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ullification Crisis
1. 개요
1832년~1833년에 일어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정부와 미국 연방정부의 갈등. 의회가 통과시킨 법률을 사우스캐롤라이나주가 '연방법 무효 선언'을 통해 무효화하려 한 사건이다.2. 전개
당시의 미국 대통령이 자유방임주의자였던 앤드루 잭슨이었긴 했지만 그는 전임자였던 존 퀸시 애덤스 대통령이 1828년과[1] 1832년 제정했던 관세법은 계속 유지하려 했기 때문에 남부 주들의 반발을 샀다.당시 산업 혁명이 시작된 영국에서 값싼 공산품이 미국에 돌어오기 시작하자 공업 지대가 들어선 북부 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던 연방 정부는 자국 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영국산 공산품에 높은 관세를 매겼다. 이 때문에 농업이 주 산업이었던 남부에서는 북부에서 생산된 공산품을 비싼 가격에 사야되기에 불만을 가졌다.
노예제로 값싸게 수확한 목화를 영국에 수출하고 공산품을 싼 가격에 영국에서 수입하길 원하던 남부는 자연스럽게 관세를 철폐하는 자유방임주의를 지지하던 잭슨을 밀었다. 그러나 잭슨이 관세법을 유지하자 이에 반발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의회에서는 연방정부가 제정한 관세법은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안에서는 효력이 없다는 조례를 가결시키고, 주정부에서 이를 승인하면서 연방법 무효화를 시도하였다.
그러자 잭슨은 극대노하여 군대를 파견해 관세법을 집행하는 초강경 대응을 보여주었는데 이러한 결정에 분노한 사우스캐롤라이나 출신이었던 부통령 존 C. 칼훈은 사임을 하고 민주당을 나와 무효당을 세우기까지 했다. 그 후 1833년 타협책으로 관세를 내리며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도 이 법령을 철회했다.
당시 토머스 하트 벤턴(Thomas Hart Benton, 1782 ~ 1858)의 회고록에 따르면,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찾아온 손님이 잭슨 대통령에게 '친구들에게 전할 말이 있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래 있네. 자네 주에 있는 내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이렇게 전하게. '만약 미합중국의 법에 반대하여 단 1방울의 피라도 뿌려진다면 그러한 반역 행위를 한 자 중 내 손에 닿는 첫 사람을, 내가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나무에다가 매달아 버리겠다.'고 말일세."[2]
3. 여담
잭슨 대통령은 사건이 마무리된 1833년 5월 1일자 일기에 사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관세는 구실일 뿐이며, 진짜 목적은 연방의 해체와 남부연방이다. 다음 구실은 흑인이나, 노예제 문제가 될 것이다.' 그의 예상은 이후 남북 전쟁으로 정확히 들어맞았다.결과적으로, 연방법 집행 거부사태도 연방 정부는 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다 = 주가 원하지 않는 법을 만들 수 없다(또는 주가 원하지 않으면 연방법을 거부할 수 있다)라는 주장이 수면 위로 떠오르며 남북전쟁으로 가는 사건 중 일부였기 때문이었다.
4. 둘러보기
[1]
이 해에 생긴 관세법은 혐오스러운 관세 (Tariff of Abominations)라고 불리기까지했다.
[2]
Yes I have; please give my compliments to my friends in your State and say to them, that if a single drop of blood shall be shed there in opposition to the laws of the United States, I will hang the first man I can lay my hand on engaged in such treasonable conduct, upon the first tree I can re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