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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42:04

염지(염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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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제2대
평제 해빈후
추존
원제 · 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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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ece5b6>
염위 말대 군주
염지 | 冉智
출생 미상
위치 미상
즉위 352년
염위 위군 업성
(現 허베이성 한단시 린장현)
사망 354년 (향년 미상)
전연
(現 위치 미상)
능묘 미상
재위기간 말대 군주
35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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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4153e><colcolor=#ece5b6> 성씨 석(石) / 염(冉)
지(智)
부모 부황 평황제
모후 동씨
형제자매 동생 5명
배우자 미상
자녀 미상
연호 영흥(永興, 352)
작호 태자(太子)→
황제(皇帝)→
해빈후(海賓侯)
묘호 없음
시호 없음
}}}}}}}}} ||
1. 개요2. 생애3.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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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 오호십육국시대 염위를 세운 염민의 아들이자 태자로 황후 동씨(董氏) 소생이었다.

2. 생애

아버지 염민은 한족 출신으로 후조의 제3대 태조 무황제 석호의 양손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양증손자가 된 염지도 한때 석(石)씨 성을 사용했다. 염민은 349년 석씨 황제들을 갈아치우다가 제6대 석감 시기 정변을 일으키고 350년 염위의 황제로 즉위했다. 염지도 이때 태자가 되었다. 하지만 염민은 351년 요양(姚襄)이 이끈 강족에게 패배했고, 전연의 명장이자 명재상인 모용각(慕容恪)에게 포로로 붙잡힌 후 용성에서 살해당했다.(352)

아버지가 살해당하자 염지는 도읍인 업성(鄴城)에서 잔존 세력을 모아 아버지 염민의 의지를 이었지만[1] 그해 9월 수하 장수들이 배신하여[2] 포로 신세가 되었고 전연의 도읍인 유주(幽州)로 압송되었다. 전연에서 염지는 해빈후(海賓侯)에 봉해졌으나 354년 송빈(宋斌)의 모반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3. 둘러보기

오호십육국시대 염위의 역대 황제
초대 무도천왕 염민 염지 멸망


[1] 다만 황제를 칭하지는 않았고, 유명한 전국옥새 동진에 넘겼다. [2] 염지를 붙잡고, 전연에 투항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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