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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40:53

여상(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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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말 원상의 수하에 대한 내용은 여상(삼국지)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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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呂常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미디어 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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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후한 말의 인물이자 여예의 아버지로 형주 남양군 사람.

후한 조정이 청류파와 탁류파의 대립 등으로 중앙 정계가 혼란스러워지자 이에 싫증난 유언이 조정에서 멀면 멀수록 힘을 키우기가 쉬울 것이라 생각해 처음에는 교주로 가려고 했다가 동부 익주 천자의 기운이 있다는 도참설을 이야기했다. 이에 유언은 동부의 말에 따라 188년에 익주로 들어가는데, 이 때 여상은 유언을 호송했고 유언은 익주를 평정했다.

이후 유언이 장로 한중에 파견해 포야곡도를 봉쇄시켜 조정과의 연락을 차단해 중원으로 가는 길이 끊겨버렸고, 이로 인해 여상의 아들 여예는 어려서 고아가 된다.

유언을 호송한 것으로 볼 때 관직을 지낸 것으로 보이지만 자세한 기록이 없어 어떤 관직을 지냈는지는 알 수 없다.

2. 미디어 믹스

소설 삼국지 속으로에서는 류풍운이 익주를 위협하자 손조와 함께 8만의 군대를 이끌고 양주를 공격하기 위해 출정했는데, 손조가 양주의 군사들을 격파하면 입지가 강력할 것이라 하자 여상은 적이 6만이고 상대는 명성이 자자한 류풍운으로 3만의 원소군을 1천으로 격파했다는 소문도 있다면서 우려하는 발언을 했다.

손조가 명성을 가진 류풍운을 격파하면 명성이 천하를 진동할 것이라 하자 손조에게 크게 동조하면서 자신들이라고 못할 것 없다면서 그대로 몰아쳐 양주를 취하자고 말한다.

류풍운군과 교전하면서 류풍운이 도망가자 손조와 함께 추격했다가 여상은 갑자기 위험한 지형에 왔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공에 눈이 멀어 계속 추격했다가 류풍운의 매복에 걸려들어 그가 쏜 화살에 눈이 꿰뚫려 끔살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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