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삼한벽상공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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連珠
생몰년도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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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삼국시대 고려의 제2등 개국공신. 성씨는 없는 것으로 보이나[1] 전주 연(連)씨의 시조로 전해진다.[2]2. 행적
대부분 후삼국시대 인물들이 그렇듯 연주도 제대로 된 기록은 없으며 고려사에 이름이 몇 번 언급될 뿐이다.태조가 철원성에서 즉위하여 고려를 건국한 뒤, 천수 원년( 918년) 8월 신해일 조칙에 의해 견권, 능식, 권신, 염상, 김락, 마난과 함께 개국 2등공신이 되었다.
4품 2등위인 원보(元甫) 품계[3]를 가졌으며 일리천 전투선 우강(右綱) 소속으로 기마병을 이끌고 참전했다.
현존하는 상세 기록은 얼마 없지만 태조가 역성혁명에 참여한 개국공신으로 삼고 후삼국시대 최후의 전투에 당당히 참전할 정도면 대 호족이었을 가능성이 큰 인물이다.
[1]
당시 성씨는 중앙귀족이면
신라의
진골 ~
6두품과
발해의
귀화인이, 호족이면 고려 개국 즈음부터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성씨가 없는 경우가 매우 흔했다.
[2]
성씨가 아니었더라도 이후 이름의 첫 글자를 성씨로 쓰게 된 경우도 있었다.
[3]
고려 태조가 제정한
관직
품계.
고려 성종이 문산계 품계를 제정해 정식 품계로 삼을 때 명예 품계로 밀려나 향직 품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