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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0 13:31:32

역단


1. 개요2. 화로(火爐)3. 아츰4. 가정(家庭)5. 역단(易斷)6. 행로(行路)

1. 개요

이상이 1936년 2월 가톨릭청년부터 발표한 연작시. 총 다섯 편이 이어져 있다.

또다른 작품 오감도와 제목은 다르지만 그 형식과 주제, 언어 표현과 기법 등이 모두 일치한다. 이러한 특징들을 바탕으로 역단이 오감도를 완결하기 위한 후속 작업이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1]

제목이 된 '역단'이란 말도 '오감도'와 마찬가지로 이상이 만들어낸 신조어다. 따라서 사전에 올라와 있지 않다. '易' 자는 그 음이 두 가지다. 하나는 '역(바꾸다)'이고 다른 하나는 '이(쉽다)'이다. 여기서 '역'은 명사로 쓰일 때 보통 주역(周易)을 의미한다. 주역의 괘를 이용하여 인간의 운명을 점치는 점복(占卜)의 의미를 갖게 된다. 따라서 미래의 운명을 점친다는 뜻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단(斷)'은 '끊다', '결단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이렇게 된다면 '역단'은 '운명에 대한 거역'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만일 '역'을 '이'로 읽을 경우 '쉽다'라는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이단(易斷)'이란 말은 '쉽게 자르다' 또는 '손쉽게 끊어내다' 등의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역단 속 작품을 보면 '운명에 대한 거역'으로 풀이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역'으로 읽어야 한다.

2. 화로(火爐)

房거죽에極寒이와다앗다. 極寒이房속을넘본다. 房안은견듼다. 나는讀書의뜻과함께힘이든다. 火爐를꽉쥐고집의集中을잡아땡기면유리窓이움폭해지면서極寒이혹처럼房을눌은다. 참다못하야火爐는식고차겁기때문에나는適當스러운房안에서쩔쩔맨다. 어느바다에潮水가미나보다. 잘다저진房바닥에서어머니가生기고어머니는내아픈데에서火爐를떼여가지고부억으로나가신다. 나는겨우暴動을記憶하는데내게서는억지로가지가돗는다. 두팔을벌리고유리창을가로막으면빨내방맹이가내등의더러운衣裳을뚜들긴다. 極寒을걸커미는어머니―奇蹟이다. 기침약처럼딱근딱근한火爐를한아름담아가지고내體溫우에올나스면讀書는겁이나서근드박질을친다.
방거죽에 극한(極寒)이 와닿았다. 극한이 방 속을 넘본다. 방 안은 견딘다. 나는 독서의 뜻과 함께 힘이 든다. 화로를 꽉 쥐고 집의 집중을 잡아당기면 유리창이 움푹해지면서 극한이 혹처럼 방을 누른다. 참다 못하여 화로는 식고 차갑기 때문에 나는 적당스러운 방 안에서 쩔쩔맨다. 어느 바다에 조수가 미나 보다. 잘 다져진 방바닥에서 어머니가 생기고 어머니는 내 아픈 데에서 화로를 떼어가지고 부엌으로 나가신다. 나는 겨우 폭동을 기억하는데 내게서는 억지로 가지가 돋는다.두 팔을 벌리고 유리창을 가로막으면 빨랫방망이가 내 등의 더러운 의상을 두들긴다. 극한을 걸어미는 어머니―기적이다. 기침약처럼 따끈따끈한 화로를 한아름 담아가지고 내 체온 위에 올려 놓았으면 독서는 겁이 나서 곤두박질을 친다.

3. 아츰

캄캄한空氣를마시면肺에害롭다. 肺壁에끄름이앉는다. 밤새도록나는몸살을알른다. 밤은참많기도하드라. 실어내가기도하고실어들여오기도하고하다가이저버리고새벽이된다. 肺에도아침이켜진다. 밤사이에무엇이없어젔나살펴본다. 習慣이도로와있다. 다만내侈奢한책장이여러장찢겼다. 憔悴한結論우에아침햇살이仔細히적힌다. 永遠히그코없는밤은오지않을듯이.
캄캄한 공기를 마시면 폐에 해롭다. 폐벽에 그을음이 앉는다. 밤새도록 나는 몸살을 앓는다. 밤은 참 많기도 하더라. 실어내가기도 하고 실어들여오기도 하고 하다가 잊어버리고 새벽이 된다. 폐에도 아침이 켜진다. 밤 사이에 무엇이 없어졌나 살펴본다. 습관이 도로 와 있다. 다만 내 치사한 책장이 여러 장 찢겼다. 초췌한 결론 위에 아침 햇살이 자세히 적힌다. 영원히 그 코 없는 밤은 오지 않을 듯이.

