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여구일(呂九一) |
이명 | 여규일(呂圭一) |
생몰 | 1883년 1월 2일 ~ 1974년 7월 31일 |
출생지 |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 |
사망지 | 충청북도 영동군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여구일은 1883년 1월 2일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지내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4월 16일 고향에서 김승림(金升林)· 정화중· 여규병· 여구방·여중선(呂中仙)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벌이기로 계획하고 태극기와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큰 기를 제작하는 등 거사를 위하여 준비를 갖추었다. 이윽고 4월 17일 만세시위를 단행한 그는 때마침 영동에서 무주 간 도로 건설을 위해 부역 나온 군중 수백명과 만나자 그들에게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기를 권하고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행진을 계속했다. 군중은 학산주재소를 습격해 기물을 파괴했으며, 일본인들이 심어놓은 뽕나무 묘목에 불을 지르고 이를 저지하는 경찰에 맞서 시위를 계속했다. 그러나 경찰의 무차별 총격으로 많은 사상자를 내고 해산되었고, 그는 주동자 중 한 사람으로서 체포되었다. 이후 6월 13일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언도받고 공주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으며, 출옥 후 영동군에서 조용히 지내다가 1974년 7월 31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여구일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