 5일 ([age(1983-07-05)]세)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헤르손주 카홉카[1]
학력 도네츠크 공과대학교 (컴퓨터공학)
직업 화가, 정치인
경력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외무부 장관
2014년 5월 16일 ~ 2014년 8월 15일
현직 헤르손 군민정청 민정부장관
2022년 6월 16일 ~
정당 ()
배우자 파벨 구바레프
자녀 2남 1녀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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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예카테리나 구바레바 우크라이나의 예술가이자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러시아의 정치인이다.

2. 생애

구바레바는 1983년 7월 5일 우크라이나 SSR 헤르손주 카홉카에서 태어났고, 도네츠크주로 이주해 도네츠크 공과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이후 파벨 구바레프와 결혼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화가로서 도네츠크에서 전시회를 연 적이 있고 이 당시 도네츠크주의 유명 예술가인 타티야나 포노마렌코-레베라시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

2013년까지 도네츠크에서 지역 체육 축제인 건강한 라이프스타일 축제를 개최했다. #

2014년 3월 1일, 도네츠크 레닌 광장에서 열린 회의에서 친러 시위대는 남편 파벨 구바레프 도네츠크주 인민의 주지사로 선출했다. #

2014년 3월 6일, 파벨 구바레프가 우크라이나 보안국에 의해 체포되자 구바레바는 아이들과 로스토프나도누로 잠시 도피했다.

2014년 5월 13일, 도네츠크에서 남편 구바레프[2] 노보로시야당을 창당했다. #

2014년 5월 16일,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외무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 그러나 이 때문에 7월 15일, 우크라이나의 영토 주권 등을 침해한 혐의로 유럽연합의 제재 대상에 추가되었다. #

이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의 민간인과 군인들을 위한 인도주의적 호송대"를 조직했다. 구바레바는 이 단체가 식품, 의약품만을 취급할 뿐 무기는 지원하지도 않고 이에 대해 아는 바도 없다고 밝혔다. #

2014년 8월 16일, 트란스니스트리아 출신 알렉산드르 카라만이 신임 외교부 장관으로 임명되자 구바레바는 외교부 차관이 되었다. #

2014년 10월 13일, 남편 파벨 구바레프 암살 시도로 의식을 잃자 임시로 노보로시야당을 이끌었다. #

구바레바와 노보로시야당은 2014년 도네츠크 총선에 참여하려 했으나 창당대회를 열지 않았다는 이유로 선관위에 의해 불허되었다. 이후 자유 돈바스에 합류해 선거에 참가했다.

2018년, 남편 파벨 구바레프 모스크바에서 2018년 도네츠크 인민공화국 총선 자유 돈바스 소속으로 출마를 선언했다. 2018년 9월, 15,000명의 서명을 받아 법적 출마 기준인 서명 10,000개를 넘겨 출마가 가능해졌다. # 그러나 실권자이자 도네츠크 공화국 후보였던 데니스 푸실린에 의해 지속적으로 견제를 당했고 2018년 9월 29일에는 데니스 푸실린은 구바레프 부부가 자유 돈바스 전당대회에 참여하지 못 하게끔 러시아-도네츠크 국경에서 구금했다. 구바레프는 이로 인해 자유 돈바스 소속으로 선거에 출마할 수 없게 되었고 자유 돈바스를 이끌 예정이었던 구바레바 역시 로스토프나도누로 도피했다. 2018년 10월 초, 구바레프의 서명이 전부 무효화되어 선거 출마가 아예 불가능해졌고 전당대회에서는 친 푸실린 성향 인물들에 의해 당이 장악되었다. #

2022년 6월 16일,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도중 구바레바는 고향 헤르손으로 돌아가 디지털화, 통신, 법률, 국내 및 외교 정책 담당 헤르손주 부지사로 임명되었다. 이후 장관회의 부의장(주 정부부수반) 겸 디지털화, 사회 정책 담당 부지사로 직책이 변경되었다.

2022년 11월 15일, 실종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 그 다음 날인 16일, 횡령을 비롯한 부패 사건에 관여돼 있어 러시아 경찰에 구금되었고 직무정지 상황에 처했다는 소식이 러시아 매체를 통해 드러났다. # 그러나 헤르손 주정부 측은 이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의 러시아 편입에 관한 국민투표 이후 헤르손을 떠났다는 정보도 돌아다니고 있어 구금 여부도 불확실하다. 2022년 11월 18일 파벨 구바레프는 구바레바가 풀려났다는 글을 텔레그램에 게시했다. #

2022년 12월 17일, 헤르손주 부지사직을 사임했다. #


[1] 러시아 헤르손주 카홉카 [2] 5월 7일에 포로 교환으로 석방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