4. 가정(家庭)

門을압만잡아단여도않열리는것은안에生活이모자라는까닭이다. 밤이사나운꾸즈람으로나를졸른다. 나는우리집내門牌앞레서여간성가신게아니다. 나는밤속에들어서서제웅처럼작구만減해간다. 식구야封한窓戶어데라도한구석터노아다고내가收入되여들어가야하지않나. 집웅에서리가나리고뾰족한데는鍼처럼月光이무덨다. 우리집이알나보다그러고누가힘에겨운도장을찍나보다. 壽命을헐어서典當잡히나보다. 나는그냥門고리에쇠사슬늘어지듯매여달렷다. 門을열려고안열리는門을열려고.
문을 암만 잡아당겨도 안 열리는 것은 안에 생활이 모자라는 까닭이다. 밤이 사나운 꾸지람으로 나를 조른다. 나는 우리 집 내 문패 앞에서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나는 밤 속에 들어서서 제웅처럼 자꾸만 감해간다. 식구야 봉한 창호 어디라도 한 구석 터놓아다오 내가 수입되어 들어가야 하지 않나. 지붕에 서리가 날리고 뾰족한 데는 침처럼 월광이 묻었다. 우리 집이 앓나 보다 그러고 누가 힘에 겨운 도장을 찍나보다. 수명을 헐어서 전당 잡히나 보다. 나는 그냥 문고리에 쇠사슬 늘어지듯 매여 달렸다. 문을 열려고 안 열리는 문을 열려고.

이상이라는 작가가 난해시로 유명한 데 비해서 상대적으로 '가장으로서의 무게감과 생활고'라는 주제를 쉽게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이 가능해서 비교적 인용되는 예가 많은 시다. 물론 문학적 무게감이 덜하다는 것은 아니지만.

5. 역단(易斷)

그이는白紙우에다연필로한사람의運命을흐릿하게草를잡아놓았다. 이렇게홀홀한가. 돈과과거를거기다놓아두고雜踏속으로몸을기입하야본다. 그러나거기는타인과約束된握手가있을뿐, 다행히空欄을입어보면長廣도맛지않고않들인다. 어떤븬터전을찾어가서실컨잠잣고있어본다. 배가압하들어온다. 苦로운發音을다생켜버린까닭이다. 奸邪한文書를때려주고또멱살을잡고끌고와보면그이도돈도없어지고피곤한과거가멀건이앉어있다. 여기다座席을두어서는안된다고그사람은이로位置를파헤처놋는다. 비켜스는惡臭에虛妄과複讐를느낀다. 그이는앉은자리에서그사람이평생을살아보는것을보고는살작달아나버렸다.
그 이는 백지 위에다 연필로 한 사람의 운명을 흐릿하게 초를 잡아놓았다. 이렇게 홀홀한가. 돈과 과거를 거기다 놓아두고 잡답(雜踏) 속으로 몸을 기입하여 본다. 그러나 거기는 타인과 약속된 악수가 있을 뿐, 다행히 공란을 입어보면 장광도 맞지 않고 안 들인다. 어떤 빈 터전을 찾아가서 실컷 잠자고 있어본다. 배가 아파 들어온다. 괴로운 발음을 다 삼켜버린 까닭이다. 간사한 문서를 때려주고 또 멱살을 잡고 끌고 와 보면 그이도 돈도 없어지고 피곤한 과거가 멀거니 앉아있다. 여기다 좌석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그 사람은 이로 위치를 파헤쳐 놓는다. 비켜서는 악취에 허망과 복수를 느낀다. 그이는 앉은자리에서 그 사람이 평생을 살아보는 것을 보고는 살짝 달아나 버렸다.

6. 행로(行路)

기침이난다. 空氣속에공기를힘들여배앗하놋는다. 답답하게걸어가는길이내스토오리요기침해서찍는句讀를심심한空氣가주믈러서삭여버린다. 나는한章이나걸어서鐵路를건너질를적에그때누가내經路를듸듸는이가있다. 압흔것이匕首에버어지면서鐵路와열十字로어얼린다. 나는문어지느라고기침을떨어트린다. 우슴소리가요란하게나드니自嘲하는表情우에독한잉크가끼언친다. 기침은思念우에그냥주저앉어서떠든다. 기가탁막힌다.
기침이 난다. 공기 속에 공기를 힘들여 뱉어놓는다. 답답하게 걸어가는 길이 내 스토리요 기침해서 찍는 구두(句讀)를 심심한 공기가 주물러서 삭여버린다. 나는 한 장이나 걸어서 철로를 건너지를 적에 그 때 누가 내 경로를 디디는 이가 있다. 아픈 것이 비수에 버지면서 철로와 열십자로 어울린다. 나는 무너지느라고 기침을 떨어트린다. 웃음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자조하는 표정 위에 독한 잉크가 끼얹힌다. 기침은 사념 위에 그냥 주저앉아서 떠든다. 기가 탁 막힌다.

[1] 신문기사는 이쪽을 참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